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총설01권 한국사의 전개Ⅱ. 한민족의 기원3. 문헌에 보이는 한민족문화의 원류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1. 생태학적 특성
          • 1) 한반도의 위치와 지형
          • 2) 한반도의 기후
          • 3) 식생
          • 4) 동물
          • 5) 생태계
          • 6) 생물상
        • 2. 지리학적 특성
          • 3) 지형
            • (2) 하천과 평야
            • (3) 해안과 해양
          • 4) 기후
        • 3. 인류학적 특성
          • 4) 산촌과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 5) 도시인의 주거지역과 생태적 특성
      • Ⅱ. 한민족의 기원
        • 1. 고고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문화계통의 다원론적 입장-
          • 3) 문화계통
        • 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 1) 한민족·한국문화 기원론의 흐름
          • 2)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여러 양상과 그 계통
        • 3. 문헌에 보이는 한민족문화의 원류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1. 선사
        • 2. 고대
          • 1) 국가의 성립과 발전
          • 2) 통일 신라의 수취제도
        • 3. 고려
          • 1) 정치적 특성
          • 2) 경제적 특성
          • 3) 사회적 특성
          • 4) 사상적 특성
        • 4. 조선
        • 5. 근현대
          • 1) 근대적 사회변동과 자주 개혁의 시련
            • (7)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의 전개
          • 2)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독립운동
            • (1) 일제의 강점과 식민통치의 기조
            • (2) 식민통치의 시기별 특징
            • (4) 독립운동의 시기별 특징
          • 3) 해방정국과 현대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1. 언어
        • 2. 문학
        • 3. 종교와 사상
          • 5) 한국 종교사의 전개
        • 4. 과학기술 -한국 과학기술사의 시기별 특징-
          • 1) 전통과학시대
          • 2) 근대과학시대
          • 3) 현대과학시대-한국전쟁 이후
        • 5. 미술
          • 1) 선사시대 미술의 특성
          • 2) 삼국시대 미술의 특성
        • 6. 음악
          • 2) 한국음악사의 전개양상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곰과 호랑이 토테미즘

 ≪삼국유사≫에 전하는 단군의 건국 신화는 불교와 도교적인 요소도 첨가되었지만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샤머니즘적인 색채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데, 이 신화의 핵심은 곰에서 化身한 여인 熊女와 天帝의 아들 桓雄의 神婚, 이들 사이에 태어난 단군의 건국이다. 이것이 동북아시아에 광범위하게 유행한 곰 토테미즘을 반영한 것이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곰과 함께 인간이 되려고 하였으나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인간이 되지 못한 호랑이와 인간이 된 곰이 본래 한 굴에서 생활하였다는 대목을 주목하면 이 신화는 곰 토템과 호랑이 토템 집단의 밀접한 교섭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까지도 호랑이를 산신으로 崇敬하는 ‘虎文化’가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잔존하고 있지만, 魏書 夷傳도 濊人들이 호랑이를 산신으로 제사하는 전통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 운남성에 거주하는 彝族들은 지금도 호랑이를 조선으로 신앙하는 각종 제의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족은 고대 중국 서북지역에서 활동하던 羌·氐族의 후예라고 한다. 또 춘추시대 楚의 귀족 班氏의 조선 鬪殼於兎가 들에 버려저 호랑이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고사도(≪左傳≫宣公 4년) 반씨의 토템이 호랑이었음을 시사한다.≪後漢書≫南蠻西南夷傳에 의하면 巴郡 南蠻의 조선은 4개의 穴에서 나왔다고 하는데(제주도 三聖穴 신화와 비슷), 그 군장 廩君이 죽은 후 혼백은 白虎가 되었으며, 巴人들은 호랑이가 인간의 피를 먹는 것으로 생각하여 인간을 호랑이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예들은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집단이 적어도 춘추시대 이전부터 중국 서북부와 양자강 중류 지역에서도 활동하였음을 말해 준다. 江西省 新干 商代墓에서 대량 출토된 청동기들도 호랑이의 모티프가 강하게 표출된 것이 특징인데, 입을 크게 벌린 두 마리의 호랑이를 좌우에 수직으로 배치하고 그 두 입 중앙에 人面을 넣은 商代의 石彫와(<그림 1>) 쪼그리고 앉은 호랑이가 크게 벌린 입 아래 아이를 품고 있는 형상의 西周 초기 청동기 ‘虎食人卣’는(<그림 2>) 殷·周時代 호랑이 토테미즘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 같다. 이 석조와 ‘호식인유’도 종래에는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으로 이해되었지만, 근래에는 호랑이를 통한 인간탄생의 신화를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림 1>

