신편 한국사고려 시대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2. 농민·천민의 봉기3) 무신정권 확립기의 농민·천민봉기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1. 신분제의 동요
          • 1) 신분제 동요의 배경
          • 2) 양인·천인의 신분이동
            • (1) 양인·천인의 신분상승
            • (2) 양인의 신분하락
            • (3) 이성계 일파의 집권과 양인·천인의 신분고정
          • 3) 향리 및 양반귀족의 신분동요
            • (1) 향리의 신분동요
            • (2) 양반귀족의 신분동요
        • 2. 농민·천민의 봉기
          • 1) 농민·천민봉기의 배경
            • (1) 중앙 통치체제의 문란
            • (2) 지방관의 탐학
            • (3) 대토지겸병의 확대
            • (4) 신분제의 동요
          • 2) 무신정권 성립기의 농민·천민봉기
            • (1) 서북지역의 농민봉기
            • (2) 공주 명학소민의 봉기
            • (3) 관성·부성·전주 등에서의 농민봉기
            • (4) 제주민의 항쟁
            • (5) 운문·초전민의 봉기
          • 3) 무신정권 확립기의 농민·천민봉기
            • (1) 만적의 난
            • (2) 진주민의 항쟁
            • (3) 경주민의 항쟁
          • 4) 외세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1) 거란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2) 몽고 1∼3차 침입기의 농민·천민봉기
            • (3) 몽고 6·7차 침입기의 농민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1. 몽고 침입에 대한 항쟁
          • 1) 몽고족의 흥기와 여·몽관계의 성립
            • (1) 13세기 몽고족의 흥기
            • (2) 몽고군의 고려 입경
            • (3) 강동성 전투와 여·몽관계의 성립
          • 2) 몽고의 고려 침입
            • (1) 몽고의 침략
            • (2) 최씨정권의 강화천도
            • (3) 몽고의 2·3차 침입
            • (4) 여·몽전쟁의 장기화
          • 3) 몽고의 침략에 대한 항전
            • (1) 살례탑군에 대한 항전
            • (2) 당고군에 대한 항전
            • (3) 야굴군에 대한 항전
            • (4) 차라대군에 대한 항전
            • (5) 고려의 입보책과 지방민의 항전
          • 4) 삼별초의 대몽항전
            • (1) 몽고와의 강화
            • (2) 삼별초의 봉기
            • (3) 삼별초의 진도 항전
            • (4) 삼별초군의 제주도항전
        • 2. 여·원관계의 전개
          • 1) 원의 간섭과 자주성의 시련
            • (1) 몽고제국 지배체제로의 편입과정
            • (2) 몽고제국 지배체제하의 고려왕조
            • (3) 여·원 양국간의 인적·물적 교류
          • 2) 북방문제
            • (1) 심양로의 심왕
            • (2) 동녕부
            • (3) 쌍성총관부
        • 3. 고려 말의 정국과 원·명 관계
          • 1) 원의 쇠퇴와 공민왕의 반원정책
          • 2) 공민왕의 개혁정치 실패와 명의 흥기
          • 3) 친원파와 친명파의 대립과 요동정벌
        • 4. 홍건적과 왜구
          • 1) 홍건적
            • (1) 원의 쇠퇴와 홍건적의 대두
            • (2) 홍건적의 침입
          • 2) 왜구
            • (1) 왜구의 성격과 규모
            • (2) 왜구의 침구목적
            • (3) 왜구의 침입
            • (4) 왜구에 대한 대책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무신정권 확립기의 농민·천민봉기

(1) 만적의 난

 이의민 세력을 제거하고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崔忠獻·崔忠粹 형제였다. 최충헌은 쿠데타에 성공한 후 그의 정치세력을 공고히하기 위해 동생 최충수마저 제거하였으며, 명종을 폐위시키고 신종을 옹립하였다. 그는 국왕에게 封事 10條를 올려 고려사회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지적함으로써 앞서의 집정자와의 차별성을 나타내었으니,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83)

제1조 국왕은 화재로 인하여 다시 지은 옛 궁궐로 옮길 것. 제2조 우리 나라 관제는 祿의 수량으로 계산된 것이다. 정원 이상의 관리를 줄일 것. 제3조 관직에 있는 자가 탐욕스럽고 비루하여 公田·私田을 모두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한 집의 비옥한 토지가 州·郡에 차고 넘치게 되어 국가의 수입은 줄어들고 軍費는 부족해졌다. 해당 기관을 단속하여 공문서를 검토하고 무릇 빼앗은 것들은 모두 본주인에게 돌릴 것. 제4조 아전들이 불량하여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걸핏하면 백성들을 침해하며, 또 권세있는 집안의 하인들은 田租를 다투어 징수한다. 능력있는 사람을 지방관으로 보충하여 백성들의 산업이 파괴되지 않도록 할 것. 제5조 여러 도에 나가 있는 사신들의 供進을 금할 것. 제6조 승려들의 궁궐 출입과 사원의 利息을 금지할 것. 제7조 군현 아전들의 탐욕을 按察使가 막지 못하고 있다. 안찰사로 하여금 아전의 잘잘못을 가리도록 할 것. 제8조 사치를 금지할 것. 제9조 비보사찰 이외의 사원은 모두 없애버릴 것. 제10조 臺省 책임자를 가려서 임명할 것.

