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Ⅲ. 사회생활의 변동2. 신분제도의 변화3) 상민·천민층의 성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1. 제국주의의 경제 침탈
          • 1) 금융 지배
            • (1) 일본의 금융진출과 제일은행
            • (2) 폐제문란과 외화의 유통
            • (3) 화폐정리사업
          • 2) 차관 제공
            • (1) 차관, 무엇이 문제인가
            • (2) 1882∼1894년의 차관도입
            • (3) 1895∼1905년의 차관제공
            • (4) 도입 차관의 총액 추정
            • (5) 차관과 민족운동
          • 3) 철도 부설
            • (1) 열강의 각축과 철도 부설권의 향방
            • (2) 일본의 침략과 철도 부설
            • (3) 한국통감부의 철도 지배
          • 4) 해운업 침투
            • (1) 일본의 해운정책과 해운 독점(1876∼1882)
            • (2) 열강의 해운업 진출과 대외항로(1883∼1894)
            • (3) 일본해운업과 러시아해운업의 침투확대(1895∼1904)
            • (4) 외국해운업의 불개항장 침투
            • (6) 일본의 해운업 독점(1905∼1910)
          • 5) 이권 탈취
            • (1) 광산이권과 광업법
            • (2) 전기·전선 이권
            • (3) 삼림 벌채권
            • (4) 어업권
        • 2. 일제의 토지 침탈
          • 1) 토지관계 조약과 정부의 대응
            • (1) 토지관계 조약과 일제의 식민정책
            • (2) 정부의 법적·제도적 대응
          • 2) 일제의 토지 확보와 토지법 정비
            • (1) 토지 확보 방법과 성격
            • (2) 일제의 토지법 정비와 농장 건설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1. 무역구조의 변동과 시장권의 재편성
          • 1) 무역구조의 변동
            • (1) 청일전쟁 이전의 무역구조
            • (2) 무역구조의 변동을 초래한 요인으로서 청일·러일전쟁과 일본의 산업혁명
            • (3) 청일전쟁 이후 무역구조의 변동
          • 2) 시장권의 재편성
        • 2. 상회사 설립과 상권수호운동
          • 1) 상회사 설립
            • (1) 회사정책
            • (2) 상회사의 설립
            • (3) 상회사의 설립주체
          • 2) 상권수호운동
            • (1) 외국상인의 침투와 상권문제
            • (2) 광무년간의 상권회복운동
            • (3) 국권회복운동기의 식산흥업운동
        • 3. 광공업과 면방직업의 전개
          • 1) 광공업의 전개
          • 2) 면방직업의 전개
        • 4. 교통·운수·통신
          • 1) 1894∼95년 교통·운수·통신제도의 개혁
          • 2) 1896∼1904년 교통·운수·통신기관의 전개
          • 3) 1905∼10년 교통·운수·통신기관의 식민지적 재편
        • 5. 상업적 농업의 재편과 지주제의 성장
          • 1) 한말 지주적 토지소유의 강화와 상업적 농업의 재편
            • (1) 한말의 양전·지계사업과 역둔토 정리사업
            • (2) 상업적 농업의 종속적 재편과 일본자본의 토지약탈
          • 2) 지주제의 재편과 소작조건의 변동
            • (1) 토지겸병의 확대와 식민지 지주제로의 재편
            • (2) 소작권의 약화와 지대수취의 강화
          • 3) 농민층의 항조운동과 반제 반봉건 투쟁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1. 인구의 이동과 변화
          • 1) 인구의 변화와 도시의 발전
            • (1) 대한제국시기의 호구수
            • (2)≪한국호구표≫와 지방도시 인구
            • (3) 도시인구율과 인구밀도
            • (4) 도시의 발전과 도시인구
          • 2) 국외 이민
            • (1) 만주·노령지역
            • (2) 미주지역
        • 2. 신분제도의 변화
          • 1) 양반 신분제도의 변화
            • (1) 관료집단의 변화와 양반신분
            • (2) 신분직업의 변화
            • (3) 광무호적과 양반신분의 존재
            • (4) 양반신분의 존속과 해체의 조건
          • 2) 중간신분층의 부상
            • (1) 갑오개혁과 중간신분층의 지위 변화
            • (2) 중인
            • (3) 서얼
            • (4) 경아전과 향리
          • 3) 상민·천민층의 성장
            • (1) 1894년의 신분제 폐지 정책과 평민
            • (2) 신분제 폐지 이후의 평민신분
            • (3) 호적에 나타난 평민의 변화
          • 4) 가족관계의 변화
            • (1) 갑오개혁이전의 가족관계 변화
            • (2) 갑오개혁기의 가족관계의 변화
            • (3) 갑오개혁 이후의 가족관계 변화
          • 5) 여성의 사회진출
            • (1)<여권통문>에 나타난 여성 사회진출관
            • (2) 교육단체운동과 교육분야로의 진출
            • (3) 의료계와 종교계로의 진출
            • (4) 새로운 직종업으로의 진출
          • 6) 민중운동의 전개
            • (1) 농민운동
            • (2) 초기 노동운동
            • (3) 민중의 조직운동
        • 3. 형법·민법체계의 변화
          • 1) 법제의 근대화 과정
            • (1) 시대구분
          • 2) 입법의 형식
          • 3) 민법의 제정
            • (1) 민법 일반
            • (2) 토지관계
            • (3) 가족관계
          • 4) 형법의 제정
          • 5) 형법·민법과 법생활
        • 4. 지방자치제의 추이
          • 1) 지방자치를 규정하는 세 가지 힘
          • 2) 갑오개혁기의 지방자치정책과 지방자치
          • 3) 광무개혁기의 지방자치정책과 지방자치
          • 4) 통감부시기의 지방자치정책과 지방자치
        • 5. 의·식·주생활의 변화
          • 1) 의복
            • (1) 임금의 정복(면복)
            • (2) 관리의 복장
            • (3) 대한 제국시대의 예복
            • (4) 일반 복식
            • (5) 여복
          • 2) 음식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2) 개화기의 식생활
            • (3) 외국 음식문화의 전래
          • 3) 주거
            • (1) 갑오개혁과 주거문화의 변화
            • (2) 개항과 서구 건축양식의 유입
            • (3) 외래건축문화의 영향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신분제 폐지 이후의 평민신분

