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총설01권 한국사의 전개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2. 고대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1. 생태학적 특성
          • 1) 한반도의 위치와 지형
          • 2) 한반도의 기후
          • 3) 식생
          • 4) 동물
          • 5) 생태계
          • 6) 생물상
        • 2. 지리학적 특성
          • 3) 지형
            • (2) 하천과 평야
            • (3) 해안과 해양
          • 4) 기후
        • 3. 인류학적 특성
          • 4) 산촌과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 5) 도시인의 주거지역과 생태적 특성
      • Ⅱ. 한민족의 기원
        • 1. 고고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문화계통의 다원론적 입장-
          • 3) 문화계통
        • 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 1) 한민족·한국문화 기원론의 흐름
          • 2)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여러 양상과 그 계통
        • 3. 문헌에 보이는 한민족문화의 원류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1. 선사
        • 2. 고대
          • 1) 국가의 성립과 발전
          • 2) 통일 신라의 수취제도
        • 3. 고려
          • 1) 정치적 특성
          • 2) 경제적 특성
          • 3) 사회적 특성
          • 4) 사상적 특성
        • 4. 조선
        • 5. 근현대
          • 1) 근대적 사회변동과 자주 개혁의 시련
            • (7)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의 전개
          • 2)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독립운동
            • (1) 일제의 강점과 식민통치의 기조
            • (2) 식민통치의 시기별 특징
            • (4) 독립운동의 시기별 특징
          • 3) 해방정국과 현대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1. 언어
        • 2. 문학
        • 3. 종교와 사상
          • 5) 한국 종교사의 전개
        • 4. 과학기술 -한국 과학기술사의 시기별 특징-
          • 1) 전통과학시대
          • 2) 근대과학시대
          • 3) 현대과학시대-한국전쟁 이후
        • 5. 미술
          • 1) 선사시대 미술의 특성
          • 2) 삼국시대 미술의 특성
        • 6. 음악
          • 2) 한국음악사의 전개양상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발해인과 발해국

 8∼9세기 한국고대사에서 주요한 쟁점의 하나는 발해사에 대한 이해이다. 발해사의 성격과 그 귀속을 둘러싸고 그간 국내외 학계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왔는데, 이는 발해가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된 고구려 계승국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보는 견해와 말갈족이 중심이 된 국가로 여기는 견해로 대별된다. 전자는 남북한 학계에서 제기되어 왔다. 후자에선 발해를 중국의 중세 지방봉건정권이라고 규정하고 당 왕조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중국학계의 주장과 말갈족 역사로서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러시아 학계의 설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발해사의 이해를 둘러싸고 각국 학계의 견해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에는 정치적 입장과 이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키 어렵다.

 발해국은 다종족 국가였는데, 그 중 두 계통의 주민이 대종을 이루었다. 발해국의 주민은 발해 멸망 직후부터 요나라에 의해 ‘발해인’과 ‘여진인’으로 구분되어져 각각 다른 형태로 지배를 받았다. 즉 전자는 주현의 민으로 편제되어 요의 지방관에 의해 漢法 즉 漢人에게 적용하는 법으로 통치되었다. 그와는 달리 후자는 부족 단위로 편제되어 자치를 영위케 하고 간접 지배를 하였다. 이는 양자의 사회의 성격이 달랐던 데서 비롯한 것이다. 전자의 사회는 이미 공동체적인 관계가 해체되고 사회분화가 깊이 진전되었는데 비해, 후자는 그렇지 않았다. 고려에서도 귀부해 온 옛 발해국의 주민을 발해인과 여진인으로 구분하였다. 여진인의 경우, 집단적으로 안착시켜 그 내부의 일은 자치에 맡겼다.

 이렇게 발해국의 주민이 두 부류로 나뉘어지는 것은 발해국 존립 당시에도 그러하였다. 발해 초기에 발해를 방문하였던 일본인의 견문기에서 그 주민이 ‘土人’과 말갈로 구분되었고 도독, 자사 등은 ‘토인’이 되었다고 기술하였다. 주민구성의 이중성은 발해 말기에도 확인되어진다.

 발해의 묘제에서도 그런 면을 찾아볼 수 있다. 발해 초기의 무덤 양식을 보면 석실봉토분과 토광묘로 대별된다. 전자는 수도와 주요 지방 중심지에 축조되었고, 후자는 주로 변방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발해 초기, 수도의 주민들의 묘지였던 돈화현 육정산의 무덤떼를 보면 고구려 문화적인 요소와 말갈 문화적인 요소가 함께 보인다. 구체적으로 육정산 고분 분포지 내에서 대형 석실분이 자리잡은 구역에선 고구려적 요소가 두드러지며, 작은 무덤이 밀집한 구역에선 말갈 요소가 현저하게 보인다. 이는 곧 발해 건국의 주도세력이 고구려계의 주민이었음을 말해주는 바이다.252)