 최충헌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직후에, 국왕에게 올린 건의서는 앞으로 그가 통치하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조는 그가 건의서를 올린 지 불과 석 달 이내에 국왕이 궁궐을 延慶宮으로 옮김으로써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2조와 10조는 관리의 수를 줄이며 적임자를 가려서 임용하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중앙의 관리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위를 보존하기 위하여 최충헌의 환심을 사기에 급급하도록 만들었으리라 생각된다. 적임자란 어차피 주관적인 성격이 가미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 관직을 그대로 지닐 수 없었음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최충헌의 봉사10조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이 지방관의 탐학과 대토지소유의 금지이다. 3·4·5·7조는 아전이나 권세가의 백성 침탈을 안찰사로 하여금 방지하도록 하라는 내용인데, 이미 그가 정권을 장악할 무렵에는 권세가는 州·郡을 경계로 삼을 정도로 대토지겸병이 유행하여 빈부의 차이가 심각하였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위의 내용만으로는 그가 대토지소유를 반대한 인물로 이해하기 쉬우나, 그 자신이 후일 대토지겸병을 강행하여 진주와 전라도의 일부를 농장화한 것으로 보아 그가 농민편에 서서 개혁을 요구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의 봉사 10조보다 10년 전인 명종 18년(1188) 3월에 내린 국왕의 조서 또한 최충헌의 봉사와 마찬가지로 수령의 탐학을 금지하거나 대토지겸병을 방지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최충헌은 그 이전부터 원성의 대상이 되어온 대토지겸병을 방지하기 위한 시책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농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없음을 알고 이같은 건의를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결국 고려왕조는 대토지소유자인 권세가의 기반 위에 서 있는 나라임에도 이것을 방지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의 최충헌 정권기에 최초로 항쟁을 일으킨 사람은 私奴 萬積이었다.184) 그 과정을 살펴보자.

사동 萬積·味助伊·延福·小三·孝三 등 6명이 北山에서 나무를 하다가 공사노예를 불러모아 모의하기를, ‘나라에서는 庚寅·癸巳年 이후로 높은 벼슬이 천한 노예에게서 많이 나왔다. 公卿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으랴. 시기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만 어찌 육체를 괴롭히면서 채찍 밑에서 곤욕을 당할 수 있겠는가’하니, 여러 노예들이 그렇게 여기었다. 이에 누른 빛깔의 종이 수천장을 오려서 丁字를 만들어 표식으로 삼고 약속하기를, ‘갑인일에 興國寺에 모여 일제히 북을 치고 소리지르며 毬庭으로 몰려가 난을 일으켜, 안과 밖에서 서로 호응하여 최충헌 등을 먼저 죽이고, 나아가 각기 그 주인을 쳐서 죽여 賤人의 文籍을 불살라 삼한에 천인을 없애 버리면, 공경 장상을 모두 우리가 할 수 있을 것이다’하였다(≪高麗史節要≫권 14, 신종 원년 5월).

 천민 중에서도 제일 미천한 신분인 노예만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우리 나라 역사에서 처음 발생했던 사건으로서, 그들은 중세사회의 가장 큰 존립 기반인 신분제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그들이 궐기한 목적은 최충헌 등 노비의 소유주를 죽이고 노비문서를 소각하여 삼한에 천인을 없앰으로써 노예해방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각기 주인을 죽여서 예속적인 신분관계를 벗어난 이후에는 자신들이 공경 장상을 독점하겠다는 정권 장악의 의도까지 드러내고 있다. 만적의 연설 내용으로 보건대, 이 난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 모의하여 계획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에 호응하여 모인 노예 수가 황지 수천 장을 발행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대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한 노복의 배반으로 미수에 그치고 주모자 100여 명이 강물에 수장당하는 것으로 난은 종결되었지만, 전형적인 노예들의 신분해방운동이 정권 장악의 목표로까지 연결된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만적의 난은 실패했으나, 노비들의 신분해방운동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져 다시 개경에서 家僮들의 習戰事件이 일어났다. 즉 신종 6년(1203) 4월에 여러 가동들이 나무와 풀을 베다가 개경 동쪽 교외에서 隊를 나누어 전투연습 하는 것을 최충헌이 사람을 시켜 체포하게 하였는데, 모두 도망가고 다만 50여 명만을 잡아 강에 던졌다고 한다. 이는 만적의 난 이후에 불문에 붙여졌던 남은 무리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신분해방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만적의 난이 실패한 이후에도 천민들의 반란은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지방에서 노예와 부곡민이 같이 수탈을 당하는 계층으로서 처지가 비슷한 농민과 연합하여 봉기하는 경우도 생겨났으니, 그 대표적인 사건이 晋州民의 항쟁이었다.

183)≪高麗史≫권 129, 列傳 42, 叛逆 3, 崔忠獻.
184) 만적의 난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들이 참조된다.

邊太燮,<萬積亂 發生의 社會的 素地>(≪史學硏究≫4, 1959;≪高麗政治制度史硏究≫, 一潮閣, 1971).

洪承基,<武人執權時代의 奴婢叛亂>(≪高麗貴族社會와 奴婢≫, 一潮閣, 1983).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