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신론 철학
원효가 제반 불교사상을 새롭게 체계화시킨 많은 저술에 인용된 전거를 살펴보면 유식계통의 경론들이 중요한 기반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다른 경론과의 대조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화해하는 데 주력한 데서 오는 현상이었다.1060) 그리고 당대 불교계의 지대한 과제였던 空과 有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원효의 중심 사상체계는≪大乘起信論疏≫와≪金剛三昧經論≫을 통해 잘 드러난다.1061)
원효는 도처에서 중관과 유식의 편견에 빠진 교리를 비판하였다.≪起信論別記≫에서 원효는 “중관은 모든 집착을 깨뜨리고 깨뜨린 것 또한 깨뜨려서 깨뜨리는 것과 깨뜨려지는 것을 다시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는 보내기만 하고 두루하지 못하는 논”이고, 이에 비해 “유식은 깊고 얕은 것을 두루 세워 법문을 판별하여 스스로 세운 법을 모두 버리지 않으므로 이는 주기만 하고 빼앗지 못하는 논”이라고 비판하였다.1062)
다른 저술에서도 이와 같은 비판은 자주 나타난다. 유식은 언설을 떠나야 하는 데도 언설에 집착하여 자성을 차별하고 삼세제불의 뜻을 알았다고 하며, 중관은 제법의 依他道理를 부정하고 三性과 三諦를 敎門의 假名시설에 불과하다고 떠들고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학도들은 이런 편견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닦고 행동을 깨끗이 하며 바른 知解를 체득해야 하므로 유와 무를 다 버리고 소연히 의거함이 없음을 관해야 함을 강조하였다.1063)
이런 편벽된 중관이나 유식과는 상대적으로≪起信論≫을 극찬하였다. 이는 “지혜롭고도 어질며 깊고도 넓어, 세우지 않음이 없으면서 스스로 버리고, 깨뜨리지 않음이 없으면서 다시 인정한다. 다시 인정한다는 것은 저 가는 것이 다하여 두루 세움을 나타내며, 스스로 버린다는 것은 이 주는 것이 다하여 빼앗음을 밝힌 것이다. 이것을 일러 모든 논의 근본이오, 뭇 쟁론을 평정하는 주인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1064)
부정(破·往)과 긍정(立·與)을 특징으로 하는 중관과 유식이 서로 대립관계에 있다 해도 중생의 마음을 대상으로 삼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원효는≪기신론≫이 이 중생의 마음이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하여 一心·二門·三大의 사상으로 역동적으로 전개된다고 보았다.1065)
대승에서는 일체 제법에 別體가 없고 오직 一心을 가지고 自體로 삼는다. 대승의 대상이 이처럼 중생의 마음이라면 중관은 그러한 마음에서 주로 그 眞如의 측면을 밝히고 유식은 주로 그 生滅因緣의 측면을 밝힌 것이다. 心性은 불생불멸하는 것인데 妄念에 의해 차별이 생기는 것으로 망념을 떠나면 평등한 것이며 이것이 진여라는 것이 중관의 생각이다. 또 중생은 心(아뢰야식)에 의해 意(마나식)와 意識(전6식)이 전변하는 것이므로 三界는 허위요 唯心所作이니, 마음이 생하면 가지가지의 법이 생하는 것이오 마음이 멸하면 제법이 멸한다는 것이 유식의 생각이다.
중관과 유식이 각각 衆生心의 진여와 생멸인연의 측면을 밝히고 있다면 중생의 마음은 그 두 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한마음의 법에 의해 두 종류의 문이 있으니 하나는 心眞如門이요 하나는 心生滅門이다. 이 두 문은 각각 일체법을 모두 포섭하니 이 두 문은 서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1066)
二門이 서로 어긋나 통하지 않는다면 진여문은 理만을 포용하고 事는 포용할 수 없으며, 생멸문은 事만을 포용하고 理는 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문이 상호 융통하여 한계가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모두 각각 일체의 理事 諸法을 두루 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문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1067)
그러나 그 둘은 서로 만나되 각자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眞如門은 相을 없애 理를 드러내 體에 중점을 두며 眞如不變의 입장에서 空을 주로 설하고 染淨通相에 의해 총섭하나, 生滅門은 理를 잡아 事를 이루어 相用에 중점을 두며 本覺隨染의 입장에서 不空을 주로 설하고 染淨別相에 의해 총섭하는 차이가 있다. 이 이문은 하나가 아니면서 서로 다르지도 않다. 따라서 이문은 일심을 중심으로 융통무애한 화합을 이루면서도 그들 특유의 교리적 특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중관의 철저한 空觀은 破에 철저한 나머지 두루할 길이 없고 유식의 철저한 有觀은 立에 철저한 나머지 빼앗을 길이 없다. 이들이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는 이 결함을 해결할 길이 없으나, 이들이 한마음으로 화합한다면 이들의 결함은 서로 상대방을 보완해주는 이론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원효는 一心二門의 이론으로 중관과 유식의 특징을 종합하면서≪기신론≫중심으로 체계화해가는 탁월한 논리를 보여주었다. 이문의 조직 단계를 넘어서 이문이 하나로 화합하여 대승의 이념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시 三大의 조직이 필요하다.≪기신론≫의 삼대의 세계는 진여·생멸 이문이 화합한 미묘한 大乘의 體가 眞俗·有無·染淨 등의 일체 차별을 타파하여 원융무애하게 약동하며 무한한 공덕을 발생하고 있는 부처의 경계이다. 원효는 이를 大乘의 宗體라고 보았다.1068)
