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총설01권 한국사의 전개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3. 고려2) 경제적 특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1. 생태학적 특성
          • 1) 한반도의 위치와 지형
          • 2) 한반도의 기후
          • 3) 식생
          • 4) 동물
          • 5) 생태계
          • 6) 생물상
        • 2. 지리학적 특성
          • 3) 지형
            • (2) 하천과 평야
            • (3) 해안과 해양
          • 4) 기후
        • 3. 인류학적 특성
          • 4) 산촌과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 5) 도시인의 주거지역과 생태적 특성
      • Ⅱ. 한민족의 기원
        • 1. 고고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문화계통의 다원론적 입장-
          • 3) 문화계통
        • 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 1) 한민족·한국문화 기원론의 흐름
          • 2)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여러 양상과 그 계통
        • 3. 문헌에 보이는 한민족문화의 원류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1. 선사
        • 2. 고대
          • 1) 국가의 성립과 발전
          • 2) 통일 신라의 수취제도
        • 3. 고려
          • 1) 정치적 특성
          • 2) 경제적 특성
          • 3) 사회적 특성
          • 4) 사상적 특성
        • 4. 조선
        • 5. 근현대
          • 1) 근대적 사회변동과 자주 개혁의 시련
            • (7)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의 전개
          • 2)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독립운동
            • (1) 일제의 강점과 식민통치의 기조
            • (2) 식민통치의 시기별 특징
            • (4) 독립운동의 시기별 특징
          • 3) 해방정국과 현대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1. 언어
        • 2. 문학
        • 3. 종교와 사상
          • 5) 한국 종교사의 전개
        • 4. 과학기술 -한국 과학기술사의 시기별 특징-
          • 1) 전통과학시대
          • 2) 근대과학시대
          • 3) 현대과학시대-한국전쟁 이후
        • 5. 미술
          • 1) 선사시대 미술의 특성
          • 2) 삼국시대 미술의 특성
        • 6. 음악
          • 2) 한국음악사의 전개양상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경제적 특성

(1) 민전과 공전·사전

 고려시대에 있어서 주업은 농업이었다. 농경이 당시의 기본적인 생산형태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 기반이 되는 토지문제는 사회질서와도 관련하여 가장 주목받는 과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취지에서 먼저 토지지배관계에 대해서부터 살펴보면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 것은 民田이었다. 이 민전은 백성들이 조상대대로 전래하여 오는, 명칭 그대로 人‘民’의 ‘田’으로서 그들의 사유지를 말하는데, 대부분은 白丁으로 알려진 농민들이 소유주이었으나 양반과 서리·향리는 말할 것 없고 노비층까지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여기에서 얻어지는 수확물의 일부를 국가에 租稅로 납부하고 나머지를 수입으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民産의 근본이 되는 토지였을 뿐더러 국가 재정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國用과 祿俸의 재원도 거기에서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민전의 경영은 대체적으로 영세 농민에 의한 自家經營의 형태를 취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家族勞動力에 의지하여 자기의 소규모 토지를 경작해 생활을 꾸려갔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양반과 토호들처럼 많은 민전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의 경우는 그 경영 형태가 이와 좀 달랐으리라 예상된다. 이들의 토지는 노비노동에 의한 경작이나 傭作 등도 의당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소작을 주어 경작시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인데,300) 이럴 때는 규정대로 수확의 50%를 소작료로 받았다고 생각된다.

