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농민 봉기
홍경래의 난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영향은 의외로 커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 봉기가 잇달아 일어났다. 농민 봉기는 철종 때에 가장 심하여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함흥, 남으로는 제주도까지 확대 되었다.
철종 때에 진주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1862)는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일으킨 것이었다. 이 시기의 농민 봉기는 대개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일어났으며, 그 규모나 양상도 비슷하였다. 처음에는 관청에 호소하다가,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봉기한 것이다.
이러한 농민들의 항거는 단순한 반발이 아닌, 삼정의 문란과 탐관오리의 횡포에 항거하여 사회적 불만을 드러낸 농민의 자각 운동이었다.
읽기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