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과학기술 -한국 과학기술사의 시기별 특징-
오늘날 ‘과학’ 내지 ‘과학기술’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현대 인간사회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다. 당연히 역사학에서도 점점 과학사 또는 과학기술사의 무게가 커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전통사회에서는 과학이란 중요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런 현상은 동양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모든 역사는 오늘의 역사”라는 유명한 표현이 과학사에 만큼 그럴 듯이 어울리는 분야도 그리 많지 않을 지경이다. 오늘날 ‘과학사’가 그런 대로 중시되기 시작하는 것은 오늘날 ‘과학’이 중시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과학이 세계 어느 곳 보다 일찍부터 중요한 인간 활동으로 확립된 서양에서는 당연히 다른 지역에서 보다 먼저 학문으로서의 과학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양의 과학사라는 학문은 그리스에서 그 뿌리를 찾아 근대과학의 눈부신 발달을 대표하는 17세기 전후의 소위 ‘과학혁명’까지를 일관성 있게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개발된 서양과학사가 일반 역사 서술에도 영향주어 오늘날 세계사 서술의 한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서양이 아닌 나라나 지역에서의 과학사란 자연히 서양과학의 수용으로 크게 달라지면서 갑자기 발달하는 과정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의 과학사란 자연히 그 전통 시대의 과학사와 그에 이은 근대과학의 수용의 두 갈래로 나뉘어 보이게 마련이다. 한국과학사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문제 하나는 우선 이를 들어야 마땅할 것 같다. 한국과학사는 傳統科學시대와 現代科學시대로 나눌 수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논의의 편의상 우리는 그 사이에 두 시대의 전환기라 할 수 있는 近代科學 시기를 넣어 17세기 이후 일제시기까지를 여기 넣어 생각하는 편이 편리하다. 이 근대과학 시기란 이웃 나라(중국과 일본)에는 서양과학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조선에도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서양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이렇게 전환기 또는 과도기를 설정하고 보면, 한국사의 현대과학 시기는 해방 이후, 특히 한국전쟁 이후로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시기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한국인들은 서양 과학을 서양과학의 본바닥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 힘으로 현대과학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 과학사는 1) 전통과학의 시대(17세기 이전) 2) 근대과학의 시기 (17세기∼한국전쟁∼1953년 까지) 3) 현대과학 시대(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의 셋으로 시대구분하여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세 시기를 각기 특징짓는 한국과학사의 주제들 내지 담론들을 생각해 보고, 이를 소개하려 한다. 이제 한국사 연구와 서술이 근대적 방법으로 시작된지도 한 세기를 바라보고 있다. 또 한국이 식민지 시대에서 벗어난 것도 반세기를 훨씬 넘어가고 있다. 이제 한국사를 보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된다. 한국사를 보다 냉철한 눈으로 평가하고 서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회는 바로 그런 노력을 시도하는 자리로도 유용하다고 판단한다. 한국문화의 특성을 논의하기 위해 과학기술사를 말하자면, 우리는 그 동안의 과학사 기술사 서술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마땅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글은 그런 입장에서 쓴 상당히 개인적 의견이 가미된 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