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6권 신문화운동 ⅡⅡ. 근대 종교운동5. 천도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1. 근대 신문의 효시
          • 1) 신문 발간의 배경
          • 2)≪한성순보≫의 창간
            • (1) 박문국 설치
            • (2) 신문 발간의 목적
            • (3) 필화와 중국과의 관계
          • 3)≪한성주보≫의 발간
            • (1) 순보와 주보의 차이
            • (2) 국내소식과 의견기사 증가
            • (3) 기사의 출처
          • 4) 박문국의 운영
            • (1) 발행부수
            • (2) 주보의 폐간
          • 5) 개화와 국민교화의 기능
        • 2. 근대 언론의 발달
          • 1) 민간지 등장의 시대적 배경
          • 2) 최초의 민간지≪독립신문≫
            • (1) 서재필의 망명과 귀국
            • (2) 체재의 변화
            • (3) 광고
            • (4)≪독립신문≫의 역할
            • (5) 서재필의 추방
            • (6) 윤치호와 아펜젤러의 경영
          • 3) 외국인의 신문 발행과 잡지
            • (1) 일본인 발행의 신문들
            • (2) 기독교계통의 종교신문
            • (3) 잡지의 시초
          • 4) 일간지 ≪일신문≫
            • (1) 배재학당의 ≪협셩회회보≫
            • (2) 일간신문으로 발전
            • (3) 기사의 외교문제화
            • (4)≪상무총보≫발간
          • 5) 새로운 신문들
            • (1)≪경성신문≫·≪대한황셩신문≫
            • (2) 필화사건
        • 3. 언론의 구국투쟁
          • 1) 한말 언론과 계몽운동
            • (1) 국내신문
            • (2) 국외신문
          • 2) 한말 언론의 국권회복운동
            • (1)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한 저항
            • (2) 국채보상운동의 주도
            • (3) 국민계몽과 애국심의 고취
          • 3) 일제의 언론규제
            • (1) 사전검열
            • (2)<신문지법>의 제정
            • (3)<신문지법>의 개정
      • Ⅱ. 근대 종교운동
        • 1. 유교
          • 1) 유교개혁사상의 발생
          • 2) 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유교개혁사상
            • (1) 도학파의 유교개혁사상
            • (2) 애국계몽사상가의 유교개혁사상
            • (3) 심학(양명학)파의 유교개혁사상
          • 3) 유교개혁사상의 한계와 의의
        • 2. 불교
          • 1) 근대와 한국불교
          • 2) 문호개방과 한국불교
          • 3) 개화운동과 불교
          • 4) 일본불교의 침투와 입성 해금
          • 5) 입성 해금 이후의 교계 동향
          • 6) 임제종운동-반조동종운동
        • 3. 천주교
          • 1) 한국근대사와 천주교회
          • 2) 병인박해와 한국천주교회
          • 3) 그리스도 전교자유의 구현
          • 4) 교안과 신교자유의 문제
          • 5) 제도교회로의 발전과 새로운 고민
          • 6) 근대 천주교회의 사회적 기여
            • (1) 교육활동
            • (2) 근대적 출판·언론 문화활동
            • (3) 근대적 사회복지사업의 전개
        • 4. 기독교
          • 1) 기독교의 수용과 정착
            • (1) 중국과 일본을 통한 접촉
            • (2) 한미수호조약의 채결과 미국의 대한선교
          • 2) 교회의 발전
            • (1) 교회의 설립과 교단조직
            • (2) 선교지역 분할과 교파 연합활동
            • (3) 네비우스선교방법과 대부흥운동
          • 3) 기독교와 민족의식
            • (1) 민족의식의 태동
            • (2) 교회의 비정치화
          • 4) 기독교와 한국의 근대화
            • (1) 의료활동
            • (2) 교육활동
            • (3) 사회개혁운동
        • 5. 천도교
          • 1) 천도교의 성립
          • 2) 천도교의 중심사상
          • 3) 천도교의 민족운동
            • (1) 제1단계 천도교의 민족운동
            • (2) 제2단계 천도교의 민족운동
