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Ⅲ. 군사조직1. 경군2) 2군 6위제의 성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08권 삼국의 문화
    • 09권 통일신라
    • 10권 발해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1. 중앙의 통치기구
          • 1) 고려 초기의 정치제도
            • (1) 건국 초기의 정치기구
            • (2) 건국 초기 정치기구의 기능과 권력관계
            • (3) 고려 초기 정치기구의 변화
            • (4) 새 정치기구의 성립
          • 2) 중서문하성
            • (1) 3성의 성립
            • (2) 중서문하성의 단일기구화
            • (3) 중서문하성의 구성
            • (4) 중서문하성의 기능
            • (5) 중서문하성의 변화
          • 3) 상서성
            • (1) 상서성의 조직
            • (2) 상서성의 관원 구성
            • (3) 상서성의 기능
          • 4) 중추원
            • (1) 중추원의 설치
            • (2) 중추원의 구성
            • (3) 승선의 기능
            • (4) 추신의 기능
          • 5) 삼사
            • (1) 삼사의 설치
            • (2) 삼사의 기구 조직
            • (3) 삼사의 기능
            • (4) 삼사의 변질
          • 6) 도병마사
            • (1) 도병마사의 설치
            • (2) 도병마사의 구성
            • (3) 도병마사의 기능
            • (4) 도평의사사로의 개편
            • (5) 도평의사사 기구의 확대
            • (6) 도평의사사의 기능 확충
          • 7) 식목도감
            • (1) 식목도감의 설치와 구성
            • (2) 식목도감의 기능
            • (3) 식목도감의 변질
          • 8) 어사대와 낭사
            • (1) 대간의 설치
            • (2) 대간의 조직
            • (3) 대간의 직능
            • (4) 대간의 정치적 지위
          • 9) 한림원과 문한관
            • (1) 한림원의 설치와 조직
            • (2) 한림원의 기능
            • (3) 한림원의 지위
          • 10) 사와 도감
            • (1) 제사의 조직
            • (2) 도감의 구성과 기능
        • 2. 관직과 관계
          • 1) 관직의 구조
            • (1) 관직의 설치와 구분
            • (2) 재추직과 참상직·참외직
            • (3) 서리직과 권무직
            • (4) 실직과 산직
          • 2) 국초의 관계와 문산계
            • (1) 국초의 관계
            • (2) 문산계
          • 3) 무산계와 향직
            • (1) 무산계
            • (2) 향직
        • 3. 중앙 정치체제의 권력구조와 그 성격
          • 1) 중앙 정치체제의 권력구조
            • (1) 국왕과 재추와 상서 6부
            • (2) 국왕과 재추와 대간
            • (3) 문무양반과 대간
          • 2) 중앙 정치체제의 성격
            • (1) 귀족적 성격
            • (2) 고려 제도의 독자성
            • (3) 조직의 미분화성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1. 지방 통치조직의 정비와 그 구조
          • 1) 지방 통치조직의 정비
            • (1) 국초(태조-경종대)
            • (2) 성종대의 지방제도 정비
            • (3) 현종대의 지방제도 정비
            • (4) 예종대의 지방제도 정비
            • (5) 명종대 이후의 지방제도 운영실태
            • (6) 공민왕대 이후의 지방제도 정비
          • 2) 지방 통치조직의 구조
            • (1) 영속관계
            • (2) 계수관과 영현
            • (3) 주목 중심의 도와 안찰사
            • (4) 일원적 지방 통치조직의 진전
