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 문화와 차

보상화문(寶相華紋)을 화려하게 수놓은 붉은 가사를 입은 석가모니는 가르침을 설한 뒤 결가부좌하고 삼매에 들어간다. 석가의 오른손은 마군의 항복을 받아 석가임을 나타내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왼손은 성불의 큰 뜻을 설법하고 있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다. 석가 주위에는 10대 제자, 사천왕, 팔부중, 군중들이 석가를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한 채 석가의 설법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다.
이 불화는 1725년에 제작된 송광사 영산전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영산회상도란 석가모니가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 영취산(靈鷲山)에서 보살, 제자, 청중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대웅전, 영산전, 팔상전에 주로 봉안된다. 17세기 말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 경상도·전라도 일대에서 불화를 그렸던 불화승(佛畵僧) 의겸(義謙)의 작품으로 조선 후기 최고의 불화로 꼽힌다.
석가 앞에는 몇 가지 공양물(供養物)이 놓여 있다. 홍색과 녹색 위주의 그림 속에서 가운데 있는 흰 공양구가 눈에 띈다. 석가모니를 위해 올린 공양물인데 참으로 소박하다. 가운데에 향 그릇과 향로, 양쪽으로 색색의 과일 두 접시 그리고 찻잔이 있을 뿐이다. 자세히 보면, 향로, 향 그릇, 찻잔은
조선 후기에 많이 쓰던 청화백자이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향로에 그린 문양도 당시에 유행하던 누각산수문(樓閣山水紋) 계열로 보인다. 18세기 불교 의례에서 조선 고유의 사물을 써서 향, 과일, 차와 같은 공양물을 올렸던 모습이 불화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절에 가면 불단 위에 공양물로 향과 과일, 쌀 등을 올린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차를 올린 모습은 어쩐지 낯설다. 석가모니에게 차 공양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