<그림 2>

 한편 곰 토테미즘 역시 동북아 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었다. 현재에도 중국 동북지방에 거주하는 滿洲族·鄂倫春族·赫哲族 간에는 시조와

 母熊이 결혼하였다거나 곰이 인간으로 또는 인간이 곰으로 화신하였다는 신화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종래 이 문제와 관련 동한말 건립된 山東省 嘉祥縣 武氏祠堂의 화상석이(後室第三石, 屋頂前坡東段石,<그림 3>) 단군신화의 내용을 전한 것으로 지적되었는데, 특히 제 3층 右端 각종 병기를 머리(弓)와 손발에 든 곰과 입 앞에 작은 사람의 형상이 묘사된 동물이(호랑이?) 단군신화의 핵심부분을 묘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단군신화가 고려말에 창작된 것이 아니었다는 논거로 왕왕 원용되었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장면은 黃帝와 蚩尤의 전쟁신화를 묘사하였다는 해석도 있고, 특히 곰 옆의 장면은 한발을 퇴치하는 신화와 관련된 ‘虎吃女魃圖’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 장면은 황제와 치우의 전쟁은 물론 호랑이가 한발의 疫鬼를 잡아 먹는 장면을 묘사한 다른 화상석과도 너무나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필자는 무씨사당 후실 제3석 제3층은 대체로 연말 臘日의 전날 밤에 거행되는 疫儀式 大儺祭를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는데, 병기를 휘두르는 곰은 熊皮를 뒤집어 쓰고 병기를 휘두르며 역귀를 쫓는 눈이 네 개인 方相氏, 그 밖의 12개의 인물과 동물상은 역귀를 잡아 먹는 12神, 작은 사람의 형상이 이 의식에서 잡아 먹히는 악귀에 각각 비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나제의 주역 방상씨가 곰가죽을 뒤집어 썻다는 것도 상당한 곰신앙을 반영한 것이며, 이것은 중국인의 시조로 추숭되는 黃帝가 有熊氏였다는 전승을 상기하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림 3>

 이에 비해 산동성 臨沂縣 普村 출토 墓門石柱의 조각(<그림 4>), 즉 앉아 있는 곰의 하반신이 인간의 아기를 안고 있는 형체의 어깨 윗 부분을 이루는 형상은 熊母를 통하여 탄생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한편 최근 중국 고고학은 은주시대 곰을 소재로 한 소형 조각과 문양을 다수 보고하고 있지만, 특히 기원전 3000년경 遼河 유역 내몽고와 요서를 중심으로 번영하였던 紅山文化에 속하는 소형 玉製 人熊像도 다수 확인되었다(<그림 5>). 이 형상은 대체로 머리는 곰, 몸은 임산부의 모습을 띄고 있어 인간을 출산하려는 熊母의 모습이 약여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학자는 이 부류의 옥기를 곰 토테미즘의 산물로 이해하면서 이 옥기들에 ‘玉熊母神’이란 명칭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이 주장을 반대할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홍산문화의 분포 지역 즉 내몽고 동부, 대릉하 유역, 遼西 지역의 곰 토테미즘이 기원전 3000년경 이상 소급될 수 있다는 주장도 굳이 부인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림 4>

