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과 종묘 천신

조선시대 사냥의 목적은 사시(四時)로 종묘에 천신(薦新)을 하기 위함이다.138) 신하들의 수렵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이 수렵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종묘에 ‘천금(薦禽)’이라는 국가의 중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들은 종묘에 천신하는 경우 자신들이 수렵에 참가하여야만 선왕들에게 예를 갖추는 것으로 여겼다.
조선시대 대향(大享)은 종묘에서 사맹월(四孟月)의 상순과 납일에 지내는 제사와 사직에서 정월 첫 신일(辛日)에 풍년을 빌며 지내는 제사, 또는 중춘(仲春)·중추의 첫 무일과 납일에 지내는 제사 등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종묘에는 매달 천신을 하고 봄, 가을로는 수렵을 하여 짐승을 천신한다.
종묘에 바치는 제물은 기러기, 노루, 사슴, 여우, 토끼, 꿩 등 다양하다. 매달 천신하는 물품은 따로 정해져 있는데, 9월에는 기러기, 11월에는 거위, 12월에는 토끼, 봄과 가을에는 사슴·노루·꿩 등을 올렸다.139) 짐승을 올려놓는 제기도 정해져 있는데, 노루와
사슴은 매 실마다 진설하고, 그 중에 한 마리는 털을 벗겨서 각각 생갑(牲匣)에 담고, 꿩과 기러기, 거위 등은 두(豆)에 담는다.140) 나머지 제향에서는 소·염소·돼지를, 한식 제사에는 고려의 옛 제도를 따라 산 꿩[生雉]을 올렸다.141)
납향제의 일정한 규칙은 태종 때 만들어졌다. 태종은 예조로 하여금 제의 관련 법과 천향(薦享)하는 절차를 만들게 하였다.142) 예조에서는 수렵한 짐승을 바로 종묘에 천신할 것을 건의하였고,143) 태종은 종묘에 천신하는 짐승을 해당 달에 잡아서 바치게 하였다.144) 그리고 태종은 사냥에서 잡은 여우, 토끼, 노루, 사슴 등을 의정부의 견해에 따라 털만 뽑고 가죽은 벗기지 않은 생체(生體)를 올리게 하였다. 한편, 태종은 12월에서 봄 사이에 잡은 노루는 맛이 없기 때문에 종묘에 천신하지 못하게 하였다.145)
종묘에 쓰는 짐승은 수렵한 것 가운데 손상이 거의 없는 것을 제일 좋은 것으로 여겼다.146) 다음의 것은 손님의 연회에, 그 다음의 것은 왕실의 주방에, 그 나머지는 사대부에게 선물로 주었다.147) 나라 주방에 쓰인 사례는 태종 때 많이 보이는데, 그는 수렵에서 잡은 노루와 고니[天鵝]를 경운궁·인덕궁·성비전(誠妃殿)·상왕전(上王殿) 등에 바쳤다.148)

138) | 『태조실록』 15권, 태조 7년 12월 17일 기미 ; 『태종실록』 권3, 태종 2년 6월 11일 계해 ; 권6, 태종 3년 10월 1일 을사 ; 권7, 태종 4년 2월 6일 정축 ; 권24, 태종 12년 9월 28일 경술 ; 『성종실록』 권72, 성종 7년 10월 21일 신묘 ; 권205, 성종 18년 7월 19일 병진 ; 『연산군일기』 권35, 연산군 5년 9월 16일 계유 ; 『중종실록』 권76, 중종 28년 10월 23일 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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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 『세종실록』 권128, 오례 길례 서례 시일. |
140) | 『세종실록』 권123, 세종 31년 3월 28일 무신 ; 권130, 오례 길례 의식 천신 종묘의 진설. |
141) | 『세종실록』 권3 세종 1년 3월 4일 무신. |
142) | 『태종실록』 권18, 태종 9년 12월 10일 정미 ; 태종 9년 12월 17일 갑인. |
143) | 『태종실록』 권28, 태종 14년 윤9월 3일 계묘. |
144) | 『태종실록』 권28, 태종 14년 11월 11일 경술. |
145) | 『태종실록』 권25, 태종 13년 2월 12일 신유. |
146) | 『태종실록』 권18, 태종 9년 12월 3일 경자. |
147) | 『태종실록』 권23, 태종 12년 3월 1일 을유 ;『세종실록』 권50, 세종 12년 10월 1일 무진. |
148) | 『태종실록』 권12, 태종 6년 9월 12일 무진 ; 권11, 태종 6년 2월 10일 신미 ; 태종 6년 2월 21일 임오 ; 권13, 태종 7년 1월 25일 경진 ; 권11, 태종 6년 2월 15일 병자 ; 권23, 태종 12년 3월 1일 을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