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향악
고려의 향악은≪고려사≫ 악지에는 俗樂이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었지만, 속악의 명칭보다는 향악이 고려음악사의 서술에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바, 그 이유는 대략 이러하다. 첫째로≪고려사≫를 편찬한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이 모화사상으로 인하여 중국 아악의 대칭어로 자기 나라의 음악을 속악이라고 불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 나라 음악이라는 뜻의 향악이 중국인이≪고려도경≫ 및≪宋史≫ 고려전에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0735)
고려향악의 개념은 통일신라에서 사용되었던 것보다 좀더 넓은 뜻으로 확대되었다. 고려조정이 통일신라의 향악을 전승하여 그 당시 귀족사회의 음악수용층이 요구했던 새로운 차원으로 그 향악을 발전시켰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려의 향악은 왕립음악기관의 우부에 소속되었고, 좌부의 당악과 쌍벽을 이루었다.
0735) | 徐 兢,≪高麗圖經≫ 권 40, 同文 樂律. ≪宋史≫ 권 487, 列傳 246, 外國 3, 高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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