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3장 궁궐 안 특별한 사람들의 옷차림1. 궁궐 안의 일상 옷차림

고귀한 왕실의 여인

[필자] 임재영

궐내 내명부(內命婦)의 최고 책임자이자 통솔자였던 왕비는 유교 사회인 조선시대 여성의 대표자이며 상징적인 존재이다. 대개 왕세자빈으로 궁궐에 들어간 후 왕세자가 보위를 잇게 되면 국모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밖에도 왕과 정식 혼례를 치른 후 왕의 정실 부인인 왕비로 책봉되는 경우가 있다. 왕비나 세자빈으로 대표되는 궁중 귀인들의 생활은 단조롭고 한가하였다. 하루 일과는 새벽 문안으로 시작되었고, 궁중의 관혼상제, 종친(宗親)과 외명부(外命婦) 접견 등으로 일정을 보냈다. 왕실의 의생활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호화롭지는 않다. 다만, 격식 있는 차림새를 하였다.

<왕비의 당의>   
구름과 봉황문의 담녹색에 흰색 한삼과 자적색의 고름이 달린 조선 말기 왕비의 당의이다. 안감은 홍색이며 길이가 길고 소매가 좁다. 오조원룡보로 왕비의 당의임을 알 수 있다.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으나 궁궐이라는 특성으로 일상생활에서도 반듯하고 격식 있는 옷차림을 해야 했다. 왕비를 비롯한 궁궐 내의 내명부는 치마저고리 위에 간단한 예복(小禮服)인 당의(唐衣)를 입었다. 당의라는 명칭 때문에 중국(唐)의 영향을 받아 생긴 옷으로 오인할 수 있으나 당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옆이 터진 긴 저고리가 발전하여 만들어진 옷이다. 조선 초의 옆이 트인 긴 저고리가 옆트임이 깊어지고 옆선이 곡선화되는 모습으로 발전하면서 명칭도 당의로 바뀌었다. 당의라는 명칭은 1610년(광해군 2)부터 기록에서 보이나 궁중에서는 당고의, 당저고리, 당의복 등으로도 불렀다.

법도가 엄하였던 궁중에서는 당의를 평상복으로 삼아 계절에 따라 옷감과 색상을 다양하게 선택하여 입었는데, 언제나 왕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사절복색자장요람(四節服色自藏要覽)』에는 궁중 복식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142)

2월 초하루에는 공단 당의를 입고 칠보가락지를 끼며, 머리에는 옥모란잠·은모란잠·매죽잠 중 꽂고 싶은 대로 꽂는다. 3월 망일(望日)에는 녹색 항라 당의(亢羅唐衣), 5월 단오에는 초록 광사(光紗) 깨끼 당의, 사(紗) 웃치마, 옥가락지, 5월 10일에는 백광사(白光紗) 당의를 입었다. 6월 순망간(旬望間)에 날이 몹시 더울 때는 저포(紵布) 당의, 8월 10일에는 초록 깨끼 당의, 8월 이후에는 초록 광사 당의를 입었다. 9월 초하루부터는 항라 당의, 9월 망일에는 공단 당의, 10월 초하루에는 겹당의를 입고 금가락지·용잠을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옷차림새는 기본적으로 단오 전날 왕비가 흰 당적삼(홑당의)으로 갈아입으면, 단옷날부터 궁중에서는 모두 당적삼으로 갈아입었다. 또 추석 전날 왕비가 다시 당의로 갈아입으면, 추석날부터 궁중에서는 다시 당의로 갈아입었다. 단오와 추석을 전후하여 왕비가 먼저 갈아입은 후 다음날에 궐내 내명부를 비롯한 모든 여자들이 옷을 바꿔 입었다. 동지 전후에는 녹색 직금 수복 자 당의(織金壽福字唐衣), 정월 망일 전후에는 공단 당의를 입었다.

기록에 의하면 명절에 따라 옷차림새를 구분지어 갖추어 입었으며, 평상시에도 계절에 따라 옷감과 장신구의 재료를 달리하여 입었음을 알 수 있 다. 궁중에서는 평상시에도 계절이 바뀔 때 윗사람이 먼저 갈아입어야 아랫사람이 입을 수 있는 불문율이 있었다.

<사대부가 당의>   
사대부가에서는 초록 당의를 입었다. 유물은 겉감은 초록, 안감은 홍색의 겹당의로 흰색 한삼이 달려 있고 고름은 자적색이다.

당의는 보통 겉은 초록이나 연두색으로 하고 안은 다홍색을 넣은 겹옷이며 자주색 고름을 달고 소매 끝에는 끝동과 같이 흰색 한삼을 다는 것이 특징이다. 겨울철에는 자색 당의를 입기도 하였다. 조선 말엽에 이르러 당의가 왕실 소례복(小禮服)이 되면서부터 왕비나 왕세자빈 등의 당의에는 지위를 표시하는 금박 무늬와 금실로 수놓은 보(補)를 달았다. 왕비는 왕과 마찬가지로 오조원룡보를 달고, 다른 이들은 봉황을 수놓은 원형 또는 사각형의 흉배를 달았다.

소례복인 당의는 궁중의 여자들뿐 아니라 외명부 및 양반집 부녀자가 궁중에서 왕비나 대비를 뵙고 인사하는 진현(進見) 시에 입었다. 이러한 옷을 예의를 갖춘 의복, 즉 상복(上服)이라 하는데 초록 당의를 입었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일반인들에게 혼례복으로 착용이 허용되었다.

<당의 입은 덕혜옹주>   
화관을 쓰고 당의를 입은 덕혜옹주의 다섯 살 때 모습이다.

공주나 옹주도 분가하기 이전에 궁궐에서 치마저고리 위에 당의를 입었다. 고종의 고명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한 덕혜옹주의 돌날과 다섯 살 때의 사진 자료에 의하면 당의에 화관을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덕수궁 유치원 시절 원생들과 같이 찍은 사진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느 양반집 규수 같은 모습이다. 돌과 다섯 살 때의 모습은 예복을 갖춘 차림이기에 당의에 화관을 썼지만, 유치원 원생과 함께한 모습은 궐내의 의미가 아닌 학생의 신분이기에 치마저고리 차림이었다. 따라서 평상시 궐내에서는 당의에 일상적인 머리 모양을 하였다.

[필자] 임재영
142)조선시대 비빈(妃嬪)들의 사계절 복식에 관한 지침서이다.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가 쓴 『순화궁첩초(順和宮帖草)』의 하나로 비빈들이 주요 세 명절(정월 초하루, 동지, 왕의 생일)과 사계절에 맞게 입을 복색을 옷감에서부터 비녀, 노리개, 반지, 향낭 등 패물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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