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의식과 예술
우리 나라의 구석기시대에 과연 의식(믿음)과 예술이 있었는가. 그것은 공주 석장리 1지구 1호집터(20,830BP)의 여러 출토유물을 분석하여, 믿음과 예술행위가 있었다는 보고로부터 비롯되었다.234) 이러한 관심은 동굴유적(점말 용굴·두루봉 9굴)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을 과학적으로 고찰하여 인간행위로 된 것으로 보고, 여기에서 만들어진 여러 뼈유물 가운데「얼굴」예술품을 통하여 설명하였다.235)
이러한 입장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슬기슬기사람이 구석기예술을 처음 만든 것으로 보던 대부분의 해석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우리 학계에서도 반대의 견해를 나타내는 여러 주장이 발표되었다.236) 그런데 앞의 주장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후기 구석기시대 이전의 여러 유적(Péch de l'Aze유적·Fontéchevade유적·La Quina유적 등)에서 출토된 자료들을 인간의 행위로 보기 어려운 과학적 자료의 제시와 이들 유적의 연대가 전기-중기 구석기시대가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하여만 하였으나, 그러하지 못하였다.
전기∼중기 구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 발굴된 예술품은 곰·사슴 등의 뼈를 손질하여 만든 것들이었는데, 이러한 동물들은 신성시되는 상징동물(symbolic animal)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바이다. 또한 의식과 예술이 동시성을 갖고 있는 실체와 행위이어서, 이것은 앞으로 인류학·신화학·민속학의 연구결과로 당시 사회의 사유체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고학이 발굴유물을 중심으로 하여 문화적 해석에 접근하는 연구방법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구석기유적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을 통하여 구석기사람들의 의식세계에 대하여 몇 가지 해석을 추출하여 보기로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