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1. 동학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1. 청의 간섭
          • 1) 청의 주차관 임명
          • 2) 청의 외교 및 내정간섭
          • 3) 청의 경제이권 확장
          • 4) 경제적 영향
        • 2. 조선의 대외관계
          • 1) 조·일관계
          • 2) 조·미관계
          • 3) 조·러관계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1. 통치기구의 재정비
        • 2. 민씨척족정권의 시정
        • 3. 독립외교의 추진
        • 4. 개화정책의 추진과 좌절
        • 5. 외국인 고문의 고빙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1. 개항 후의 국제무역
          • 1) 불평등조약 체계의 성립
            • (1) 일본에 의한 개항과 무관세무역
            • (2) 청의 속방화정책과 불평등조약체계의 성립
          • 2) 국제무역의 추이(1876∼1894)
            • (1) 개항 이전의 국제무역
            • (2) 일본의 독점무역기(1876∼1882)
            • (3)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외국 상인의 침투와 조선 상인층의 대응
            • (1) 일본 독점무역기(1876∼1882)
            • (2) 청·일 경쟁무역기(1883∼1894)
            • (3) 조선상인층의 대응과 변모
        • 2. 국내적 상품유통의 변동
        • 3. 방곡령실시의 사례와 원인
          • 1) 제1기(1876∼1884)
          • 2) 제2기(1884∼1894)
          • 3) 제3기(1895∼1904)
        • 4. 사회신분제의 동요
          • 1) 노비제의 변화
            • (1) 제도적 변화
            • (2) 노비 호구의 변화
          • 2) 중간신분층의 동향
          • 3) 양반 신분의 동향
            • (1) 양반 호구의 변화
            • (2) 양반 신분의 동요와 분화
        • 5. 개항기 지주제와 농업경영
          • 1) 개항 후 농업변동의 요인
            • (1) 통상무역의 확대와 농촌사회
            • (2) 정부 지배층의 농업문제 인식과 농업정책
          • 2) 지주제의 유형과 동향
          • 3) 농업생산과 지대의 변화
          • 4) 1894년 이후 지주제 전망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1. 동학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 1) 개항 이후 미곡수출의 증대와 지주경영의 강화
          • 2) 일·청상의 침투와 제국주의적 상품유통구조의 창출
          • 3) 부세운영의 변화와 농민몰락의 심화
          • 4) 향촌사회의 변동과 농민항쟁의 고양
        • 2. 동학교조 신원운동
          • 1) 동학교단의 조직과 운영
          • 2) 교조신원운동의 전개
            • (1) 공주취회
            • (2) 삼례취회
            • (3) 광화문복소와 척왜양방문 게시운동
            • (4) 보은취회와 금구취당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봉기
          • 1) 고부민란
            • (1) 고부민란의 배경
            • (2) ‘사발통문’ 거사계획
            • (3) 고부민란의 전개
            • (4) 관권의 대응
            • (5) 고부민란의 농민전쟁으로의 발전
          • 2) 전봉준의 기병과 격문
            • (1) 무장기포
            • (2) 고부점령
            • (3) 백산대회
        • 2. 동학농민군의 격전
          • 1) 관군의 남하와 황토현·장성전투
            • (1) 농민군의 진군과 감영군의 출동
            • (2) 황토현전투
            • (3) 경군의 남하와 농민군의 남행
            • (4) 장성전투
          • 2) 전주성의 점령과 화약
            • (1) 전주성 점령
            • (2) 완산전투
            • (3) 전주화약
        • 3.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
          • 1) 조세수취체제에 대하여
            • (1) 조세수취제도 전반에 관하여
            • (2) 전정에 관한 요구조항
            • (3) 군정에 관한 요구조항
            • (4) 환곡에 관한 요구조항
            • (5) 잡세·잡역에 관한 요구조항
            • (6) 전운영에 관한 조항
            • (7) 탐관오리에 관한 요구조항
          • 2) 무역·상업 문제에 대하여
            • (1) 일본의 경제적 침투에 대하여
            • (2) 국내상업문제에 대하여
          • 3) 기타 정치적 요구조항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1. 집강소의 설치
          • 1) 휴전과 집강소의 설치(5월 8일∼6월 15일경)
          • 2) 집강소 설치의 전면화(6월 15일경∼7월 5일)
          • 3) 집강소의 공인 (7월 6일∼10월)
        • 2. 집강소의 구성과 조직
        • 3. 집강소의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1. 동학농민군의 재기
          • 1) 남접농민군의 재기
          • 2) 북접농민군의 기포
        • 2. 반일투쟁의 전개
          • 1) 반일투쟁의 발발
          • 2) 남·북접 연합과 봉기의 확산
          • 3) 관군 및 일본군의 남하
          • 4) 농민군의 북상과 공주전투
          • 5) 항일연합전선의 추진
          • 6) 농민군의 후퇴와 농민전쟁의 좌절
        • 3.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의의
          • 1) 결합의 유대
          • 2) 경제적 지향
          • 3) 국가·민족·국민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향촌사회의 변동과 농민항쟁의 고양

