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문헌에 보이는 한민족문화의 원류
우리 민족은 한글을 제정하기 이전 중국의 한자를 빌어 문자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시기는 고조선 시대까지도 소급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삼국시대까지 소급되는 문자 자료는 약간의 금석문과 목간자료 뿐이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체계적으로 전하는 문헌도 고려시대에 편찬된≪三國史記≫와≪三國遺事≫가 가장 시대가 올라가고 그 이전에 편찬되었던 문헌들은 모두 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두 史書에 보이지 않는 上古의 사실을 전한다는 일부의 秘記들은 실제 僞書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이에 비해 중국의 문헌들은 일찍부터 우리 민족을 비롯한 주변 민족들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특히≪史記≫朝鮮列傳을 비롯한 역대 中國 正史 東夷傳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불가결한 자료라는 것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先秦 문헌도 대부분 그 성립연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할 뿐 아니라 거기에 언급된 우리에 관한 내용도 극히 단편적인 자료에 불과하다. 정사 동이전의 내용도 대부분 중국과 관련된 것이거나 주로 중국측의 관심대상을 중국측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었다. 때문에 중국 자료의 이용은 신중도 요하지만 그 활용도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운데, 특히 신석기시대와 문명초기까지 소급될 수밖에 없는 본고의 주제를 이러한 문헌들로 탐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한 민족과 그 문화는 고립적으로 형성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문화의 원류는 그 민족과 활동 공간을 공유하거나 또는 인접하여 생활한 여러 집단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해명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그 민족의 형성에 참여한 제 집단, 종족 또는 민족이 어느 시대에 어디서 활동하였는가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면, 본고도 먼저 ‘韓民族’을 구성한 제 집단에 대한 범위를 설정한 연후에 그들의 자취를 문헌에서 확인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한민족’을 실제 구성한 제 집단을 완벽하게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삼국사기≫와≪삼국유사≫가 高麗의 祖先으로 인식한 범위, 그리고 중국 문헌이 이 집단 또는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기술한 제 집단을 일단 ‘韓民族’ 형성집단의 범위로 간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데, 단군조선·기자조선·韓·부여·고구려·백제·신라 발해·濊·貊(貉) 등이 바로 이 범위에 속한다. 그러므로 본고는 한국과 중국의 초기 문헌에 언급된 이들의 문화적 성격과 활동 범위를 고찰하고자 하는데, 시조 또는 건국 신화는 그 집단의 귀속 문화권을 반영한 것이므로 먼저 이 문제를 검토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