 1894년 갑오개혁이후 전통적인 신분제도가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속에서 신분구조가 과연 어떠한 형태로 사라지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말에 신분제의 어떤 측면이 먼저 붕괴되고 사라져 갔으며, 신분제의 어떤 측면이 상당히 오랫동안 남아 변화에 완강한 저항을 보이는지는 연구된 바가 없다. 물론 갑오개혁이후 신분제는 종전에 비해 판이하게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신분제도의 변화가 현실적으로 사회 변화에 곧바로 투영되지 않을지라도 전통적 신분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말에 신분제도가 법적으로 폐지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노비의 경우, 특히 한 집에서 주인과 함께 생활을 하던 사환 노비의 경우에 그들이 법적으로 노비제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주인(上典)과 대등한 지위를 가질 수는 없었다. 결정적인 것은 노비들의 대부분은 신분적으로 노비문서가 아무런 쓸모 없는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양반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형식적인 신분해방은 법으로 제도화되었지만, 그들이 자유민으로 살아갈 경제적 기반, 특히 토지는 여전히 지주계급의 손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지주-전호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자신들의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고, 자신의 독자적인 소유의 주택을 갖고 있지 못하는 한 주인집 행랑에 거주하거나, 주인집을 빌려 사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한편 주인집에 거주하던 사환노비들은 신분제도 폐지이후 주인집을 떠나 독자적인 살길을 찾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많은 경우는 주인집에 그대로 눌러 앉아 노비시절과 별로 다름없이 주인집 각종 집안 일을 하고 주인집에서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경작했을 것이다.

