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Ⅴ. 조선의 성립과 발전1. 조선의 성립[1] 조선을 세운 사람들의 국가 운영 방향은?

조선 초기의 대외 관계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영토를 넓히려는 정책을 썼다. 정도전이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 군사 훈련과 군량미 비축을 추진하여 명을 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계획이 실현되기 전에 정도전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하고, 태조마저 왕위에서 물러나자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조선은 명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였고, 사신을 자주 파견하였다. 명과의 친선 관계를 통해 조선은 경제적, 문화적 실리를 취하였다.

한편, 조선 초기의 왕들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백성들을 평안도와 함경도로 이주시켜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개발을 추진하였다. 이 지역은 여진족이 자주 침입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주거지를 마련하여 살기도 하였던 곳이다.

그리하여 세종 때에는 압록강 방면에 최윤덕을 파견하고, 두만강 방면에 김종서를 파견하여 여진의 무리를 몰아 내고 4군6진을 설치하였다. 이후 이 곳은 조선의 영토가 되어 북쪽의 국경선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여진족에 대해서는 토벌과 동시에 포섭⋅회유 정책도 함께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조선은 수군을 강화하여 왜구의 노략질을 막고, 세종 때에는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 섬을 토벌하였다.

그 후 일본이 평화적인 무역 관계를 요구해 오자, 조선은 일본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자 제포(진해), 부산포, 염포(울산) 등 3포를 개항하였다.

이 곳에서 일본인들은 구리, 황, 향료 등을 가져와 식량, 의복, 서적등과 교역하였는데, 일본은 주로 생활 필수품과 서적 등 문화 용품이 필요하였고, 조선은 무기의 원료나 양반들의 기호품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 밖에 조선은 류큐, 시암(타이), 자와(자바) 등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와도 널리 교역을 하였다.

4군6진
왜관도(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수직 왜인 고신(국사 편찬 위원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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