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의 기쁨, 회혼례
회혼례(回婚禮)는 부부가 혼인한 지 예순 돌을 맞이하였을 때를 기념하는 잔치이다. 대체로 신랑 옷과 신부 옷을 입고 다시 초례청에서 혼례를 행한다. 부부 해로는 조선시대가 규정한 이상적인 부부 관계의 한 모습이다. 우리 조상들은 인생의 의미 있는 날에 대해 60주년을 중시하였는데 회혼례 역시 그와 같은 생각에서 치러지는 행사였다. 노부부가 함께 해로하는 경우만 이 의례를 치를 수 있으므로 대단한 복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회화 자료 중에는 조선 후기에 그려진 회혼례 그림들이 눈에 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필자 미상의 18세기 『회혼례첩(回婚禮帖)』을 통해 회혼례와 관련된 일련의 행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회혼례의 과정 역시 일반 혼례의 과정과 유사하게 치러진다. 우선 전안례를 치르는데, 사모에 쌍학흉배를 장식한 흑단령을 입고 품대를 두른 할아버지가
마치 새신랑처럼 청선(靑扇)을 들고 간다. 그 앞에는 초립에 녹색 중치막 등을 입은 동자들과 흑단령을 입고 붉은 보자기에 싼 기러기를 안은 기럭아비가 앞을 인도하여 초례청으로 들어간다.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가 그린 담와 홍계희 평생도(淡窩洪啓禧平生圖) 중의 ‘회혼식(回婚式)’에는 초례청의 교배례 장면이 그려져 있다. 홍장삼을 입은 할머니가 초례상을 마주하고 회혼례를 거행한다. 주변에는 갖은 치장을 한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구경하고 있다. 며느리나 딸 등은 낭자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할머니를 도우며 사모관대 차림의 할아버지 신랑은 성장을 한 자식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
『회혼례첩』에는 초례청의 대례가 끝난 후 동뢰연(同牢宴)에 해당하는 잔치를 벌이고 있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노부부가 각자 독상을 받고 앉아 있는데 할아버지는 주립(朱笠)에 흰색의 포를 입고 붉은색의 실띠를 매고 있다. 주립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병조(兵曹)의 당상관이 아닐까 한다. 그들 곁에는 녹의홍상의 손녀와 녹색 겉옷을 입은 손자가 재롱을 부리고 있고 한 쌍의 내외가 술잔을 올리고 있다.
당(堂)의 좌우에는 자손과 손님들이 남녀로 나뉘어 좌측에 남자들이, 우측에 여자들이 독상을 받고 앉아 있다. 참석자 모두 머리에는 수화를 꽂
았다. 부인들은 녹색과 자색, 두록색, 옥색 등의 짧은 회장저고리를 입고 남색, 홍색, 옥색 등의 치마를 입고 있다. 가체를 두른 얹은머리에 각종 머리꽂이와 진주댕기 등으로 장식하였다. 남자들은 갓에 포를 입고 허리띠를 가슴 높이 둘렀다. 초립동과 동자들도 남자 일행의 끝에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마당에는 잔치를 구경하는 비자(婢子)들이 한 무리 보이는데 귀부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머리 장식이 소박하고 옷 색상도 연해서 선명한 청색이나 홍색 치마 같은 옷은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