 신분의식도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법은 사회적 관습이 유지될 수 있게 받쳐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분과 관련된 법이 폐기되고 나서도 신분 차별 관습은 여전히 의미 있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갑오개혁이후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신분에 대한 억압적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신분제에 대한 일반인의 관념은 강하게 남아 있었다. 특히 양반과 상민의 경계, 노비에 대한 편견이 많이 줄어들고 있었으면서도 천민집단에 대한 차별의식은 여전히 강했다. 경남 진주군을 비롯한 인근 16개 郡의 백정들이 1902년 2월에 차별관습을 없애달라고 관찰사에게 탄원하였지만, 관찰사는 오히려 소가죽으로 관의 띠를 하도록 지시하여 굴욕적인 신분표시를 강요했다. 또한 황해도 해주에서는 정부관리가 신분을 해방시켜주는 대가로 백정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내무부는 각 지방 관청에 훈령을 내려보내 양반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천민들의 처벌을 지시하기도 했다.689)

 그런 상황속에서도 백정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나갔다. 경남 진주, 경북 예천, 황해도 해주에서는 백정들은 부당한 관리의 처우에 대항하여 상급기관에 제소하는 경우도 생겨났고, 패랭이 대신에 일반인들처럼 갓과 망건을 쓰는 등 옷차림의 신분 차이를 없애줄 것을 왕과 관청에 탄원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1900년에 진주에서 일반인과 똑같은 의복을 입어도 좋다는 관청의 허락을 받은 백정들이 일반인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한편 새로 늘어나기 시작한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백정들도 있었는데, 선교사가 백정들을 일반인 신도들과 합석시키려 하자, 대부분의 신도들이 거부하였고, 불만을 품은 일부 신도들은 예배당을 떠나기까지 하였다.690)

 이처럼 완강했던 여러 형태의 차별 관습은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물론 백정 집단거주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일반인들의 거주지역으로 옮겨와 살기 시작한 백정들이 늘어났으며, 일반인들과의 접촉도 비교적 쉬워졌는데, 이러한 모습은 백정들의 공동체가 무너져가면서 동시에 일반인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음을 뜻한다.691)

 한편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음도 분명하다. 우선 양반집단에 비해 절대적으로 교육 기회가 차단당해 오던 것이 점차 열리고 있었다. 각종 학교 입학 문호가 누구에게나 개방되었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모든 교육과 실제 행정활동이 국문을 적어도 국한문을 바탕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읽기 쉬운 신문들도 쏟아져 나왔다(≪독립신문≫·≪제국신문≫·≪황성신문≫등).

 갑오개혁이후 법적으로는 신분제가 폐지되어 있었으나, 종래의 신분관념은 존속되고 있었고, 이로 인해 대한제국기 신문을 살펴보면 신분을 둘러싼 글이 자주 실렸다. 이러한 신분 관련 기사들은 대체로 신분차별을 비판하고, 상민·천민층들로 하여금 신분의식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皇城新聞≫의 경우 관직임용에서의 신분적 차별을 주된 비판의 초점으로 삼고 있었다. 즉 “寒門微族의 자제는 학문이 두터워도 등용의 기회가 적고 華族은 懶怠하고 학문이 부족해도 서용되는 현실”692)을 비판하면서 “문벌과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才藝에 따라 인재를 등용해야만 내수를 다져 외압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693)고 주장하였다. 이러한≪황성신문≫의 견해는 그 담당자들이 주로 문벌이 낮은 양반이거나 중인출신이라는 점과 관계가 있었지만, 동시에 법적 신분제가 폐지되고, 양반 세족들의 특권을 약화시키는 조치가 나왔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현실이 바뀌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그렇더라도 당시 신문기사들은 대립 갈등 과정을 겪으면서 평민들이 스스로 신분의식을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의 두 기사를 보자.

