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인공유물
가) 목기
나무를 재료로 쓴 목기의 경우,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이러한 목기를 사용하고 남겨 놓았다 하더라도 수백만년 또는 수십만년 지나는 동안 당시 사용했던 목기가 남아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지금은 거의 썩어 없어져 그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스페인과 영국에서 약 30만년 전의 구석기시대 목기가 1개씩 발견된 예가 있는데 당시 늪지대인 곳에서 발견되었다.155) 이러한 목기는 나뭇가지 끝을 불에 달구거나 깎아서 예리하게 만든 다음 지금의 창처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목기의 경우 구석기인들이 가공을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얻은 굵은 나뭇가지를 몽둥이나 곤봉처럼 사용하고 작은 나뭇가지는 땅을 파는 굴지구로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며, 이것은 더 오래된 구석기시대로 갈수록 목기를 이러한 방법으로 사용하였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156) 지금의 영장류들도 부러진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높은 곳의 열매 같은 것을 흔들어 따는 행태를 연구하여 초기 구석기시대의 인류도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였다고 추론하는 영장류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구석기유적에서 목기의 보존상태가 나빠 직접 골기나 석기와 함께 발견된 예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구석기시대의 주거지인 움집을 만들 때 이용한 나뭇가지로 된 기둥구멍 같은 것이 발견된 예는 가끔씩 나타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아직까지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목기가 발견된 예는 없다.
나) 골기
다음은 동물의 뼈를 이용하여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쓴 경우인데 나무로 만든 목기의 경우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이 역시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골기의 발견은 그리 흔한 편이 아니다. 특히 중기에서 전기 구석기시대로 갈수록 골기의 발견은 드물며 이 시기에 발굴된 골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전기 구석기시대에 최초로 인류가 골기를 사용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Raymond Dart교수이며 동물의 사지뼈나 아래턱뼈를 자연 그대로 이용하거나 돌로 깨어 골수를 꺼내어 먹은 다음 날카로운 부분은 도구의 날로 사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157)
구석기인들이 망치돌로 타격을 가하여 인공이 가해진 골기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이러한 골기가 발견된 유적은 그리 많지 않다. 뼈를 돌칼로 깎거나 돌에 갈아서 창끝이나 작살 심지어 바늘 같은 보다 형태가 확실하고 정교한 골기가 후기 구석기시대에 만들어지고 있으며, 타제된 골기에 비해 제작기술이나 형태가 매우 발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골기들은 별 문제가 없지만 타제된 골기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데 자연현상에 의해서 가끔 골기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굴유적 같은 곳에서는 하이에나 등 육식동물과 설치류에 의해 동물의 뼈가 잘리고 긁히며 깎이는 현상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곰 같은 동물에 의해 밟히면 뼈들이 부러지고 잘려서 날카로운 부분이 생기기도 하고 온도와 기후변화에 의해서 동물뼈들이 갈라지고 터져서 인공이 가해진 골기와 구별이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158)
구석기시대에는 골기 외에 뼈로 만든 예술품이 다수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후기 구석기시대에 이러한 유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뼈를 깎아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조각품을 만들거나 뼈의 표면을 선으로 조각하여 역시 사람과 동물의 형태를 나타낸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동물의 치아를 이용하여 장식품을 만들어 쓰고 있는데 주로 치아의 뿌리를 송곳으로 뚫어 여러 개를 끈으로 연결하여 목걸이 등으로 사용하였다. 그 밖에 지금의 지휘봉 같은 상징적 유물이 사슴의 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구석기유적에서도 골기와 뼈로 만든 예술품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으나 학계에서 공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고 북한의 경우도 그 수가 극소수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다) 석기
다음은 돌을 재료로 구석기시대에 필요한 생활도구와 무기 등을 만들어 쓴 경우인데 이것은 구석기시대의 유물 중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고 가장 중요한 인공유물에 해당한다.
돌은 앞의 나무나 뼈와는 달리 땅속에서도 수백만년 또는 수십만년이 지나도 보존상태가 매우 우수한 재료로 지금까지 잘 남아 있는 유일한 구석기시대의 인공유물이다. 또 구석기인들이 석기재료로 사용한 돌 자체가 보통 돌이 아닌 입자가 매우 고운 단단한 유리질의 석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석기를 타제할 때 나오는 박편들이 매우 날카로운 날을 갖고 있어 도구나 무기로서 나무나 뼈보다 더 선호한 재료이며 이러한 이유로 구석기인들이 동물을 사냥하고 도살하는데 중점적으로 석기를 타제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시대의 인류가 생활에 필요한 도구와 무기를 돌을 중심으로 타제석기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문화가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구석기문화를 통해 문화의 발전단계를 추적하여 시대별로 문화의 특징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은 수백만년 전부터 잘 남아 있는 석기를 통해 석기의 제작기술과 많은 형태의 석기종류를 구분하여 이를 연구할 수 있었던 덕택이다.
구석기문화는 아프리카·유럽·아시아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지역에 따라 일부 특징적인 구석기가 나타나고 있으나 유럽의 경우 전기와 중기 구석기시대를 통해 약 90여 종류의 석기가 밝혀져 있고159)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약 100여 종류의 석기가 분류되어 있다.160) 현재 우리 나라의 구석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석기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아시아의 구석기를 종합적으로 참조하고 점진적으로 한국의 구석기형태학을 확립해 놓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구석기는 전기·중기·후기의 3기로 분류되고 있는데 석기형태를 중심으로 나뉘어 있다. 구석기연구는 석기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도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다룰 때는 현재까지 우리 나라에서 발굴된 석기를 시대별로 분류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55) | Bordes, F., The Old Stone Age, World University Library, London and New York, 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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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 Bordaz, J., Tools of Old and New Stone Age, Devon, David and Charles, Newton Abbot, 1971. |
157) | Oakley, K., Frameworks for Dating Fossil Man, Weidenfeld and Nicolson, London, 1969. |
158) | Sonneville-Bordes, D. de, L'Age De La Pierre,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1964. |
159) | Bordes, F., Typologie du Paléolithique ancien et Moyen, 1V., et 1 Atlas, Delmas, Bordeaux, 1961. |
160) | Sonneville-Bordes, D. de, et J. Perrot, Essai d'adaptation des méthodes statistiques au Paléolithique supérieur, premiers résultats, Bulletin de la Société Préhistorique Française, Vol. 50, n̊5-6, 1953, pp. 323∼333. Sonneville-Bordes, D. de, et J. Perrot, Lexique typologique du Paléolithique supérieur, Outillage lithique, Ⅳ) Burins, Bulletin de la Société Préhistorique Française, t. 53, 1956, pp. 408∼412, 2 fig. Sonneville-Bordes, D. de, et J. Perrot, Lexique typologique du Paléolithique supérieur, Outillage lithique. V) Outillage à bord abattu, Ⅵ) Piéces tronquées, Ⅶ) Lames retouchées, Ⅷ) Piéces variées, Ⅸ) Outillage lamellaire, pointe azilienne, Bulletin de la Société Préhistorique Française, t. 53, 1956, pp. 547∼559. 5 fi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