 그리고 발해인들의 의식에서 고구려 계승의식은 찾아볼 수 있으나 말갈 계승의식은 확인키 어렵다. 792년 당에 발해사절로 파견되었던 양길복이 띈 관명이 ‘押靺鞨使’였다.253) 즉 ‘말갈을 관할하는 관리’라는 뜻의 관직명이다. 만약 발해 조정이 말갈족 출신이고 말갈족에 소속의식이 있었다면, 존재키 어려운 관직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발해국의 성격에 대한 인접국인들의 인식 또한 이를 고구려 계승국으로 보는 것이 절대 다수였다. 즉 보장왕의 손자인 高震의 묘지명에서 고진의 출자를 발해인으로 기술하였고, 발해를 멸망시킨 후 그 땅에 거란이 설립한 동단국의 左次相이었던 거란인 야율우지가 요동지역을 발해인의 고향이라고 하였으며, 일본인들이 발해사절을 고려사라 하였다.254) 그리고 8세기 후반 9세기 초에 티베트어로 기술된 돈황문서 P.1283에 의하면 당시 내륙아시아 터키계 유목민들이 발해를 ‘Muglig’라고 불렀다 하는데, 이 말은 고구려 존립 당시 고구려를 돌궐에서 Mökli 또는 Moukri라 하였던 데서 비롯한 것이다. 같은 문서에서 당나라 사람들이 이 Muglig를 ‘Keuli’ 즉 고려라 하였다고 전한다. 발해와 고구려를 계승관계에 있는 실체로 이해하였음을 말해준다.255)

 이런 면으로 볼 때, 발해국을 이끌었던 주된 족속인 ‘토인’-‘발해인’은 고구려계가 중심이었다고 보아야겠다. 그리고 그간 가장 논란의 대상이었던 대조영의 출자는 변경의 고구려인256)또는 말갈계 고구려인257)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발해인의 족속계통을 파악하는 것이 발해사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주요한 부분이지만, 그 점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발해사를 고구려사의 연장으로만 이해케 하는 오류를 낳게 한다. 발해는 200여 년 존속하는 동안 그 시기의 내외의 객관적 여건에, 특히 고구려유민들이 목단강 유역 등 동부 만주 신개척지에서 다수의 말갈족과 함께 생활하여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 나름의 개성적인 면모를 형성하였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면에 대한 천착이 진전되어야 발해사의 특성이 보다 부각될 수 있겠다.

 한편 발해와 신라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서, 양국이 시종 적대적 관계를 지속하였고 당이 그것을 조장하였다는 설이 제기된 바 있다.258) 즉 강대한 외세의 조종에 휘말려 양국은 서로 동족의 나라임을 자각치 못한 채 당 중심의 국제질서에 안주하여 분열과 대립을 지속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해와 신라는 시종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상호 교류도 하였다.259) 발해에서 신라로 가는 ‘신라도’라는 이름의 교통로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260) 그런 면을 말해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양국간의 관계는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고, 교류 또한 활발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실제 양국은 733년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른 바 있다. 이 해의 전쟁에서 그러하였듯이, 발해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신라는 당에 밀착하여 이에 대응하려 하였다. 발해는 일본과 관계를 맺어 신라를 견제하려 하였다. 이런 경향은 장기간 지속되었다. 그 결과 동북아의 국제정세는 세력균형을 이루어 안정을 유지하였으나, 신라와 발해간의 관계는 적대적이지는 않았을지라도 특기할만한 관계 개선 없이 병존 상태를 지속하였다. 삼국 통일 전쟁 후 신라 조정은 삼한일통의식을 전면 내세워 적극적으로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동족으로 포괄했지만, 뒤 이어 등장한 발해에 대해선 능동적으로 동족의식을 표방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신라 조정이 삼한일통을 자신의 위업이요 정통성의 주요 기저로 내세웠는데, 고구려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한 발해를 고구려계승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논리와 상충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풀이는 의미가 있다.261)

 그러면 양국이 존재하던 8세기에서 10세기초에 이르는 기간의 시기 명칭을 정한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그간 ‘통일 신라와 발해’, ‘남북국시대’, ‘발해와 후기 신라’ 등이 제기되어 왔다. 이 면에 대해선 그 시기의 역사적 실상과 함께, 발해인과 발해국에서 이룩한 역사적 성취가 어느 정도 고려사회에 이어졌는가에 의해 가름지워져야 할 것이다. 고려사회의 주된 부분이 그 영역과 함께 통일기 신라의 그것을 이었음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盧泰敦>

252)宋基豪,<六頂山 古墳群의 성격과 발해 건국집단>(≪汕耘史學≫8, 1998).

―――,<事實과 前提-발해 고분의 경우->(≪韓國文化≫25,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2000).
253)≪唐會要≫권 96, 渤海.
254)이에 대한 구체적인 전거는 盧泰敦,<渤海國의 住民構成과 渤海人의 族源>(≪韓國古代의 國家와 社會≫, 一潮閣, 1985) 참조.
255)盧泰敦,<高句麗 渤海人과 內陸아시아 住民과의 交涉에 관한 一考察>(≪大東文化硏究≫23, 1989:≪고구려사 연구≫, 1999).
256)盧泰敦, 앞의 글(1989).
257)宋基豪,≪渤海政治史硏究≫(一潮閣, 1995), 41쪽.
258)李佑成,<南北國時代와 崔致遠>(≪창작과 비평≫10-4, 1975).
259)宋基豪,<발해에 대한 신라의 양면적 인식과 그 배경>(≪韓國史論≫19, 서울대, 1988).
260)≪新唐書≫渤海傳.
261)李康來,<三國史記의 靺鞨 인식>(≪白山學報≫52, 1999).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