 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지배구조였던 사족지배체제는 18세기 이후 점차 동요, 해체되고 수령-서리로 이어지는 공적 권력이 지배의 주체로 성장하였다. 종전 수령과 사족간의 견제와 협조를 통해 향촌민을 지배하던 관행이 점차 사라지고, 재지양반이 장악한 향청은 수령권에 철저히 종속되었던 것이다. 수령권에 의한 향촌장악과정에서 일부 사족들은 관권과 결탁하여 토호로 성장하였고, 새로운 향촌사회의 실력자로서 新鄕세력이 대두하였다.0575) 그러나 향촌사회의 실력자였던 신향층이나 饒戶富民層은 구래의 사족의 권위를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지배체제를 형성할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다.0576) 이들은 상업적 농업이나 상업에의 투자 등 구래의 사족과 부의 축적기반이 다른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은 부세운영과정에 관권과 결탁하거나 또는 고리대 등의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등 구래의 사족과 부의 축적기반이 다를 바가 없는 계층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구래의 지배체제를 대체하여 새로운 사회를 열어 나갈 주체로 성장하기 보다는 새로운 사회체제와 봉건적 사회체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계층이었다.0577)

 이처럼 19세기 향촌사회는 구래의 사족지배체제가 동요되는 가운데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신향과 요호부민층이 대두하는 등 사회구조가 점차 변동하고 있었다. 18세기에 전면화되었던 향촌사회의 주도권을 둘러싼 신향과 구향간의 대립은 적어도 19세기 중엽 이후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잠복된 형태로 존재하였다. 향촌사회의 구체적인 대립은 지주와 소작관계, 나아가 수령-서리를 중심으로 전개된 부세운영을 둘러싸고 이에 반발하는 요호부민·빈농층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19세기에 이르면 농민층의 항쟁도 점차 고양되어 갔다.

 18세기 수령권에 대한 저항은 殿牌作變, 松田放火 등과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부터 수령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행위까지도 나타나지만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저항에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0578) 억울한 일이 있을 때에도 대부분 동리민인들이 관청앞에 몰려가 官門會哭의 형태로 시위를 벌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면 이와 같은 농민층의 저항은 합법적인 공간속에서 呈訴運動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적어도 수령이나 서리의 잘못에 대해서 官門會哭이라는 소극적인 저항을 뛰어 넘어 所志를 작성하고 직접 수령에게 억울한 일을 시정해 줄 것을 합법적으로 요구하는 것이었다. 19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정소운동은 대부분의 군현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정소운동의 전개는 당연히 농민층 내부에 문자를 아는 농민적 지식인층의 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들은 문자를 모르는 농민들의 억울한 일을 대신하여 소지를 작성하거나 부세문제의 농민적 해결에 앞장서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1862년 晉州民亂의 柳繼春의 사례에서 보듯이0579) 특정 직업을 지니지 않고 ‘呈營呈邑’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었다. 1894년 고부민란단계의 전봉준의 경우도 처음에는 이와 같이 부세문제의 농민적 해결을 위해 농민들의 소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0580)

 이러한 농민적 지식층의 성장은 향촌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농민들의 요구에 맞게 제기하고, 농민적 해결을 추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1862년의 농민항쟁이 일시에 70여 개 군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민란이라는 봉기단계 이전에 이와 같은 합법공간에서의 다양한 정소운동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권력과 유착하여 농민들을 수탈하는 자도 없지는 않았지만 농민봉기에 돌입했을 경우 대부분 이들이 지도자로 추대되고 있었다.0581)

 한편 농민층의 조직역량도 성장하였다. 부세운영에서 도결제가 도입되면서 동리민인들이 부세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고,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장으로서 민회나 리회 등의 농민집회가 대부분의 향촌에는 존재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촌계류의 생활공동체나 두레와 같은 노동공동체도 농민들의 일상적인 조직체로서 기능하였던 것이다.0582)

