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수립
3⋅1 운동이 곧바로 독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으나, 우리 민족은 독립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보다 조직적으로 독립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일어났다.
이미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연해주에 대한 광복군 정부가 조직되어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정부 수립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3⋅1 운동을 통해서였다. 만세 시위가 전개되는 중에 서울에 13도의 대표가 모여, 앞으로 독립 운동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해 갈 정부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이것이 한성 정부였다.
한성 정부를 비롯하여, 중국의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조직되었고, 미국 등지에서도 임시 정부의 수립을 추진하였다. 연해주에서도 대한 국민 의회라는 의회 중심의 임시 정부가 조직되었다.
이와 같이 여러 임시 정부가 각지에서 수립되자, 민족 운동가들은 전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통합된 정부만이 강력한 독립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국내외에 수립된 여러 임시 정부를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통합하였다.
당시 상하이는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으며, 세계 여러 나라와의 외교 활동이 편리한 곳이어서,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모여 독립 투쟁을 도모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기본으로 한 국가 체제를 갖추고, 대통령제를 채택하여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몇 차례에 걸쳐 헌법을 개정하면서 변천하였으며, 김구가 주석이 되어 광복이 될 때까지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