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Ⅰ. 구석기문화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2) 구석기시대의 유물(4) 후기 구석기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1. 구석기시대
          • 1)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구석기시대의 개념
            • (2)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2)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제4기의 지질과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화석인골과 편년
            • (1) 편년별 화석인골
        • 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구석기유적의 분포
            • (1) 남한의 구석기유적
            • (2) 북한의 구석기유적
            • (3) 집자리 복원
          • 2) 구석기시대의 유물
            • (1) 유물의 분류
            • (2) 전기 구석기
            • (3) 중기 구석기
            • (4) 후기 구석기
        • 3. 구석기시대의 생활
          • 1) 생업과 의식주생활
          • 2) 의식과 예술
            • (1) 예술작품
            • (2) 의식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1) 시기별 구석기문화
          • 2) 일본
          • 3) 시베리아
      • Ⅱ. 신석기문화
        • 1. 신석기시대
          • 1) 신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3) 시기구분
          • 2)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후빙기의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인골의 출토
        • 2.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신석기유적의 분포
            • (1) 유적분포의 특성
            • (2) 주요 신석기유적
          • 2) 신석기시대의 유적
            • (1) 집터
          • 3) 신석기시대의 유물
            • (1) 토기
            • (2) 석기와 뼈연모
        • 3. 신석기시대의 생업과 사회
          • 1) 생업
            • (1) 수렵·어로·채취
            • (2) 농경과 목축
          • 2) 사회
            • (3) 의식·신앙 및 예술
            • (4) 의식주
        • 4. 주변지역 신석기문화와의 비교
          • 2) 동아시아 신석기문화의 이동
          • 3) 서북한·동북한지역과 요동반도의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북한

가) 웅기 굴포리유적의 석기

 1963년에 발굴된 웅기 굴포리유적은 위로부터 아래로 모두 7개 지층이 구분되었는데, Ⅴ층이 굴포문화 Ⅱ기인 후기 구석기층에 속한다.

(가) 석기재료

 굴포문화 제Ⅱ기층의 석기는 제Ⅰ기층의 주된 석재인 석영과는 달리 대리석·각암 등으로 되어 있는데, 정교한 석기를 만드는데 매우 적합하다.

(나) 석기제작기술

 이 문화층의 석기제작기술은 직접타격법보다도 끌 같은 것을 대고 박편을 떼내는 간접타격법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박편을 갖고 석기를 만들 때는 가압법을 사용하여 잔 박편을 눌러 뜯어내 석기를 만드는 기술도 이용되었는데 이런 기술은 Ⅰ기층의 석기제작기술보다 더 발달된 것이다.

(다) 석기의 종류·형태·특징

 Ⅱ기층의 유물로는 대리석재 밀개 1점, 검푸른 빛의 각암제 석기 3점이 설명되어 있다.212)

끝긁개(밀개, <그림 29>①)

 이것은 밑부분이 편평하고 등부분은 불룩하게 나온 박편의 가장자리를 다듬어서 날을 만든 석기이다. 날부분에는 때린 홈과 조각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남아 있으며, 날의 일부는 사용하여 무뎌졌고 밑바닥의 일부분도 반들반들하게 달았다. 석기의 크기는 10.0×8.0×3.8㎝이다.

각암 제1석기(<그림 29>②)

 석기의 명칭이 나와 있지 않지만 그림에 나와 있는 형태를 보면 끝긁개에 가깝다. 석기의 한쪽이 비교적 넓고 둥근 편이며 모나게 생겼다. 이것은 전면을 가공하였는데 한쪽 면은 전부 가공하였고 다른 면은 둥근 부분만 가공하여 날을 세웠다. 크기는 6.0×4.5×2.3㎝이다.

각암 제2석기(<그림 29>③)

 이것은 긁개 또는 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양면이 가공된 석기이다. 한쪽 면은 다 가공하고 다른 면은 뾰족한 날부분만 가공하였다. 석기의 크기는 8.0×5.5×2.2㎝이다.

각암 제3석기(<그림 29>④)

 부정형의 석기로 한쪽만을 가공하였다. 크기는 7.5×6.5×2.2㎝이다.

나) 부포리유적의 석기

 함북 웅기 부포리 덕산에서 1964년에 지표채집한 석기들로 그 특성이 굴포 Ⅱ기층의 석기와 같다고 하므로213)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부포리의 석재도 주로 각암이며 간혹 부싯돌도 섞여 있다. 이 곳의 각암은 심히 풍화되어 녹이 나 있지만 속부분은 검푸른 빛이 난다고 하였다. 유물의 종류는 긁개·칼·찍개·돌핵 등이 대표적이다.

긁개(<그림 29>⑤~⑦)

 이것은 삼각형·타원형·부정형 등의 형태가 있다.

삼각형 긁개(<그림 29>⑤)

 주로 한쪽 면만을 가공하여 날을 만들었고 전체 모양은 삼각형이다. 석기의 크기는 10.5×4.3×1.5㎝이다.

타원형 긁개(<그림 29>⑥)

 얇은 박편에 만든 것인데 날부분의 양면을 돌아가면서 비교적 정교하게 다듬었다. 전체 모양은 타원형이며 석기의 크기는 7.3×4.5×0.8㎝이다.

