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 연구
조선 후기 실학의 전통에서 비롯된 국학 연구는 대한제국 말기인 애국 계몽 운동 시기에 더욱 발전하였다. 특히, 국어와 국사를 연구하여 민족 의식을 높이고,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민족 문화를 지키려 하였다.
국어 분야에서는 갑오개혁 이후 공문서가 국⋅한문 혼용으로 제도화되고, 학교 교육에서 국⋅한문체 교과서가 사용되면서 언문 일치의 문자 생활이 가능해졌다. 유길준의 서유견문도 국⋅한문 혼용체 보급에 기여하였다. 1907년에는 국문 연구소가 만들어져 주시경, 지석영 등의 주도로 국문의 정리와 국어의 이해 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애국 계몽 운동 시기에 신채호, 박은식 등의 활약에 힘입어 근대 계몽 사학이 성립되었다. 이들은 민족 의식과 애국심을 키우고, 민족의 주체성을 세우고자 역사 연구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특히, 나라를 구한 위인의 전기를 써서 보급하고, 외국의 건국과 흥망의 역사서를 번역하여 민족의 독립 의지와 역사 의식을 높이려 하였다.
신채호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하여 일본의 식민 사관에 대항할 수 있는 민족주의 사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한편, 최남선, 박은식 등은 조선 광문회를 조직하여 실학자의 저서를 비롯한 고전을 다시 간행하여 보급하였다.
서유견문(西遊見聞)
1895년 간행. 유길준이 서양의 여러 나라를 돌아보면서 듣고 본 역사, 지리, 산업, 정치, 풍속 등을 기록한 책으로, 24편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