≪起信論≫의 해석에서 조직된 원효의 여래장사상은≪金剛三昧經論≫에서 그 실천 이론을 전개한다. 원효는≪금강삼매경≫의 주제를 一味觀行 곧 一觀으로 요약하였다. 여기서 觀은 境智에 통하고 行은 因果에 걸치는 것이다. 果는 五法이 원만한 것을 이르고 因은 六行이 구비된 것을 이른다. 智는 本覺과 始覺의 兩覺을 말하고 境은 眞俗이 雙泯한 것을 말한다.1069) 이는 곧 眞俗 別體의 집착을 다스린다는 것이 되고, 원효는 여기에 이 경전의 핵심이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원효가 해석한 이 경의 내용은 우선 無相觀의 所觀法이 一心如來藏體이고 다음의 本覺利品은 생멸문을, 入實際品은 진여문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리고 망상공과 진성공을 말하는 진성공품은 體大와 相大에, 眞俗이 둘이 아닌 一實의 법이 여래장인데 여기에 본래 갖추어진 무량한 공덕에서 불가사의한 用大가 발생함을 보인 如來藏品은 用大에 상응하여≪기신론≫의 구조와 일치한다. 그러므로≪금강삼매경론≫은 一味觀行이라는 실천적인 관행을 빈틈없이 조직하고, 그 실천적인 관행이 의거하는 이론적인 원리를≪기신론소≫에서 一心二門三大說과 일치시킨 구조인 것이다. 일체의 법은 오로지 一心이며 일체의 중생은 하나의 本覺이다. 여래가 교화하는 일체의 중생은 유전이 아닌 바 없으므로 그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방법도 一味이며 一乘인 것이다.1070) 한마음을 중심으로 융통무애한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기신론≫의 일심이문삼대설을 중관과 유식을 회통할 수 있는 이론 체계로 정립한 원효는≪금강삼매경론≫에서 一味觀行의 실천원리로써 사상 체계를 종합해 나간 것이다.1071)
내용이 전해지지 않는≪華嚴經疏≫의 序文에서 밝힌 원효의 화엄관은 普法사상이다. 원효는≪화엄경소≫의 서문에서 “무장애법계법문이란 非大非小하고 非促非奢하며 不動不靜하고 不一不多하다. 크지 않으므로 아주 조그만 極微가 되어도 남음이 없고 작지 않으므로 무한히 큰 大虛가 되어도 남음이 있다. 촉급하지 않으므로 능히 三世劫을 머금고 유장하지 않으므로 몸을 들어 一刹那에 들어간다. 움직이지도 않고 정지해 있지도 않으므로 一法이 一切法이요 일체법이 일법이다. 이러한 무장무애의 법이 법계법문의 묘술이니 모든 보살이 들어갈 바요 삼세제불이 나올 바이다.”1072)라고 하였다.
普法이란 일체법이 相入相是하는 것을 이른다. 일체법이 一微塵과 一切世界의 大小관계, 三世劫과 一刹那의 促奢관계, 그리고 動靜과 一多 관계의 모든 범주에서 아무런 걸림이 없이 相入하고 相是하는 광탕한≪화엄경≫의 세계를 일컫는 것이다.1073)
원효는 一과 一切가 상즉상입하는 것을 보법이라 하고 이를 바탕으로 一心에 근거하여 一切行을 성립시켰다. 一心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효의 무애행은 화엄일승사상을 실천적으로 전개한 것이었다. 원효의 일심사상은≪기신론소≫에 의해 철학적 토대가 구축되어≪금강삼매경론≫에 의해 실천성을 부여받았으며 최종적으로≪화엄경소≫에 의해 완성되었다.1074)
1060) | 李箕永,<統一新羅의 佛敎思想>(≪韓國哲學史≫上), 20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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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 | 元曉,≪大乘起信論疏記會本≫권 6(≪韓國佛敎全書≫1, 733∼789쪽). ――,≪金剛三昧經論≫권 3(위의 책, 604∼677쪽). |
1062) | 元曉,≪起信論疏記≫ 권 1(위의 책, 733쪽中) |
1063) | 元曉,≪菩薩戒本持犯要記≫(위의 책, 582쪽中下). |
1064) | 元曉,≪起信論疏記≫권 1(위의 책, 733쪽中). |
1065) | 高翊晋, 앞의 책, 194∼200쪽. |
1066) | 元曉,≪起信論疏記≫권 1(≪韓國佛敎全書≫1, 740쪽下∼741쪽上). |
1067) | 元曉,≪起信論疏記≫권 1(위의 책, 741쪽下). |
1068) | 元曉,≪起信論疏記≫권 1(위의 책, 733쪽上). |
1069) | 元曉,≪金剛三昧經論≫上(위의 책, 604쪽下). |
1070) | 南東信,≪元曉의 大衆敎化와 思想體系≫(서울大 博士學位論文, 1995), 152∼153쪽. |
1071) | 高翊晋, 앞의 책, 219∼231쪽. |
1072) | 元曉,<晋譯華嚴經疏序>(≪韓國佛敎全書≫1, 495쪽上). |
1073) | 表員,≪華嚴經文義要決問答≫권 2(≪韓國佛敎全書≫2, 366쪽上). |
1074) | 南東信, 앞의 책, 186·19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