부정형 긁개(<그림 29>⑦)

 역시 얇은 박편에 만든 것으로 날부분의 한쪽 면을 돌아가며 비교적 정교하게 다듬고 그 반대편은 대강 손질하였다. 크기는 6.5×4.0×0.5㎝이다.

칼(<그림 29>⑧)

 칼의 형태는 삼각형·부정형의 2가지가 있다.

삼각형 칼

 이것은 한쪽 면만을 가공한 흔적이 보이며 삼각형의 긴 변을 날로 하였다. 석기의 크기는 6.0×3.0×1.3㎝이다.

부정형 칼(<그림 29>⑧)

 이 형태의 것이 2개 있는데, 하나는 박편의 크기가 7.5×3.5×1.5㎝인 것으로 만들었으며 날이 예리하다. 또 하나는 한쪽 날부분만을 날카롭게 손질하였고 잡는 부분은 쥐기 좋도록 다듬었다. 크기는 6.5×4.5×1.5㎝이다.

찍개(쵸퍼, <그림 29>⑨)

 이것의 전체 모양은 둥글게 생겼고 석기의 날부분에는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석기의 크기는 7.5×6.0×3.5㎝이다.

돌핵(<그림 29>⑩)

 이 유물은 만두모양으로 생겼고 높이가 4㎝가량 된다고 하였다.

<그림 29>웅기 굴포리·부포리 및 만달리동굴유적의 석기(굴포리 ①∼④, 부포리 ⑤∼⑩, 만달리 ⑪∼(16))

다) 만달리동굴유적의 석기

 평양에서 동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승호구역 만달리에 있는 이 석회암동굴유적은 북한에서 1979년에 1차, 1980년에는 2차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화석인골, 후기 구석기유물, 골기, 동물화석 등 많은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유물을 발견하였다 한다.214) 유적의 지층은 크게 3개층으로 위에서 아래로 1층이 위층(신석기층), 2층은 가운데층(후기 구석기층), 3층은 아래층(후기 홍적세층)으로 구분하였고, 이들을 다시 층결이라 하여 퇴적순으로 세분하여 9개로 설명하였다. 후기 구석기층이 발견된 곳은 가운데층의 맨 아랫부분에 해당하는데 석회암이 섞인 회색의 점토층으로 두께가 40㎝가량 된다. 이 층에서 후기 구석기유물이 모두 13점 출토되었는데 석기로 분류된 것은 1점도 없으나, 세석인석핵 8점, 박편 3점, 돌망치 2점이 구분되었다. 석기재료는 세석인석핵 중 규암제 1개, 흑요석제 7개이고, 박편은 흑요석제 2개, 석영제 1개이며, 돌망치는 2개 모두 석영제로 되었다. 이러한 유물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세석인석핵으로 우리 나라 후기 구석기유적에서는 이제 상징적으로 발견되는 돌핵이며 후기 구석기시대의 후기를 나타내주는 유물이다.

 만달리동굴의 세석인석핵은 8개 중 7개가 흑요석제이고, 1개가 규암제이기 때문에 석재가 좋아 이 돌핵의 특성을 잘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보고서에는 흑요석제 돌핵을 각추와 원판형(<그림 29>⑪) 2가지로 구분하였고, 다시 각추형은 겉모양이 삼각형(<그림 29>⑫·⑬) 3개, 사다리꼴(<그림 29>⑭) 1개, 긴사다리꼴(<그림 29>⑮) 2개로 나누었다. 원판형은 1개이며 규암제 1개(<그림 29>(16))는 긴 사다리꼴로 구분하였다. 흑요석제 세석인석핵의 크기는 세석인이 떨어져 나온 옆변의 길이가 보통 2.5∼4.3㎝에 속하며 세석인의 폭은 4㎜ 정도로 나타난다. 또 규암제 세석인석핵의 크기는 길이가 7.5㎝ 안팎이며 여기서 떨어져 나온 세석인의 폭은 큰 것이 1㎝에 달한다.

 여기서는 세석인석핵을 형태별로 구분하는 것보다 제작방법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제작기술로 구분하면 먼저 세석인석핵의 타격면을 준비된 돌핵에서 가로로 타격을 1, 2번 가해 세석인석핵 박편을 떼어낸 다음 여기서 수직으로 세석인을 떼내는 방법(일본의 유우베츠기술과 비교됨)이 주류를 이루고(<그림 29>⑫·(16)), 그 다음은 세석인을 떼기 위한 타격면을 준비했는데 보통 돌날돌핵의 타격면의 주위를 돌아가며 세석인형태의 박편을 떼낸 면을 준비한 1점(<그림 29>⑮)이 다른 점이다. 흑요석제 박편 2점은 길이가 3∼4㎝에 해당하는 작은 형태이고, 석영제 1점은 길이가 5㎝ 정도이다. 석영제 돌망치 2점은 원래 직경 7.5㎝가량 되는 1개의 자갈이 반으로 깨진 것을 각각 사용한 것으로 사용 흔적이 표면에 잘 남아 있다.

<鄭永和>

212)김용간·서국태,<서포항 원시유적발굴보고>(≪고고민속론문집≫ 4, 1972).
213)김용간·서국태, 위의 글, 38∼40쪽.
214)김신규·김교경 외,<승호구역 만달리동굴유적 발굴보고>(≪평양부근 동굴유적 발굴보고≫ 유적발굴보고 14,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5).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