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2. 우리나라의 주요 음악 유물과 종류관악기

옥저

옥으로 만든 횡적류는 국립 경주 박물관·국립 고궁 박물관·국립 국악원 등에 몇 점 소장되어 있고, 조선시대 선비나 관리가 소장하였다가 문중(門中)·서원(書院)·후손 등에 의해 전승되어 오는 것, 개인 소장품 등이 있다. 국립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옥저는 검은 반점이 있는 황옥(黃玉)으로 만든 횡적이다. 길이 53.5㎝, 구경 약 3.3㎝이고, 실제 대나무로 만든 대금처럼 마디를 조각하였다. 옥저에는 취구 한 개, 청공 한 개, 지공 여섯 개, 칠성공(七星孔, 음정 조절 구멍) 네 개가 뚫려 있어 현대의 대금과 같은 구조이나 길이는 짧은 편이다. 1705년(숙종 31)에 경주부(慶州府)의 객사(客舍)인 동경관(東京館)의 담장 밑에서 발견되어 신라시대부터 전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

<옥저>   
1705년에 경주 객사의 담장 아래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황옥으로 만든 옥저이다. 이 옥저는 신라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 및 대금(大笒)의 연원과 관련이 깊은 유물이다. 실제 대나무로 만든 대금처럼 마디가 조각되어 있으며 현재의 대금과 같은 구조이나 길이는 짧은 편이다.

이 밖에 신라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옥저가 두 점 있다. 개인 소장품인 이들 옥저는 1998년 한 경매에 출품되어 알려졌다. 한 개는 길이 64.5㎝, 구경 3.2㎝이고, 다른 한 개는 길이 55㎝, 구경 2.5㎝로 모두 취구·청공·지 공을 갖추고 있으며 보존 상태도 완벽하다. 그러나 신라시대 것이라는 확정적인 단서는 없다.

조선시대에 제작한 옥저로는 맹사성 옥저, 장말손(張末孫, 1431∼1486) 옥저, 옥산 서원(玉山書院) 소장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옥저, 병와 이형상 소장 옥저, 국립 국악원 소장 옥저, 국립 고궁 박물관 소장 옥저, 미국 피바디 엑세스 박물관(Peabody Essex Museum) 소장 대금 등이 있다. 이들 옥저는 규격이 각기 다르고 옥의 재질도 차이가 나지만 구조와 모양에서 대나무로 만든 대금을 옥으로 재현한 것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맹사성 옥저>   
백옥(白玉)으로 만든 횡적이다. 길이 50.5㎝, 구경 2.7㎝이며 대나무처럼 마디를 조각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부러져 백동관(白銅管)으로 싸서 수리하였다. 지공은 일곱 개다.
<장말손 초상 세부>   
조선 전기에 그린 장말손 초상화의 얼굴 부분이다. 장말손은 1466년(세조 12)에 함경도 회령에서 오랑캐를 물리친 공으로 왕에게 은배(銀杯)와 함께 옥저를 하사받았다. 현재 그 옥저가 전하고 있다.

옥저는 대나무로 만든 대금에 비해 맑고 높은 음을 내지만, 용도가 전문적인 연주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에서 유전된 ‘젓대’의 상징성과 옥의 재질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의미를 나타내는 문화적 전통에서 예기(禮器)로 제작되고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국왕이 공을 세운 신하에게 옥저를 하사하였던 예들은 옥저의 기능과 용도가 일반적인 악기와 달랐음을 보여 준다.

한편, 국립 경주 박물관 소장 옥저는 조선시대에 경주의 객사 담장 밑에서 출토된 데에다가 발견 당시부터 지금까지 신문왕 때(681∼692) 월성(月城)의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하였다는 신라의 만파식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만큼 더욱 정확한 연대 측정이 필요하다. 만일 이 옥저가 신라시대 것으로 밝혀진다면 신라시대 대금의 규격, 구조, 음정 등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송혜진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