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떠돌이 예인들이 남긴 예술과 삶의 지문2. 유랑 예인의 존재 양태, 연희와 매춘

다양한 패거리들

[필자] 주강현

예인 집단에는 어떤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었을까? 예인 집단에 관한 분류는 사실상 자료 문제 때문에 막막하기도 하다. 송석하(宋錫夏, 1904∼1948)가 일제 강점기에 일부 서술 및 채록한 조건에서 광복 이후에는 북한에서 김일출 같은 민속학자에 의해 현지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논문과 책까지 나왔다.314) 그 이후에는 심우성(沈雨晟)에 의해 구전을 채록 정리한 방식으로 여러 편의 책에 소개되었는데, 그들 자료 이외에 현재로서는 역추적 하여 새롭게 유랑 예인의 모습을 추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의 분류는 사실상 심우성이 한 것이나 내용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대목도 많다.315) 가령 솟대쟁이패는 가장 늦게 기량이 뛰어났던 사람들이 조직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솟대쟁이는 이미 조선 후기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보편적인 연행(演行)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역사 문헌적으로 ‘솟대쟁이패’란 이름 자체를 확인할 수 없는 조건에서 실체 규명은 매우 어렵다. 솟대쟁이패란 지극히 잠정적으로 붙여진 명칭일 가능성이 크 기 때문이다.

이에 이들 집단 간에 상호 연관성이 있었으며 연행 종목에서는 매우 자주 넘나드는 측면도 강하였음을 전제하면서 기존 분류에 따른 설명을 하고자 한다. 세부 내용에서는 문헌을 통하여 새롭게 발견된 사실을 추가하고자 한다.

[필자] 주강현
314)김일출, 『조선의 탈놀이』, 과학원, 1957.
315)심우성 자신이 송석하의 논고를 비판하면서, 1920년대에 이미 변질되어 버렸을 놀이의 원형을 당대에 제대로 고구하지 못한 점을 애석해 하고 있다. 심우성, 『남사당패 연구』 동화 출판 공사, 1974, 1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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