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Ⅵ. 민족 문화의 발달1. 고대의 문화[1] 학문과 사상, 종교

역사 편찬과 유학의 보급

삼국 시대에 학문이 점차 발달하고 중앙 집권적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역사 편찬이 이루어졌다.

고구려에서는 일찍부터 유기가 편찬되었으며, 영양왕 때 이문진이 이를 간추려 신집 5권을 편찬하였다. 백제에서는 근초고왕 때 고흥이 서기를, 신라에서는 진흥왕거칠부국사를 편찬하였다. 그러나 이들 역사서는 모두 전하지 않고 있다.

삼국 통일 이후, 신라의 대표적 문장가인 김대문은 화랑의 전기를 모은 화랑세기, 유명한 승려의 전기를 모은 고승전, 한산주 지방의 지리지인 한산기 등을 지었다. 그의 저서는 신라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신라의 유학자는 6두품 출신이 많았다. 통일 신라 초에 활약한 강수는 외교 문서를 잘 지은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설총은 유교 경전에 조예가 깊었고, 이두를 정리하여 한문 교육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통일 이후 신라와 당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당에 건너가 공부한 유학생이 많아졌다. 그 중에서 최치원은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후 귀국하여 개혁안 10여 조를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 뛰어난 문장과 저술을 남겼다.

발해도 당에 유학생을 파견하였는데, 당의 빈공과에 급제한 사람이 여러 명 나왔다.

도당(渡唐) 유학생

당에 건너가 공부한 유학생. 숙위 학생이라고도 하며, 이들은 대부분 6두품 출신이었다.

빈공과

당에서 외국 유학생을 상대로 보는 과거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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