        • 2. 군현제도
          • 1) 경·도호부·목과 군현
          • 2) 특수행정조직-향·부곡·소·장·처·역-
          • 3) 촌락의 구조
          • 4) 향리와 기인 및 사심관
        • 3. 지방의 중간 통치기구
          • 1) 고려 지방 중간기구의 구조
          • 2) 경기
            • (1) 경기의 성립
            • (2) 경기의 통치제도
            • (3) 경기 통치기구의 개편
          • 3) 5 도
            • (1) 5도안찰사제의 성립
            • (2) 5도안찰사의 통치제도
            • (3) 5도안찰사제의 변화
          • 4) 양계
            • (1) 양계병마사제의 성립
            • (2) 양계병마사의 통치제도
            • (3) 양계병마사의 변동
      • Ⅲ. 군사조직
        • 1. 경군
          • 1) 태조대의 경군
            • (1) 태조대 경군의 규모
            • (2) 태조대 경군의 편제
          • 2) 2군 6위제의 성립
            • (1) 6위와 2군의 설치
            • (2) 2군 6위의 임무와 병력편제
          • 3) 중앙군의 인적 구성에 관한 제설
            • (1) 부병제설
            • (2) 군반씨족제설
            • (3) 경·외군 혼성제설
        • 2. 주현군과 주진군
          • 1) 주현군과 농민
            • (1) 주현군의 성립
              • 가. 광군
              • 나. 진수군
            • (2) 주현군의 성격
              • 가. 병종과 배치
              • 나. 보승군과 정용군
              • 다. 1 품군과 2·3품군
          • 2) 주진군과 국방체제
            • (1) 양계의 주진과 주진군
            • (2) 주진군의 조직과 지휘계통
            • (3) 주진군의 임무
            • (4) 주진군 소속의 군인
        • 3. 고려 전기 군제의 붕괴-경군을 중심으로-
          • 1) 경군 붕괴의 원인
          • 2) 별무반의 설치와 그 의의
      • Ⅳ. 관리 등용제도
        • 1. 관리 등용의 여러 방식
        • 2. 과거제
          • 1) 과거제의 도입
          • 2) 과거제의 정비와 변천
            • (1) 예비고시와 본고시의 분화
              • 가. 예비고시=국자감시의 설치
              • 나. 본고시=예부시(동당시)의 설행
            • (2) 복시·친시의 설행
            • (3) 과거 3층제의 성립
            • (4) 무과와 승과 및 제과
          • 3) 고시과목과 고시방법
            • (1) 제술과
            • (2) 명경과
            • (3) 잡과
              • 가. 명법업
              • 나. 명산업
              • 다. 명서업
              • 라. 의업
              • 마. 주금업과 복업
              • 바. 지리업
              • 사. 하론업
              • 아. 3례업·3전업·정요업
          • 4) 응시자격
          • 5) 급제등급과 급제자수
          • 6) 급제자의 초직과 승진
            • (1) 제술과
            • (2) 명경과
            • (3) 잡과
          • 7) 고시관
          • 8) 과거제의 역사적 의의
        • 3. 음서제
          • 1) 음서제도의 성립
          • 2) 음서의 종류와 유형별 분석
          • 3) 음서의 시행시기
          • 4) 음서제도의 운영
            • (1) 음서의 연령
            • (2) 초음관직
            • (3) 탁음자의 관품
            • (4) 음서의 시행 원리와 수혜 인원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42권 대한제국
    • 43권 국권회복운동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46권 신문화운동 Ⅱ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2) 2군 6위제의 성립

