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2 토기 제작전통의 형성과 발전01. 기술혁신과 공방의 발전, 원삼국시대토기 제작기술의 발전

기술혁신의 과정

초기 철기시대까지 이어져 오던 무문토기의 기술 체계는 원삼국시대의 기간 동안 기술혁신의 과정을 거쳐 삼국시대 도질토기 생산의 기술 체계로 발전한다. 원삼국시대 초기에 환원소성과 타날기 법, 그리고 타날문단경호와 같은 신기종이 한꺼번에 도입되지만 아직 무문토기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새롭게 소개된 신기술이 당시 토기 제작자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어서 기술의 적용이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물론 요동(遼東)과 낙랑(樂浪) 지역에 보급된 전국시대의 회도(灰陶) 기술 체계가 한반도 남부까지 전달되어 토기제작의 기술혁신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30) 그러나 이미 전문 도공에 의해 숙련된 작업행위로 실현되었던 회도의 기술 체계가 한반도 남부의 무문토기 제작자에게 전달된다면, 물론 토착의 토기 제작자들은 새로운 기술 체계를 구현해 내려 애쓰겠지만 매우 어색한 작업행위, 즉 익숙하지 않은 동작으로 시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삼국 초기,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무문토기 제작자들은 한편으로는 무문토기 기술 체계를 그대로 이어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회도의 기종과 기술 체계를 받아들여 새로운 유형의 토기유물군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원삼국시대 초기의 토기유물군은 기술 체계의 차이에 따라 종전의 무문토기군과 새로운 회색토기군으로 나뉜다. 곧 새로 도입된 기종과 기술 체계를 적용하는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타날문원저단경호처럼 새로운 기종에 승석문타날, 환원소성, 및 회전물손질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 요소가 한 세트로 적용되는 방식이 있다. 둘째로는 파수부장경호나 주머니호, 또는 옹이나 발과 같은 종전의 무문토기 기종에 새로운 기술 요소의 일부가 적용되는 방식이 있다.

특히, 무문토기 중에는 있지 않았던 구형(球形)의 몸통을 지닌 타날문원저단경호의 경우, 한쪽 손으로는 그릇 안쪽을 받치고 다른 한 쪽 손으로 그릇 외면을 타날판으로 두드리는 작업만으로 그릇을 완성해야 하는데 이는 무문토기 제작자에겐 무척이나 고난도의 기술이었을 것이다. 원삼국시대 전기에는 제작자의 기술적 숙련도가 떨 어져 그가 구현하고자 하였던 구형의 동체부를 제대로 완성해 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물레질법도 적용되지 못하여 그릇 두께도 불규칙하고 그릇 말단부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원삼국시대 후기가 되면 전통적인 무문토기 기술과 새로 도입된 회도 기술이 융합되어 새로운 기술 체계로 정비되는 한편, 토기 제작자도 전문 도공으로 성장하여 제작 행위의 숙련도를 높여갔다. 이러한 기술혁신의 과정을 통해 원삼국시대 후기의 토기 중 타날문원저단경호는 이전보다는 훨씬 숙련된 제작 행위를 통해 그릇 두께도 고르고, 균형 잡힌 구형의 몸통에 그릇 아가리도 회전물손질로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특히, 원삼국시대 말기가 되면 한정된 공방(工房)에서 생산되었던 도질토기 승석문타날단경호처럼 매우 숙련된 기술 행위를 익힌 전문 도공에 의해 표준화된 제품으로 대량 생산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원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회도의 기술 체계가 전부 소개되었지만 이중 일부는 적용되고 일부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후에도 신기술 요소가 적용되어 기술혁신이 진행되는 과정은 그릇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어 왔다.

어떤 측면에서는 기술혁신의 성패가 토기 제작자의 기술적 숙련도에 달려있기도 하다. 이럴 때 도공의 기술적 숙련도는 아무래도 같은 그릇을 반복적으로 제작하는 가운데 높아질 수 있으므로, 대량 생산이 제작의 전문성이나 도공의 숙련도를 제고시킬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릇 종류에 따라 사회적 수요가 늘어나고 분배의 범위가 확대되면 대량 생산을 통해 이를 충당해야 하고 이러한 조건하에 특정 기종의 제작에서 기술혁신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리라고 본다.

[필자] 이성주
30) 崔秉鉉(구유징), 「原三國土器의 起源과 系統」, 『韓國考古學報』 38, 1998, pp.10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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