<그림 5>

 그렇다면 韓民族 문화의 원류는 우선 각각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한 집단중 상호 밀접한 교섭관계에 있었던 집단과 그 문화에서 찾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濊가 호랑이를 신으로 제사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현재 앞에서 언급한 한민족 형성의 범위 집단과 곰 신앙 또는 곰 토템의 관계를 직접 언급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으며, 周初 東北夷의 특산물 조공을 기록하였다는≪逸周書≫王會解는 不屠何가 靑熊을 東胡가 黃熊을 각각 조공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濊와 흔히 병칭되는 貊은 바로 이 문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 같다. 貊은 흔히 貉(맥)으로도 표기되는데, 貉(각)은 털은 棕灰色에 산고양이나 여우와 비슷한 짐승이라고 한다. 따라서 貊과 貉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면 貊과 곰의 관계는 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貊이 獸名으로 사용될 경우 貘(맥)과 통용되는데,≪爾雅≫는 貘을 ‘白豹’로 주해하였으나≪說文解字≫는 “곰과 비슷하며 황흑색”으로 설명하였는데,≪이아≫郭璞注에 의하면 이것은 “곰과 비슷하며 작은 머리, 쏙 들어간 다리에 흑백이 섞인 색으로 銅·鐵 및 竹骨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일주서≫왕회해는 푸른 곰과 누런 곰을 각각 조공하는 불도하와 동호에 앞서 玄貘을 不令支의(漢代의 令支현은 현 요녕성 遷安 부근) 조공품으로 전하고 있다. 따라서 貊은 곰은 아니나 곰처럼 보이는 동물로 보인 것은 확실한데,≪일본서기≫가 貊에 속하는 고구려를 狛으로 표기하고 ‘고마’로(곰) 훈독한 것을(권 19, 欽明天皇 6년) 상기하면 貊은 사실상 곰을 표기한 것으로 보아도 대과는 없는 것 같다. 이것을 熊 대신 貊으로 표기한 것은 고구려의 大山 蓋馬, 鉅燕 남 倭의 북에 있다는 蓋國(≪산해경≫海內北經) 등을 고려할 때 貊의 발음이 맥족의 자칭어에 근접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머니 河伯의 딸 柳花를 熊神山 아래 압록강변의 室에서(熊穴을 상징) 사통하였다는 설화(≪삼국유사≫고구려), 檀君이 西河 하백의 딸과 사통하여 夫婁를 낳았다는 설화(≪삼국유사≫고구려 註記),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었다는 일설(≪삼국유사≫王曆篇 東明王)은 곰을 매개로 단군과 주몽이 결합된 사정을 시사하는데, 고구려의 10월 제천의식 東盟에서 東郊에 있는 大穴 즉 隧穴에서 모셔와 제사한 隧神도 동굴에 거처하던 熊母神으로 보아도 대과는 없는 것 같다. 이때 神坐에 木隧를 설치한 것으로 보아 隧神 역시 木像으로 추측되는데,≪北史≫고구려전은 夫餘神과 그 아들의 神廟를 소개하면서 木刻婦人像의 부여신(일명 高登神)을 하백의 딸로 그 아들을 주몽으로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고구려 역시 곰 토템의 전통을 계승한 증거인데, 貊이 실제 곰을 지칭한 것이었다면 이 역시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의 등장은 濊와 貊族의 긴밀한 교섭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의 일명이 貊이었고(≪後漢書≫동이전), 小水貊은 고구려의 별종,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으로 言語諸事가 부여와 동일하였으며, 부여는 본래 예맥의 땅으로서 그 國城의 명칭은 濊城이고 그 왕이 중국에서 ‘濊王之印’을 받았으며, 沃沮 역시 고구려와 언어가 大同하고 음식·거처·의복·예절도 고구려와 비슷하였으며, 예 역시 고구려와 同種으로 言語法俗이 대체로 고구려와 같았던 사실(이상 ≪三國志≫魏書 東夷傳) 등을 아울러 고려할 때≪삼국지≫魏書 동이전에 수록된 민족과 국가중 부여·고구려·소수맥·옥저·예를 단군 신화가 형성된 배경 집단으로 일단 인정해도 대과는 없는 것 같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