(1) 6위와 2군의 설치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태조대 개경 거주의 전문적 군인들은 최대로 잡아 6천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병력은 마군·보군·해군, 그리고 내군 등 네 가지 병종별로 구분되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왕조 개창기이자 전란기였던 태조대는 지방사회에 대한 정부권력의 침투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태조대의 경군조직은 무엇보다도 그같은 시대적 여건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태조의 후계자들은 지방사회에 대한 중앙의 정치군사적 통제력을 계속 강화시켜 정부직속군의 규모·편제 등을 정비하였다. 그 결과 성립된 고려조의 정형화된 중앙군제가 2군 6위제도였다. 2군 6위란 중앙군을 이루는 8개 부대의 총칭으로서 2軍은 鷹揚軍과 龍虎軍을, 6衛는 左右衛·神虎衛·興威衛·金吾衛·千牛衛, 그리고 監門衛를 가리킨다.

 후술하듯이 지위상으로는 2군이 6위보다 상위의 부대들이었다. 그러나 제 도적으로는 6위가 2군보다 먼저 설치되었을 뿐 아니라 편제 병력의 규모 또한 2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다. 편제상으로 보면, 중앙군 전체병력(45,000명)의 93%(42,000명)가 6위에 소속되었다.

<표 2>2군 6위의 조직과 편제

 6위를 주축으로 하는 이같은 중앙군 조직은 왕조 개창기인 태조대의 경군조직과 비교할 때 두가지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중앙군의 제도적 형식이 당의 중앙군제인 府衛制度(혹은 府兵制度)를 모델로 하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편제병력의 규모가 대폭 증강되었다는 점이다. 이같은 변화는 광종대부터 중국식 국가체제를 모델로 추진된 집권화정책의 한 결과로서 이해된다.

 2군과 6위가 정확히 언제 어떤 경위로 설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高麗史≫백관지 머리말 부분에는 2군 6위의 설치 연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태조) 2년에 6위를 설치하였다. 목종 5년에 6위의 직원들을 배치하였다. 그후에 응양군과 용호군 2군을 설치했는데 2군은 6위보다 지위가 높았다(≪高麗史≫권 77, 志 31, 百官 2, 西班).

 앞 절에서 비판했듯이 태조 2년에 6위가 설치되었다는 부분은≪高麗史≫편찬자의 어떤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목종 5년에 6위의 직원들을 배치했다는 부분은 “목종 5년 5월 6위의 군영을 짓고 직원과 장수들을 배치했다”고 한≪高麗史≫兵志의 기사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기록 가운데에서는 응양·용호의 2군이 6위보다 나중에 설치되었다고 한 부분만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그러면 6위와 2군은 언제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설치된 부대들이었을까. 먼저 6위가 실재했음을 전해 주는 최초의 기록은 목종 원년에 개정된 文武兩班及軍人田柴科(문무양반과 군인들에 대한 보수규정)에서 발견된다. 그 규정을 살펴보면 ‘六衛長史‘가 田地 45결과 柴地 22결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0659) 따라서 적어도 목종 원년에는 이미 6위의 부대조직이 편성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전시과규정은 목종이 즉위한지 불과 2개월 만에 개정된 것이다. 때문에 6위는 적어도 목종이 즉위하기 이전에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목종의 전왕은 성종(981∼997)이었다. 성종은 당제를 모델로 하여 중외의 행정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함으로써 고려조 나름의 집권적 통치체제의 항구적 기반을 마련한 군주였다. 중앙의 3성·6부의 설치, 지방의 鄕吏職 개편과 12牧 설치를 비롯한 행정구역의 정리, 상주외관의 파견 등은 모두 성종대에 처음으로 시행한 제도들이다. 그러므로 당의 중앙군제를 본뜬 고려의 6위제도 또한 성종대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추측이 가능하다면 6위가 설치된 보다 정확한 시기를 성종 14년(995)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해에 성종은 당나라식의 지방행정제도를 본따서 종래의 12州牧을 12軍으로 개편하고 각 군마다 牧使 대신 節度使들을 파견·배치함으로써 지방사회에 대한 군사행정적 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고려정부는 이들 절도사들을 통하여 지방사회로부터 대량의 병력자원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결과 중앙군의 병력편제 또한 확대 개편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해서 설치한 중앙군 편제가 아마 6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종 14년 6위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중앙군이 어떤 방식으로 편제되어 있었을까. 태조대의 경군조직이 그 때까지 그대로 지속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성종 14년이면 태조가 죽은 지 약 50년 후인데다가 중국식 관제의 도입과 집권화 시책은 이미 광종대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高麗史≫에는 성종 9년의 기사 가운데 ‘절충부 別將’과 같은 부병제식의 무관직을 지닌 한 개인이 언급되고 있는데0660) 이것은 당시의 중앙군 병력이 이미 「衛」 단위로 편제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부병제와는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편제되었던 태조대의 경군조직이 최초로 「衛」단위의 편제로 조정되기 시작한 시기는 빠르면 광종대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태조대 특유의 정치제도가 처음으로 중국풍의 그것으로 개편되기 시작한 시기가 광종대였기 때문이다. 광종은 중국 後周의 통치제도를 본따 왕권을 강화시켜 나간 군주였다. 그는 과거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문관 우위의 관료체제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는 한편 태조대 이래의 공신급 무장들의 대부분을 모반 혐의로 처형하였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徇軍部를 軍部로, 內軍을 掌衛部로 개정하였다. 또한 지방의 주·군에서 풍채좋은 장정들을 선발하여 중앙의 시위군 병력을 크게 증강하였다. 이같은 사실은 당대에 이미 국왕의 직접적인 통치권이 지방사회에 침투하기 시작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0661)