        • 6. 대종교
          • 1) 대종교의 창립과 의의
          • 2) 대종교의 교단조직과 포교활동
            • (1) 나철교조시기 교단조직과 포교활동
            • (2) 제2세 교주 김교헌시기의 교단조직과 포교활동
          • 3) 대종교의 항일민족독립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1. 서양과학에 대한 인식
          • 1) 수학
          • 2) 물리학
          • 3) 화학
          • 4) 박물학
          • 5) 천문학과 기상학
          • 6) 세계관의 변화
        • 2. 근대 과학기술의 도입
          • 1) 교통·통신·전기
            • (1) 근대적 교통·통신·전신 및 전기의 도입 배경
            • (2) 사회간접자본의 전개과정
          • 2) 근대 의료기술
            • (1) 서의한역서의 소개와 유입
            • (2) 일본을 통한 의료기술의 도입
            • (3) 서구 선교사들을 통한 의료기술의 도입
            • (4) 주체적인 서양의술의 수용
          • 3) 근대건축
            • (1) 19세기 말 양식건축의 이입
            • (2) 20세기 건축
          • 4) 근대 산업기술
            • (1) 개항 이전 서양식 무기기술의 개발
            • (2) 개항 이후 기계기술의 도입정책
            • (3) 대한제국시기 방직기술의 이식
            • (4) 1905년 이후 정미기술의 이식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천도교의 중심사상

먼저 천도교사상의 유래와 연원을 말한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1860년에 창도된 동학사상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학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뒤 사실상 여러 갈래로 분화되어 천도교만이 동학사상을 계승했다고 볼 수는 없다.

여기서 1894년의 봉기 실패 이후 분파화된 동학의 여러 갈래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갑오년 봉기에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었던 반봉건·반외세투쟁을 계속해 가는 세력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제2차 동학농민전쟁 때부터 나타나는 의병, 갑오년 이후의 英學黨·活貧黨에 의한 투쟁, 1910년 이후 만주지방의 독립군 등에 편입되어 활동하는 동학세력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갑오년의 반봉건·반외세의 이념을 완전히 저버린 채 급격히 체제내화하거나 일면 개화를 표방하여 친일화하는 세력이다. 여기에는 동학 교도를 탄압하는 관료로 진출하거나 침략자 일제의 앞잡이로 변신한 일진회 및 시천교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갑오년 봉기의 중심 무대였던 전라도지역의 경우 그 대부분이 일진회 또는 시천교의 세력권으로 전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셋째 1894년 동학농민전쟁은 ‘반봉건적임과 동시에 반자본주의적·반식민지주의적이며 반근대적 변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332) 종래 동학이 표방했던 반근대적 노선을 버리고 일본을 통한 근대문명을 수용하여 종래의 동학교단을 크게 쇄신하려고 한 세력을 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망명 개화파 인사들이 이끄는 천도교이다. 넷째 갑오년 봉기의 실패는 동학교단의 지나친 현실참여 내지는 정치참여에 있다고 비판하고 1894년 이후 철저하게 종교적 수도주의, 은둔, 현실 불간섭을 표방하여 순수한 종교운동에만 전념하는 세력이다. 여기에는 경상북도 尙州를 비롯, 충청남도 鷄龍山 등을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는 敬天敎·靑林敎·東學敎·上帝敎 등의 동학계 신종교들이 있다. 시천교 창립 초기에 일시 가담했던 김연국의 경우에는 1920년경에는 수도은둔주의를 내걸고 계룡산으로 들어가 상제교를 창립하여 활동한다. 다섯째 동학과는 완전 결별하여 새로운 종교운동에 나서거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세력을 들 수 있다. 새 종교운동의 대표적 사례로는 1901년에 창립되는 姜一淳의 甑山敎, 1916년에 전라남도 영광에서 창립되는 朴重彬의 圓佛敎 등을 꼽을 수 있으며,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사례로는 가톨릭으로의 개종(황해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을 들 수 있다.

