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근고사(近古史) - 제3편 학문의 부흥과 무예 쇠퇴의 시대[文興武衰時代]

제7장 고려(高麗)의 쇠망(衰亡)

공양왕(恭讓王)이 즉위하였으나, 그 사람됨이 어리석고 나약하여서 오직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대간(臺諫)의 말에 따라 우왕⋅창왕[禑昌]을 편들었다는 죄목으로 조민수(曺敏修)를 강등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이색(李穡)⋅이숭인(李崇仁)을 유배 보냈으며, 우왕⋅창왕을 주살하고,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립하여 나라 안팎의 군사상 업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또 우리 태조(太祖)를 도총제사(都摠制使)로 임명하고 배극렴(裵克廉)1)은 중군 총제사(中軍總制使)로, 조준(趙浚)은 우군 총제사(右軍摠制使)로, 정도전(鄭道傳)은 좌군 총제사(左軍摠制使)로 삼았다.2) 왕이 깊이 태조께 의지하였으므로 태조께서 병을 이유로 사직을 하였으나 문(文)⋅무(武)의 큰 권한이 이미 태조께 귀의하여 그 위엄과 명망이 날로 높아지셨다.

이에 정도전⋅남은(南誾)⋅조준⋅윤소종(尹紹宗)이 태조를 추대할 뜻이 있었으나, 정몽주(鄭夢周)가 홀로 충성과 의리를 내세워 스스로 떨쳐 일어나 왕실을 보전하고자 하였다. 승상(承相)이 된 후에 태조를 도모할 뜻을 지니고 윤소종⋅남은⋅정도전 등을 축출하고, 이색과 이숭인을 다시 불러들였으며, 김진양(金震陽) 등을 천거하여 대간의 자리[諫職]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어서 태조를 해치고자 하였으므로 태종(太宗)께옵서 조영규(趙英珪)로 하여금 선죽교(繕竹橋)에서 정몽주를 쳐서 죽이게 하고, 정몽주의 당여(黨與)인 이색⋅우현보(禹玄寶)⋅이숭인 등을 유배 보내고, 김진양3)⋅이종학(李種學)을 죽이니, 왕씨(王氏)에게 충성하였던 자들은 모두 제거한 것이었다.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배극렴(裵克廉)4) 등이 왕태후(王太后)의 교지(敎旨)를 받아 공양왕을 폐위하여 원주(原州)로 내쫓고, 태조께서 즉위하셨다. 이로써 고려가 멸망하였으니, 이어져 온 왕대(王代)가 34대였으며, 햇수로는 475년이었다. 이때가 단기 3725년(1392)이었다.

대체로 고려는 400년 동안에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였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란(內亂)이 겨우 진정되어도 외부의 적이 계속해서 이르게 되었으며, 이에 권세를 잡은 신하가 전권을 휘두르다가 끝내 왕실이 뒤바뀌고 천명(天命)이 올바르게 되었던 것이다.

1)원문에는 배극렴(裴克廉)으로 되어 있으나, 배극렴(裵克廉)으로 바로잡는다.
2)고려사 공양왕 3년 1월 기사에는 조준을 좌군총제사, 정도전을 우군총제사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3)원문에는 김양진으로 되어 있으나, 위의 문장을 참고로 하여 김진양으로 바로잡는다.
4)원문에는 배극렴(裴克廉)으로 되어 있으나, 배극렴(裵克廉)으로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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