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기타 생업기술의 발전
기원 전후한 철기시대에 들어와서 서남해안과 도서지방, 그리고 제주도에 대규모 조개무지(패총)유적이 자리잡게 된다. 종전까지는 생활근거지가 주로 강유역에 한정되었으나, 이 시대에 와서 해안과 도서지방에서도 큰 마을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사정에는 인구 증가나 이동이 있기 때문으로, 결국 바다자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패총에서 확인된 어종 중에는 연안에서 잡힌 것도 있지만, 먼 바다에까지 나아가서 포획하는 것도 있다. 해남 군곡리의 경우 바다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서식하는 굴·꼬막·가무락조개·바지락·우렁이 등이 다량 출토하였다. 가까운 바다라고 할지라도 조간대가 아닌 10m 이상의 다소 깊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전복도 포획하였음을 보아, 잠수 기술을 이용한 어법도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먼 바다에 나아가서 잡히는 물렁돔·참돔·황새치·고등어도 있다.0988)
한편 낚시어법에 사용되는 철제 낚싯바늘이 여러 패총유적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군곡리패총에서 출토된 것 중 그 길이가 14cm를 넘는 대형도 있어 대형 물고기도 낚시에 의해 포획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패총에서 많이 발견되는 철제도자는 조간대 아래에 서식하는 전복을 포획하는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밖에 조개의 좌우각을 비틀어 열 때나 연체부와 분리작업을 할 때 많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패총유적에서는 바다뿐만 아니라 육상의 동물유체도 발견되는데, 가장 많이 포획되는 동물은 멧돼지와 사슴이다. 화살촉과 창끝 등의 수렵도구를 철기로 만들면서 포획량은 더욱 늘어나고 이들 야생동물 상당수가 각 지역마다 멸종위기로까지 놓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가축화된 동물로서는 해남 군곡리나 제주 곽지리에서는 개의 유체와 소뼈 등이 확인된 바 있다. 실제로 고대 문헌기록에는 가축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부여의 부족 이름에 말·소·돼지·개 등의 가축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읍루와 제주도에서는 돼지와 소를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기록이 유명하다. 이를 보아 가축사육은 한반도 전역에서 거의 보편화된 것으로 이해되지만, 고고학적 실물자료는 아직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고 있다.
0988) | 崔盛洛,≪韓國原三國文化의 硏究-全南地方을 中心으로≫(學硏文化社, 1993), 192∼19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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