이상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천도교는 갑오년 봉기 이후 여러 갈래로 분화되는 동학의 한 갈래로 이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종래 1860년에 성립을 본 동학과, 1905년에 성립을 본 천도교를 동일선상에 두어 이해하려는 견해는333) 수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천도교와 동학사상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양자의 차이는 천도교를 성립시키는 손병희의 갑오년 직후부터 1905년까지의 행적, 그리고 해당 시기의 천도교의 교리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에서도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1898년 7월에 최시형이 체포되어 처형되는 시기를 전후하여 손병희는 서울로 올라와 이종일을 비롯한 문명개화적 인사들과 접촉하였다.334) 이 같은 사실로 미루어 손병희는 1898년경부터 이미 동학사상에 근대문명을 결합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901년 손병희의 일본으로의 외유는 표면적으로는 관변측의 탄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욱 중요했던 의도는 ‘근대문명 섭취를 위한 외유’335)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일본에서의 외유기간 동안 손병희는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박영효·오세창·권동진·양한묵 등 망명 개화파 인사들과 교유하며 근대문명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갔던 것이다.

손병희의 근대문명에 대한 이해는 드디어 1902년에 이르러≪삼전론≫이라는 저술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이 삼전론은 물론 종래 동학의 天道사상에 그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이었지만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근대문명에 대한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삼전론≫의 구성은 먼저 서언에 이어, 道戰·財戰·言戰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결어로 되어 있다. 우선 손병희는 서언에서 천도의 근본원리는 불멸이지만 시세의 변화에 의해 다스리는 방법은 변한다(治異道同 時異規同也)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또 도전·재전·언전 즉 사상전·경제전·외교전의 세 가지를 들면서 새로운 정세에 대응하는 동학사상의 문명개화적 방도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동학이 근대적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선언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336)고 하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주목할 만한 내용은 동학이 지니고 있었던 민족주의적 성격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삼전론≫에서 손병희는 제국주의가 각축하는 시대에 대외적으로는 천도의 원리를 固持하여 국제간의 분쟁을 병력이 아니라 담판에 의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였고, 대내적으로는 신사회를 향한 구태의 탈피를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人和之策’으로써 국교의 확립을 기본과제로 제기하는 등 근대문명과 동학사상을 일체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동학이 본래 지니고 있었던 ‘輔國安民’이라는 민족주의적 성격은 점차 약화되어 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삼전론≫외에 손병희의 저작으로 알려지고 있는≪覺世眞經≫(1899)·≪授受明實錄≫(1899)·≪道訣≫(1899)·≪明理傳≫(1903)·≪大宗正義≫(1905) 등에는 초기 천도교의 天觀이 드러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337) 예를 들어 종래 동학교조 최제우가 제시했던 ‘侍天主’의 관념은 초기 천도교 교리서 속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 1899년에 지었다고 알려진≪각세진경≫에서는 ‘시천주’대신 단지 ‘侍天’이라고만 기록되어 ‘主’자가 탈락하고 있다. 