A.일전에 검은돌 사는 전가가 그 동리 사는 김모를 거러 경무청에 정장하였는데, 그 사의인 즉, 김가와 전가가 다 막버리군이라. 연강의 풍속이 쪽지게 지고 버러 먹은 것은 양반이오 등테지고 버러 먹은 것은 상놈으로 분별이 뚜렷한 배라. 전가등테가 어디를 가는데 김가 쪽지게가 요사이 잘 있으냐 한 즉, 전등테에 말이 네나 내나 두질생에 목을 넣고 생애하기는 일반이어늘 하대 하는 일이 웬일이냐 하매 김쪽지게가 대노하야 양반더려 무례히 욕한다고 전등테를 구타하매 전등테에 아비가 나와 만류하려는데 김쪽지게에 삼형제가 내다라 전등테 부자를 무수히 난타한 일이라 하니 우리 나라 여러 가지 디테는 일오 알 수 없더라(≪매일신문≫7, 광무 2년 4월 16일, 잡보).

B.충청감사 송세현씨가 갈녀 올 때에 공주 아전 서한익에게 가하 몇 천량을 지고 왔는대 서가가 송씨를 대하야 가하전을 재촉하매 송씨 대답이 그 때에 이리 이리 구쳐하여 주었거늘 무삼 가하를 다시 말하는냐 한즉 서가의 말이 갑오 이전에는 송우암댁을 두려워 당당히 받을 것을 말을 못하였거니와 지금이야 경계 받게 무엇이 무서우리오하고 돈을 재촉하였더니, 도내 유생들이 관찰부에 정소하고 서가가 송우암을 욕되게 하였다고 치죄하여 달라하매 관찰부에서 서한익을 착수하였다가 몇일 후에 서가는 방송하고 그 아우를 되수하였더니 서한익을 내노았다고 경주 유생 이복영씨 등이 법부대신에게 연명 둥소를 하다더라(≪매일신문≫17, 광무 2년 4월 28일, 잡보).

 A 기사에는 한강가 포구에서 ‘막벌이꾼’으로 살아가는 거리 임노동자들이 등장하는데, 흥미 있는 것은 그들 사이에서도 신분에 따른 차별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즉 양반은 지게를 지지만, 평민들은 반드시 등짐을 지는 것이 관행이었고, 이런 관행이 지켜져 왔다는 것이다. 양반이 지게를 지는 임노동자가 되었다면, 경제적 형편으로 따지면 일반 평민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막벌이꾼으로 살아가는 몰락 양반들이 한 둘이 아니라 집단으로 존재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차별 관행이 유지되어 왔다는 것은 경제 수준이 비슷해져도 반상의식은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했고, 같은 직업군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양반노동자는 상민노동자에게 下待(반말)를 하고, 상민은 양반노동자에게 존대말을 써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오개혁이후 상민 노동자들은 더 이상 상하의 차별 관행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주장했고, 이 때문에 구타를 당하자, 관에 고발하여 법의 보호를 받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B 기사에서는 공주 아전이 수천 냥의 돈을 빌리고도 갚지 않던 충청감사를 역임한 고위관료에게 돈을 재촉하면서, 더 이상 양반의 권위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아전 스스로가 갑오이전과 이후는 상황이 달라졌음을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충청도내 유생들과 경주 유생 이복영은 이러한 아전의 태도를 양반이자 지체높은 고위관리인 전감찰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기존의 질서와 권위 체제를 유지해 달라고 관에 고발하고 있다.

 A와 B 두 기사에서 볼 수 있는 대립적 상황은 당시 신분 차별 철폐를 둘러싼 기득권 양반 세력과 상민·천민에 중인을 포함한 전반적인 평민들의 적극적인 저항을 나타낸다.

689)≪皇城新聞≫, 1900년 2월 28일;1901년 2월 8일;1901년 5월 16일.

≪독립신문≫, 1896년 11월 3일;1897년 3월 13일;1899년 7월 8일.

김중섭,≪형평운동의 연구-일제 침략기 백정의 사회사≫(민영사, 1994), 54쪽.
690)임순만·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 엮음,<기독교 전파가 백정 공동체에 미친 영향>(≪형평운동의 재인식≫, 솔출판사, 1993).
691)김중섭, 위의 글, 55쪽.
692)≪皇城新聞≫, 1902년 4월 9일.
693)≪皇城新聞≫, 1898년 10월 6일.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