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2. 우리나라의 주요 음악 유물과 종류현악기

조선시대 거문고 유물

조선시대에 제작한 거문고로는 국내외 박물관 및 문화재 관련 기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약 20여 점 알려져 있고, 그 밖에 문중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180) 조선시대 거문고 유물 중에서 국가 지정 문화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희령군어사금(熙寧君御賜琴)은 태종이 보관해 오던 거문고를 여섯 째 아들인 희령 대군에게 준 것으로 전주 이씨 희령군파(熙寧君派)의 가보로 내려오고 있다. 크기는 길이 120.3㎝, 너비 15.9㎝, 두께 12㎝로 작은 편이다. 오동나무와 밤나무로 만들었고, 부재료로 명주실과 소가죽을 사용하였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여섯 줄의 현을 술대로 쳐서 소리를 내도록 하였다. 이 거문고에는 섬세한 솜씨로 조각한 문양이 있고, 전체적인 모양새가 아름답다.

탁영(濯纓) 거문고는 탁영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이 타던 유물로, 직계 후손에게 전해져 왔다. 성종 때 만든 것으로 제작 연대가 분명한 거문고로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크기는 길이 160㎝, 너비 19㎝, 높이 10㎝이다. 거문고 중앙 부분에 ‘탁영금(濯纓琴)’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학 그림이 거문고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거문고의 머리 부분인 용두(龍頭)와 줄을 얹어 고정시키는 운족(雲足)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끝 부분인 봉미(鳳尾), 운족과 같이 줄을 고정시키는 괘 등 일부 부품은 새로 보수한 흔 적이 보인다. 옛 선비가 애완품(愛玩品)으로 사용한 악기로는 유일하게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거문고 뒷면의 판자(判字)는 김일손의 친필(親筆)과 약간 유사하나 그가 썼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 유품 거문고는 효령 대군의 10대손인 이형상이 선물로 받은 거문고이다. 이 거문고는 이형상이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있을 때 이름을 알 수 없는 오 옹(吳翁)이라는 노인이 한라산(漢拏山) 백록담(白鹿潭)에서 저절로 말라 죽은 단목(檀木, 박달나무)으로 만든 것으로, 목사를 사임하고 돌아올 때(1703) 그가 베푼 선정(善政)을 기려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표면에는 단금명(檀琴銘)과 서(序)가 새겨져 있다.

<강포 유홍원 소장 거문고>   
유홍원이 1726년 양양 낙산사 이하원의 나무로 제작하여 ‘양양금(陽襄琴)’이라고도 한다. 이 거문고는 고악보인 『어은보(漁隱譜)』와 함께 전하고 음악을 즐겼던 내용의 기록도 함께 전승된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선비들이 향유한 풍류 문화의 실체를 증명해 주는 유물로 꼽을 수 있다.
<강포 유홍원 소장 거문고 뒤판>   
뒤판에 새겨진 명문이다.

강포(江浦) 유홍원(柳弘源, 1716∼1781)의 전승 유물인 거문고는 유기운 씨가 거문고 고악보인 『어은보(漁隱譜)』와 함께 소장하고 있다. 제작 연대는 원 소장자였던 유홍원이 10세 때인 1726년(경종 6)이다. 공명통의 앞판은 오동나무로, 뒤판은 밤나무로 만들었는데, 밤나무로 만든 뒤판은 옆 귀퉁이가 약간 갈라져 있다. 유홍원은 거문고 앞판과 뒤판에 각각 거문고 재료의 출처, 만든 시기 등을 새겨 넣었고, 같은 내용이 유홍원의 문집에 실려 있어181) 구체적인 내력을 알 수 있다. 전체 길이는 160㎝로 괘 16개, 안족 2개, 돌괘 1개가 남아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원형대로 남아 있지만 부속품이 일부 떨어져 나갔다. 강포 유홍원 소장 거문고는 거문고와 악보, 그리고 음악을 즐겼던 내용의 기록이 함께 전승된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선비 사회에 수용된 풍류 문화의 실체를 증명해 주는 유물로 꼽을 수 있다.

자양금(紫陽琴)은 고종 때의 유학자인 유중교(柳重敎, 1821∼1893)가 연 주하던 7현을 가진 거문고이다. 유중교는 악학(樂學), 예악(禮樂) 연구에도 몰두하여 악서(樂書) 『현가궤범(絃歌軌範)』을 집필하였으며 본래 여섯 줄 악기인 거문고에 한 줄을 더 얹어 일곱 줄 거문고를 만들고 여기에 ‘자양금’이라는 별호(別號)를 붙여 소장하였다. 1800년대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유중교가 자신의 음악 철학을 악기에 반영하여 완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길이는 169㎝, 너비는 20㎝, 재질은 오동나무로 괘는 14개, 현은 7개이다. 윗면에는 5행 34자, 뒷면에는 4행 76자로 유래 등을 새겨 넣었다. 보존 상태는 양호하나 현은 부식되어 1995년에 보수하였다.

조선시대 거문고 유물은 악기의 구조와 규격뿐 아니라 소장자가 악기를 소유하게 된 배경과 소장자의 음악관을 엿볼 수 있는 명문(銘文) 등이 있어 거문고 음악 문화의 전승을 알려 주는 점에서 문자 기록과 다른 음악사의 기록으로 중요하다.

[필자] 송혜진
180)조선시대 거문고 보존 현황은 송혜진, 『한국 악기』, 열화당, 2001, 부록의 악기 목록 참조.
181)유홍원(柳弘源), 『강포문집(江浦文集)』(영인본) 권1, 함벽당, 1956.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