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과 ‘민주개혁’
1946년도는 한반도에 수립될 국가가 통일국가가 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분단국가가 될 것인지 그 기본 방향이 결정되는 중요한 한 해였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입각하여 미국과 소련은 그 해 3월에 공동위원회를 열어 통일임시정부 수립문제를 논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남북한 사회는 이미 1945년 말∼1946년 초에 이른바 ‘탁치정국’ 속에서 급속히 좌우익으로 분열되며, 2월에는 남북한에서 각각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된다.749) 전자는 미군정에 대한 일종의 자문기구 성격에 국한되지만, 후자는 소련주둔군을 대신하여 사실상 국가권력기구의 역할이 주어지게 된다. 이 두 기구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순탄하게 진행될 경우 통일임시정부의 토대로서 수렴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만약 공동위원회가 결렬될 경우, 남북한 각각에서 분단국가 수립의 토대로 작용할 수 있는 分斷性을 내포한 과도적 국가기구였다.
749) | 민주의원의 의장으로는 이승만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의장으로는 김일성이 선출되었다. 남북 분단정부를 이끌게 되는 이승만과 김일성은 이미 1946년 2월 시점에 과도기적인 권력기구의 대표로 부상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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