 광종대의 정치적 분위기가 이와 같은 것이었다면 경군의 편제방식에도 어떤 변화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통일전쟁기였던 태조대에는 경군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전투의 수행에 있었지만 왕권강화를 도모한 광종대에는 왕실의 경호가 경군의 일차적 임무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태조대 이래의 勳舊宿將들이 대거 처형당하고0662) 지방에서 선발된 장정들이 중앙의 시위군으로 새로 편입하는 등 경군의 인적 구성에 있어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광종은 군사부문에 있어서의 이같은 사태변화를 어떤 새로운 제도로서 수습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비록 미숙한 형태로나마 중국식의 중앙군제 즉 府衛制度를 도입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그러므로 태조대의 경군조직은 광종대에서 성종 초에 걸쳐 중국식 부위제도를 지향해 부분적으로 개편하다가 성종 14년에 이르러 마침내 6위제도로 정형화하였던 것으로 요약된다.

 이번에는 2군(응양군과 용호군)의 설치경위에 대하여 살펴 보자. 2군이 언제 어떻게 해서 설치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다만 이들 2군이 6위보다 나중에 설치된, 그러나 6위보다는 상위의 부대들이었다는 기록만이 전한다.0663)

 한편≪高麗史≫를 살펴 보면 현종 8년(1017)조의 기사 속에 2군 소속의 특정 무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보인다.0664) 따라서 2군은 목종 5년(1002) 이후 현종 8년 이전의 어느 시기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高麗史節要≫목종 12년(1009) 정월조 기사에는 ‘親從將軍 庾方’이 라는 인물이 보이는데 친종장군이란 응양군과 용호군 소속 장군들의 별칭이었다.0665) 때문에 2군의 설치시기는 일단 목종 5년에서 11년 사이가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 볼 수 있다.0666)

 그러나 목종대에 2군이 설치되었으리라는 추측에는 다소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하나의 군사조직이 새롭게 창설 운영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인적, 행정적, 재정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게다가 2군은 왕을 측근에서 경호하고 의장하는 부대들이었다. 그러므로 고려정부가 6위 이외에 별도로 이같은 친위 부대들을 새롭게 편제했을 때에는 그렇게 해야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왕을 경호하는 병력을 크게 증강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라든지 혹은 군사조직 전반의 개편사업의 추진과 같은 정책적 변화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목종대에는 6위 이외에 추가로 2군을 설치할 특별한 사정이 없었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목종대의 기사 속에서 「친종장군」이 보이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2군의 장군들이 친종장군이라 불리기도 한 것은 親從-국왕에 대한 護衛侍從-이 바로 그들의 고유임무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응양군 장군이니 용호군 장군이니 하는 것은 그들의 소속부대에 따라 부여된 명칭들이었다. 하지만 친종하는 장군들은 2군이 설치되기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2군 설치 이전 이들 친종하는 장군들의 명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 임무에 따라 친종장군이라 일컬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2군이 창설되면서 종래의 친종장군들이 응양군 장군이니 용호군 장군이니 하는 소속부대 별 명칭으로도 일컫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추론해 보면, 목종대 기사에 친종장군의 구체적 예가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근거로 당시에 2군이 설치되었다고 판단하기는 곤란하다.

