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남긴 동래 상인들

역사 연구에서 사료는 매우 중요하다. 동래 상인 연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동래 상인의 성명 같은 인적 사항이 밝혀져야 그 사람
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추적할 수 있다.
현재 규장각에는 동래 상인과 관련된 귀중한 사료가 남아 있다. ‘동래부가 허가한 상인 명단’이라는 뜻의 제목을 달고 있는 『동래부상고안(東萊府商賈案)』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상인들의 성명만 나열되어 있을 뿐 이에 관한 설명이 하나도 없다.141) 이 사료는 총 7책이 한 권으로 묶여 있는데 구성이 매우 흥미롭다.
표 ‘『동래부상고안』의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1860∼1870년대에 ‘동래부가 허가한 상인 명단’ 중에는 세 부류가 있다. 그 첫 번째가 「가사리상고안」에 등재된 상인 집단(A)인데, 여기에서 ‘가사리’란 우뭇가사리를 뜻한다. 즉, 이들은 동래부에서 우뭇가사리의 독점권을 허가받은 동래 상인들로 보인다. 1·2·3책에 올라와 있는 상인들의 숫자는 각각 42·41·48명인데, 세 책에 수록된 가사리상고의 수는 모두 79명이다. 시기에 따라 새로 진입하거나 탈퇴하는 상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대가 가장 이른 1866년 명단(제2책)에 들어 있는 41명 가운데 1875년(제3책)에도 수록된 사람이 15명이나 되었다. 이들에게는 10년 가까이 우뭇가사리의 독점 매매권이 허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들은 왜관 출입 동래 상인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상고안」(B)과 「전인안」(C)에 올라 있는 상인 집단에 속하는 동래 상인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부여된 독점 매매권의 내용은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동래부가 이들에게서 상세(商稅)를 거뒤들이기 위하여 「상고안」과 「전인안」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네 책에 수록된 총 41명의 상인 중에서 「상고안」과 「전인안」에 중복 기재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것은 동래부가 ‘상고(商賈)’와 ‘전인(廛人)’을 엄격하게 구분하였다는 의미일 것이다.142)
141) | 김용욱, 『부산·동래에 관한 도서 해제(圖書解題)』, 『항도 부산』 1, 부산시사편찬위원회, 1962, 270쪽 ; 서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 한국본 도서 해제(奎章閣韓國本圖書解題)』 사부(史部) I, 1981, 388쪽 ; 정성일, 『조선 후기 대일 무역의 전개 과정과 그 성격에 관한 연구-1790년대∼1870년대를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경제학박사 학위논문, 1991, 70∼72쪽 ; 정승모, 『시장의 사회사』, 웅진출판, 1992, 190쪽 ; 김동철, 「『동래부상고안(東萊府商賈案)』을 통해서 본 19세기 후반의 동래 상인-『동래무임선생안(東萊武任先生案)』과의 비교-」, 『한일 관계사 연구』 창간호, 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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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 김동철, 「『동래부상고안』을 통해서 본 19세기 후반의 동래 상인」, 120∼121쪽, 130∼132쪽, 141∼14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