본래 동학에서 말하는 ‘시천주’의 ‘주’는 하늘(天)에 대한 존칭을 뜻하는 것인데 천도교에 들어와 탈락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시천주’와 관련된 표현이 초기 천도교 교리서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수수명실록≫및≪도결≫등에 있어서는 ‘人是天人’이란 표현이 보이고 있으며, 이 표현은 또한 1903년에 지었다고 하는≪명리전≫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1905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대종정의≫에서는 그 유명한 ‘人乃天’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요약하면 동학의 ‘시천주’가 천도교 초기에 들어와 ‘주’자가 탈락된 ‘人以侍天’이란 표현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다시 ‘人是天人’이란 표현으로, 그리고 마침내 1905년경에는 ‘인내천’이란 표현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천도교에서는 종래 동학의 ‘시천주’에서 굳이 ‘주’를 탈락시키고 ‘시천’이라고만 했을까. ‘시천’은 하느님(天主)이 아니라 하늘(天)을 모시는 것으로 이것은 하느님의 의지적 성격을 부정하려는 의식적인 의도였다고 한다.338) 다시 말하면 ‘시천’에서 말하는 천, 즉 하늘은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는 원리 또는 원소를 뜻한다. 그러므로 존경의 대상일 수 없고 따라서 존칭을 뜻하는 님(主)을 붙일 필요가 없게 된다339)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내천’이란 천도교의 宗旨에 대해 부언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인내천’은 조선 민중사상의 도달점이며 평등사상을 가장 간명하게 선언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천도교 초기 저작에는 오히려 性理學(朱子學)의 방향340)이 농후하다고 지적하면서 그 표현이 지나치게 철학화되고 있을 뿐341)이라고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인내천이란 있는 그대로의 인간에게 전일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342) 오히려 “최시형이 범신론적 천관의 통속적 전개에 의해 한 걸음 진전시킨 愚民觀의 극복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343)고 하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위의 두 견해는 반드시 정당하다고 볼 수 없을지라도 종래 동학에서 강조되어 온 인격적 天觀의 측면이 천도교에 들어와 후퇴하는 가운데 하늘(天)의 철학적·원리적 측면이 강조되는 ‘인내천’으로 정리되었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천도교사상과 관련하여 지적해 두고자 하는 것은 普文館이라는 근대적 인쇄시설에 대해서이다. 천도교 직할 인쇄소이기도 한 보문관은 1907년 이후 집중적으로 천도교의 교리해설서344)를 간행하고 있다. 그리고 1910년 8월에 창간호가 나온≪天道敎會月報≫에 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보문관판 천도교 교리서들은 이미 지적했듯이 ‘中央總部發刊’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교리서는 1907년에 나온≪東經演義≫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은 芝江 梁漢黙의 집필로서 동학의 기본경전인≪東經大全≫을 근대주의의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해석한 저술이다. 이것은 천도교 초기사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종래 동학사상과의 비교검토를 하는데 있어서도 참고하지 않으면 안되는 교리서로 볼 수 있다.≪천도교회월보≫는 1910년에 천도교의 기관지로서 창간되었기 때문에 천도교 초기의 교리에 관한 기사가 풍부하여 초기 천도교사상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자료라 할 것이다.

332)趙景達,<甲午農民戰爭指導者 全琫準의 硏究>(≪朝鮮史叢≫7, 1983), 71∼72쪽.
333)예를 들면 姜在彦은 1969년에<東學=天道敎의 思想的 性格>(≪思想≫537, 東京;岩波書店, 1969년 3월호)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동학과 천도교를 동일 선상에 두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갑오년 봉기 이후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동학의 분화현상에 대해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한 데서 온 결과로 생각된다.
334)앞의 주 7)과 같음.
335)趙景達, 앞의 책, 363쪽.
336)위와 같음.
337)이들 저작이 손병희 개인의 저작인지에 대해서는 검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들 저작이 손병희 개인의 저작이 아니라 할지라도 초기 천도교사상을 살피는데 있어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338)崔東熙,<韓國 東學 및 天道敎史>(≪韓國文化史大系≫Ⅵ, 高麗大 民族文化硏究所, 1970), 767쪽.
339)崔東熙, 위의 글, 767쪽.
340)崔東熙, 위의 글, 770쪽.
341)崔東熙, 위의 글, 771쪽.
342)趙景達, 앞의 책, 369쪽.
343)위와 같음.
344)1900년대 집중적으로 간행되는 천도교의 교리서에 대해서는 崔起榮과 필자가 공동 편집한 다음의 자료집이 참고가 된다.

崔起榮·朴孟洙 編,≪韓末 天道敎資料集≫상·하(國學資料院, 1997).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