 고려정부가 기존의 6위 이외에 별도로 2군을 설치한 것은 그렇게 해야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같은 사정은 목종대가 아니라 현 종대의 역사속에서 보다 적절히 지적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현종은 그 원년에 거란군의 대규모 침입을 당하여 나주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이 때 현종은 그를 수행하던 50여 명의 禁軍이 도중에 거의 다 逃散하는 바람에 賊徒들의 피습을 당하는 등 시종 신변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피난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0667) 거란군은 이듬해 정월 개경을 함락한 직후에 고려정부와 강화를 맺고 퇴각했으나 개경의 궁궐과 민가, 그리고 모든 공문서들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0668) 사태가 그러했다면 막대한 수의 개경주민들이 살상되거나 행방불명되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개경 일원에 거주하는 군인들을 기반으로 한 국왕 시위군 병력 또한 거의 다 상실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앙군 조직에 있어서의 이같은 피폐상이, 현종 6년(1014) 상장군 최질, 김훈 등이 諸衛의 군사들을 선동해 정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의 하나로서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고찰해 볼 때, 고려정부가 기존의 6위 이외에 별도로 두 개의 시위군 부대 즉 응양군과 용호군을 신설했을 법한 가장 적절한 시기는 목종대가 아니라 현종 초 거란군의 침략을 당한 직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高麗史≫에서 응양군과 용호군의 칭호는 현종 8년과 9년조의 기사에서 최초로 언급되고 있다.0669) 반면 그 이전 시기의 역사기록에서는 2군의 칭호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2군 소속 장군들의 별칭이 친종장군이었고 친종장군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 언급이 목종대 기사에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친위군부대가 별도 신설되었어야 할 현실적인 조건에 비추어 볼 때, 2군이 편제된 시기는 목종대보다는 현종대였을 가능성이 크다.0670)

 고려 전기 2군 6위의 중앙군 조직의 성립과정에 대한 이상의 고찰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고려 건국기이자 통일전쟁기였던 태조대의 경군은 그 규모가 최대 6천여 명 정도였다고 추정되며 그 병력은 전투목적상 보군·마군·해군, 그리고 내군 등의 네 가지 병종별로 구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종대부터 중국식의 집권적 통치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하고 지방사회의 병력자원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이 강화되어 나감에 따라 중앙군의 편제는 서서히 당나라의 부병제도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개편되어 나갔고 병력규모 또한 점진적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그러한 추세는 성종대에 접어들어 획기적으로 진전되었으며, 성종 14년 고려정부는 중앙과 지방에서 확보한 4만 2천 명의 대규모 병역자원을 토대로 외형상 당나라 12위 군제의 축소판인 6위 군제를 성립시켰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현종 초 거란군의 침략으로 중앙군 조직이 지리멸렬해지고 특히 친위군 병력 즉 친종병력의 대부분이 상실되자 고려정부는 국왕의 친위군을 재정비 강화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여 기존의 6위와는 별도로 그리고 보다 상위의 친위군 부대들로서 응양군과 용호군을 添設하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고려 전기 중앙군 조직의 정형인 2군 6위의 군제는 대체로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성립된 것으로 이해된다.

0659)≪高麗史≫권 78, 志 32, 食貨 1, 田制.
0660)≪高麗史≫권 3, 世家 3, 성종 9년 9월.
0661)鄭景鉉, 앞의 글(1992), 89∼90쪽.
0662)≪高麗史≫권 93, 列傳 6, 崔承老.
0663)≪高麗史≫권 77, 志 31, 百官 2, 西班.
0664)李基白, 앞의 책, 68쪽.
0665)≪高麗史≫권 77, 志 31, 百官 2, 西班 鷹揚軍.
0666)洪承基, 앞의 글, 38∼39쪽.
0667)≪高麗史節要≫권 3, 현종 원년 12월·2년 춘 정월.
0668)≪高麗史≫권 95, 列傳 8, 黃周亮.
0669)李基白, 앞의 책, 68쪽.
0670)李基白, 위의 책, 80∼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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