 특히 개항 이후 대원군 정권기에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라는 두 차례의 외세와의 전쟁을 경험한 뒤에도 농민항쟁은 계속되고 있었다.0583) 특히 대원군이 하야하고 민씨정권이 들어선 이후 농민항쟁은 더욱 고양되고 있었다. 고종 25년(1888)을 경계로 민란은 더욱 활성화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0584) 민란의 일상화 속에서 축적된 항쟁의 경험은 농민적 지식인층의 주도하에 농민들이 항쟁의 주체로 대두되고 있었던 것이다. 개항 이후 향촌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이와 같은 농민적 지식층들도 성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봉준의 사례에서 보듯이 향촌사회 문제, 특히 부세운영에 관련한 사항들에 대해서 매우 해박한 지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향촌에서 농민들로부터 상당한 신망을 얻고 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농민항쟁은 이들의 주도하에 촉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향촌사회를 기본 공간으로 하여 전개된 항쟁 이외에도 처음부터 무장봉기를 목적으로 추진된 병란도 19세기 후반에는 빈발하였다. 고종 6년(1869) 광양란과 고종 8년(1871) 이필제란 등은 그러한 예였다. 또한 정감록류의 도참비기사상에 근거한 각종 변란도 19세기에는 자주 나타났다. 이들 병란이나 변란의 주도자들은 향촌내부에 존재근거를 지니기 보다는 동학이나 정감록류의 이념에 기초하여 조선왕조를 부정하던 지식인층이었다.0585) 동학농민전쟁은 이와 같은 두 부류의 움직임이 하나로 합일되면서 전국적 규모의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농민전쟁의 기본흐름은 향촌사회에 기반하여 사회적 모순을 농민적으로 해결하려는 민란의 흐름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동학사상은 농민전쟁의 지도이념이 될 수 없는 정치적 空洞性의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동학사상에서는 당시 농민의 현실을 죽을 처지에 빠진 인민 등의 상태로 파악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현실 그대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기는 했지만, 모순된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의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後天開闢·同歸一體·輔國安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은 관념, 환상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추상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동학이념은 농민들의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정개혁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집단의 힘으로 투쟁해 갈 수 있는 이념을 제공할 수 없었다. 농민전쟁시 농민들의 사상과 행동은 동학에 근거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사회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창조한 것이었다.0586) 이러한 이념과 사상은 정소운동의 주도자라고 할 수 있는 농민적 지식인층, 즉 향촌사회에 뿌리를 굳건하게 내린 자들에 의해 마련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봉건적인 제수탈에 반대하는 반봉건 이념과 동시에 제국주의적 정치, 경제적 침탈에 반대하는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高東煥>

0575)고석규,≪19세기 조선의 향촌사회연구-지배와 저항의 구조-≫(서울대출판부, 1998).
0576)안병욱,<19세기 壬戌民亂에 있어서의 鄕會와 饒戶>(≪韓國史論≫14, 1986).
0577)이윤갑,<19세기 후반 경상도 星州地方의 농민운동>(≪손보기박사정년기념 한국사학논총≫, 1988).
0578)한상권,<18세기 중·후반의 농민항쟁>(≪1894년 농민전쟁연구 2-18·19세기의 농민항쟁≫, 역사비평사, 1992).
0579)망원한국사연구실,≪1862년 농민항쟁≫(동녘, 1988).
0580)≪全琫準供招≫乙未 二月二十一日 全琫準 再招問目.
0581)고동환,<19세기 賦稅運營의 변화와 呈訴運動>(≪국사관논총≫43, 1993).
0582)김인걸,<朝鮮後期 村落組織의 변모와 1862년 농민항쟁의 조직기반>(≪진단학보≫67, 1989).
0583)고동환,<대원군 집권기 농민층 동향과 농민항쟁의 전개>(≪1894년 농민전쟁연구 2-18·19세기의 농민항쟁≫, 역사비평사, 1992).
0584)백승철,<개항이후(1876∼1893) 농민항쟁의 전개와 지향>(≪1894년 농민전쟁연구 2-18·19세기의 농민항쟁≫, 역사비평사, 1992).
0585)배항섭,<19세기 후반 ‘變亂’의 추이와 성격>(≪1894년 농민전쟁연구 2-18·19세기의 농민항쟁≫, 역사비평사, 1992).
0586)정창렬,≪甲午農民戰爭 硏究-全琫準의 思想과 行動을 중심으로-≫(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