 민전은 사적 소유권이 보장되어 있는 토지였다. 이 점은 물론 수취와 관련이 깊은 것이었겠지마는 民田主가 그 토지의 주인으로서 토지대장인 量案에 명시되고, 그리하여 각자의 소유권이 국가에 의해 보호를 받았던 것이다. 민전은 이와 같이 사적소유지였으므로 그에 대한 매매나 증여·상속 등 관리처분권도 소유주의 자유 의사에 맡겨져 있었다.301)

 지금 민전은 각 개인의 소유지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私田의 범주에 속하는 토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에 대칭되는 국유지나 관유지도 있었다. 그런 토지들로는 公廨田·屯田·學田·籍田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은 공전이었다. 이처럼 토지의 공·사전은 소유권에 의하여 구분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토지는 收租權의 귀속에 의해서도 공·사전으로 구분되었다. 위에서 民田租는 국고에 수납되어 국용이나 녹봉에 충당되었다고 하였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민전은 公田이었다. 이에 비해 개인에게 수조되는 兩班田 등은 사전이었다. 이것을 다시 내용별로 정리하면 국유지와 국고수조지는 공전인데 대해 사유지와 사인수조지는 사전이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302) 그런데 민전은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공전도 되고, 사전도 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토지였던 것이다.303)

 종래 이들 공전·사전의 구분과 관련하여 논의가 되었던 또 하나는 差率收租의 문제였다. 널리 알려진대로 고려 때의 토지에 대한 收取率로는 1/10조와 1/4조, 그리고 1/2조의 3종류가 기록에 보이고 있다. 처음의 연구자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1/10조는 태조 당시의 실정을 도외시한 신빙성이 적은 사료라 하여 버리고 대략 공전에서는 1/4조, 그리고 사전에서는 1/2조를 수취하는 제도였다고 설명하였다. 아울러 이때의 1/4(25%) 공전조는 地稅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인데 반해 1/2(50%) 사전조는 地代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여 공전과 사전 사이에 倍額이나 되는 차율수조가 생겨나게 된 배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있었다.304)

 한데 그 뒤에 1/10조는 고려 때 실제로 민전에 적용되던 수취율이라는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런 입장을 취한 논자들은 성종 11년에 정해진 1/4공전조도 국유지를 소작주었을 경우의 지대로 파악하고 있다.305) 이어서 1/4공전조가 적용되던 토지는 국·공유지 가운데 일부에 한정되었다는 의견306) 등도 나와 있지마는, 현재는 이들 새로운 견해에 많이 기울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사유지(사전)를 타인에게 대여하여 소작관계가 발생하였을 때 그 지대로 二分取一하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종래의 주장과 다른 것이 없다.

 다음으로 이 자리에서 하나 더 살펴보아야 할 문제는 토지국유의 원칙에 관한 것이다. 종래 우리 나라의 토지제도에 대해서는 동양의 여러 나라가 대개 그러했던 것처럼 전국의 토지가 ‘公田制’ 위에 성립되어 모든 토지는 국가의 公有에 귀속하였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오랜동안 유력시되어 왔었다. 이것은 “넓은 하늘 아래에 王土 아닌 것이 없다”(≪詩經≫, 小雅 北山)는 전통적인 王土思想의 관념에서 영향받은 바도 없지 않았으나, 보다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한국의 토지제도에 관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저술을 낸 和田一郞의 公田制=土地國有制 이론과 唯物史觀이 말하는 ‘아시아 국가에 있어서의 私的 土地所有의 결여’라는 命題였는데,307) 그러나 지금은 대체적으로 잘못된 이해였다고 보고들 있다.

 원래부터가 그들 주장에는 불순한 동기가 내재되어 있기도 하고, 또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여러 방면에서 비판이 가해져 왔었지만,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사전은 田租의 귀속문제와 함께 토지 그 자체가 사유지적 성격이 농후하다는 의미도 지닌다는 견해가 제시되었고,308) 자손에게 상속이 허용된 兩班永業田으로서의 功蔭田柴와 직역의 세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향리·군인의 영업전과 같은 사유지적 성격의 토지가 존재하였다는 실증과309) 더불어 공전 또한 국가의 직영지뿐 아니라 단순한 국고수조지도 포함하는 등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310) 종래의 이해방식은 수정을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토지국유제론에 대한 비판은 무엇보다도 민전의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더욱 본격화하게 되었다. 그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백성들의 사적 소유지로서 매매 처분과 증여·상속이 자유로운 토지였던 것이다.

