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예술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예술로는 암각화와 각종 청동기의 조각이 있으며, 소수의 동물이나 사람모양의 토우와 토기문양 및 토기 자체를 들 수 있다.0473) 이러한 예술의 전통에 대하여는 대체로 북방계통으로 보고 그러한 북방적인 특색을 한국 청동기시대 예술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청동기시대 예술의 성격과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이해하려면 이 또한 무문토기문화와 요령청동문화와 한국식청동문화의 세 단위의 관계를 통하여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무문토기문화는 문화성격상 남방농경문화 전통이 강하며 요령청동문화는 북방청동문화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고 나아가서 양 문화전통이 한반도 안에서 융합하여 나타난 한국식청동문화 안에 양자의 특색이 어떻게 융화되어 있는가의 관점에서 청동기시대의 예술을 접근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우선 북방전통에 속하는 예술품으로는 역시 각종의 청동기와 암각화를 들 수 있다. 암각화 중 가장 대표적인 울주 반구대 암각화는 수렵과 어로의 암각내용과 쪼고 파고 문지르는 암각 수법이나 소위 뢴트겐식 투사 표현방식 등에서 시베리아 일원의 수렵·어로문화권의 암각화가 근동의 동단까지 남하한 예로 보고 금속기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각석 기술과 弩의 조각 등의 내용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 또는 그 이후로 내려오는 것이다.0474)
이 밖에도 제단으로 추정되는 고령 양전동의 동심원과 괴면을 배치한 추상적 기풍의 조각0475)과 신라까지 내려볼 수 있는 동심원과 능형문 등의 각종 선문으로 구성한 울주 천전리 암각화0476)도 이러한 북방적 추상예술의 기풍을 이어받은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북방적인 추상의 정수는 역시 다뉴세문경을 위시한 동령구·검파형동기·방패형동기 등에 구성된 체계적인 기하문과 神面 모양의 얼굴, 동물과 새 등을 장식한 청동검파두식과 帶鉤를 들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북방적인 청동문화와 대조하여 남방적인 무문토기문화의 예술의 정수로서는 흔히 간과하기 쉬운 순전한 성격의 무문토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전시기의 즐문토기가 그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품으로 거론되어 왔던 반면에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가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무문양의 평범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방계가 분명한 청동유물에 관심이 치우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문토기의 순전한 무문양의 표현은 그 심미적인 감성이나 표현의 의도에 있어서 요란한 전면 시문의 즐문토기에 대등한 대조적인 미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청동기시대로 일반화시킨 시대 안에는 무문토기로 상징되는 남방적인 예술성의 흐름과 각종 청동기의 추상장식과 암각화로 나타나는 북방적인 흐름이 끊임없이 교차하여 독특한 한국형의 남북복합형 예술전통으로 발현하게 되었던 것이며, 이러한 남방적인 흐름과 북방적인 흐름과의 끊임없는 교류가 농경 정착문화의 바탕 위에서 전개되어 가면서 우리 나라 예술의 독특한 전통이 수립되었다.
0473) | 盧爀眞, 앞의 글(1992), 9∼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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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4) | 蔚州 盤龜臺 岩刻畵에 대하여는 다음의 연구가 있다. 文明大,<蔚州의 先史時代 岩刻壁畵>(≪文化財≫7, 文化財管理局, 1973). 黃龍渾,<韓半島 先史時代 岩刻의 製作技術과 形式分類>(≪考古美術≫127, 1975), 2∼14쪽. 金元龍,<蔚州盤龜臺岩刻畵에 대하여>(≪韓國考古學報≫9, 1980), 6∼22쪽. 黃壽永·文明大,≪盤龜臺岩壁彫刻≫(동국대, 1984). |
0475) | 李殷昌, 앞의 글, 24∼40쪽. 金元龍, 앞의 글(1983), 173∼174쪽. |
0476) | 文明大, 앞의 글, 33∼4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