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三. 우리 역사를 빚낸 이들1. 나라의 주춧돌

○ 넉넉한 살림을 위하여

고려의 의천(대각국사)은, 송 나라에서 많은 불경을 가지고 왔으며(3419), 그 밖에도 요나, 일본에서 불경을 사들였는데, 외국과의 무역이나 국내의 상업에도 화폐가 필요한 것을 주장하여, 단기 3430년부터는, 해동통보라는 구리돈과 은돈을 만들어 쓰게 되어, 경제적 활동에 많은 이익을 가져오게 하였다.

[해동통보]   

고려의 문익점은, 원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죄에 몰려서, 안남 지방으로 귀양갔다가, 풀려서 돌아올 때, 목화씨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이것을 재배하여 차차 나라 안에 퍼지게 하니, 이로부터 무명을 짜게 되고, 솜을 쓸 줄 알게 되어, 우리 생활에 많은 이익을 주었다.

조선 중기의 김육(金㻙)은, 일찌기 청 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경제와 산업 방면에 새로운 일을 많이 일으켰다.

우리 나라에서도 수레와 물방아와 돈을 만들어 쓰게 하고, 각 지방에서 바치는 공물세는, 모두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하였다.

또, 세종 대왕 때에 조선통보라는 구리돈을 만들어 쓰고 있었는데, 그 후 재료가 부족되어 중지하고 말았다. 김육은, 다시 돈을 만들어 쓸 것을 주장하여, 상평통보를 만들어(3967), 서울, 개성, 평양 지방에 쓰게 하다가, 나중에는 전국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상평통보   

조선 중기의 조엄은,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쓰시마에서 고구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4096). 그 후 이것을 심는 방법을 연구하여, 마침내 전국에 퍼지게 하여, 우리의 식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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