 이에 즈음하여 왕토사상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가 있게 되었다. 사유지의 경우 비록 왕토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자유로이 처분할 수 없었던 기록 등으로 미루어 동양의 전통적인 왕토사상은 관념적인 산물이었을 뿐 현실적인 토지소유관계를 말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311)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고려 때의 각종 토지는 소유권이나 수조권의 귀속에 따라 공전과 사전으로 분류되었으며, 그것에 의해 수조율에도 차등을 두는 제도였다. 한데 그들 토지 가운데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여 가장 커다란 의미를 지닌 것은 백성들의 사유지로서 1/10조의 수취율을 적용받았다고 생각되는 민전이었다. 이것은 민산의 근본이 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의 재정을 지탱해주는 토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같은 기반 위의 토지지배관계를 한때는 토지국유제로 파악하려는 논의도 있었으나 그것은 옳지 못한 이해였다.

300)姜晋哲,<高麗時代의 農業經營形態-田柴科體制下의 公田의 경우->(≪韓國史硏究≫12, 1976:≪高麗土地制度史硏究≫, 高麗大出版部, 1980).

安秉佑,<高麗時期 民田의 經營>(≪韓國 古代·中世의 支配體制와 農民≫, 지식산업사, 1997).
301)有井智德,<高麗朝における民田の所有關係について>(≪朝鮮史硏究會論文集≫8, 1971:≪高麗李朝史の硏究≫, 國書刊行會, 1985).
302)李成茂,<公田·私田·民田의 槪念-高麗·朝鮮初期를 中心으로->(≪朝鮮初期 兩班硏究≫, 一潮閣, 1980:≪韓㳓劤停年紀念 史學論叢≫, 知識産業社, 1991).

姜晋哲,<私田支配의 諸類型>(≪高麗土地制度史硏究≫, 高麗大出版部, 1980).
303)李成茂, 위의 글.

尹漢宅,<私田과 田丁>(≪高麗前期 私田 硏究≫, 高麗大 民族文化硏究院, 1995).
304)姜晋哲,<高麗前期의 公田·私田과 그의 差率收租에 대하여-高麗 稅役制度의 一側面->(≪歷史學報≫29, 1965).

旗田 巍,<高麗の公田>(≪史學雜誌≫77-4, 1968:≪朝鮮中世社會史の硏究≫, 法政大學出版局, 1972).
305)李成茂, 앞의 글.

金容燮,<高麗前期의 田品制>(≪韓㳓劤停年紀念 史學論叢≫, 知識産業社, 1981).

金泰永,<科田法上의 踏驗損實과 收租>(≪經濟史學≫5, 1981:≪朝鮮前期 土地制度史硏究≫, 知識産業社, 1983).
306)安秉佑,<高麗의 屯田에 관한 一考察>(≪韓國史論≫10, 1984).

―――,<高麗前期 地方官衙의 設置와 運營>(≪李載龒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한울, 1990).

박종진,<조세제도의 구조>(≪고려시기 재정운영과 조세제도≫, 서울대출판부, 2000).
307)姜晋哲,<「土地國有制說」의 問題>(≪高麗土地制度史硏究≫, 高麗大出版部, 1980).
308)姜晋哲, 앞의 글(1965).
309)李佑成,<高麗의 永業田>(≪歷史學報≫28, 1965:≪韓國中世社會硏究≫, 一潮閣, 1991).
310)旗田巍, 앞의 글(1951).
311)李佑成,<新羅時代의 王土思想과 公田-大崇福寺碑 및 鳳巖寺 智證碑의 一考->(≪趙明基華甲紀念 佛敎史學論叢≫, 中央圖書出版社, 1965:≪韓國中世社會硏究≫, 一潮閣, 1991).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