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중부지역
중부지역 철기시대 유적에는 집터·토성·토기요지 등 생활유적과 토광묘·옹관묘·적석총·즙석봉토분 등의 분묘유적이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지역 철기문화에 대한 관심은 가평 마장리유적이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를 이어 한강유역의 가평 이곡리유적과 춘천 중도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중도유적에서는 집터와 적석총 등이 조사되었는데 1·2호 집터의 연대를 기원후 1∼2세기경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강유역에서 조사된 유적으로 경기 수원 서둔동유적, 하남 미사동유적, 강원 횡성 둔내유적, 충북 중원 지동유적 및 하천리유적 등이 있다. 그리고 영동지역의 강원 양양 가평리유적, 명주 안인리유적에서도 각각 집터가 발견되었다.
토광묘는 한강유역을 비롯한 중부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중부지역에서 처음 조사된 서울 가락동유적은 1호분이 토광목관묘이고, 2호분은 즙석봉토분인데 목관묘와 옹관묘가 합장된 형식이다. 이 즙석봉토분은 한강유역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된 형식이다. 석촌동 적석총 3호분 동쪽에서도 즙석봉토분, 토광묘, 옹관묘 등 여러 기가 조사되었다. 최근에 조사된 진천 송두리유적은 2기 토광묘(토광목관묘 및 토광목곽묘)에서 중부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남부지역에서 보이는 소위 와질토기계의 쌍이부원저호 및 주머니호 등이 철부, 철낫, 청동기 등과 함께 출토되었다. 천안 청당동유적에서는 22기의 토광목관묘가 조사되었는데 연질단경호와 심발형토기, 청동제 마형대구 11점과 다량의 유리구슬이, 청주 송절동유적에서도 토광목관묘에서 연질계단경호와 심발형토기가 각각 출토되었다. 이들 토광묘는 서북지역으로부터 전래된 토광묘로 생각되나 진천 송두리유적의 경우는 와질계토기의 중심지인 낙동강유역에서부터 파급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옹관묘는 가락동 2호분과 같이 토광묘와 합장으로 발견되거나 단독묘일 경우에도 적석총과 같은 다른 묘제에 종속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석총은 양평 문호리, 춘천 중도, 제천 양평리·도화리 등 한강 상·중류에서 기원후 2∼3세기경에 해당되는 무기단식 적석총의 형태로 발견되는데, 4세기 중반 이후에는 서울 석촌동의 기단식 적석총으로 발전된다. 그 밖에 토성으로 서울 풍납리토성이 있고, 토기요지에는 진천 삼룡리요지가 있다.
그런데 중부지역에서는 청동기문화 후기와 직접 연결되는 유적이나 서북지역의 대동강유역과 낙동강유역에서 발견되는 초기 토광묘유적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어 철기문화의 형성과정을 구명하기가 매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