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불교회화
고려는 불력의 도움으로 왕조의 창건을 이룩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건국 초부터 불교를 숭상하고 불사를 크게 일으켰다. 이에 수반하여 불교회화도 크게 성행되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려 전기의 불교회화에 대해서는 기록도 영성할 뿐 아니라. 본격적인 벽화나 그림은 한 점도 전하고 있지 않다. 다만 寫經의 첫머리에 그려지는 寫經畵 1점과 板畵變相圖 2종이 남아 있을 뿐이다.574)
현재 고려 전기의 사경화로 유일하게 전하고 있는 작품은 목종 9년(1006)에 제작된 大寶積經寫經畵이다.
이 사경화는 당시 천추궁에서 섭정하고 있던 목종의 모후인 獻哀王太后 皇甫氏와 그녀의 외척이며 당대 최고의 실력자 金致陽이 동심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銀泥로 그려져 있다. 삼존형식의 天人像이 같은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서 꽃을 뿌리는 散華供養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들 주변의 공간은 장식화된 土坡와 구름대에 의해 3등분 되었다. 공간의 여백은 고려 후기의 사경화에 비해 넓게 설정되어 있고 雷文을 옆으로 연속 배열한 듯한 기하학적 무늬의 테두리 방식은 五代의 양식과 상통된다. 그러나 이 사경화의 중심을 이루는 존상표현에서는 옷의 매듭처리 방법이나 天衣의 흐름, 안면의 인상 등에서 大方廣佛華嚴經寫經畵를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전통의 계승이 엿보인다.575)
판화변상도로는 목종 10년에 개경의 總持寺에서 간행한 寶篋印陀羅尼經의 것이 고려 전기 불교판화 연구에 보다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576) 이 그림은 세로 5.4cm, 가로 l0cm의 매우 소규모이지만, 중국의 五代版보다 더 정교하게 처리되어 있다. 특히 경의 내용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구도와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의 모습과 탑과 꽃비를 비롯한 산과 구름, 건물 등의 치밀함과 조화로움은 당시 불교회화의 뛰어난 사실감과 화려함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