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Ⅱ. 문화의 발달10. 의식주생활3) 주생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08권 삼국의 문화
    • 09권 통일신라
    • 10권 발해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1. 불교사상의 변화와 동향
          • 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변화와 조계종의 대두
            • (1) 무신정권기 불교계의 현황
            • (2) 무신정권과 선종
            • (3) 조계종의 대두
          • 2) 지눌의 사상
            • (1) 선·교갈등의 문제
            • (2) 지눌의 생애
            • (3) 심성론
            • (4) 수행론
            • (5) 간화선
          • 3) 수선사의 성립과 전개
            • (1) 정혜결사의 취지와 창립 과정
            • (2) 최씨무신정권의 후원과 결사이념의 변화
            • (3) 원의 간섭과 수선사의 친원불교화
          • 4) 백련사의 성립과 전개
            • (1) 백련사 결사운동의 성립과 불교관
            • (2) 백련사 결사의 사회적 기반
            • (3) 백련사 결사운동의 전개와 추이
          • 5) 원의 정치간섭과 불교
            • (1) 고려와 원과의 관계
            • (2) 불교계의 동향
          • 6) 임제종의 수입과 불교계의 동향
            • (1) 임제종 수입과 그 배경
              • 가. 사상적 배경
              • 나. 임제선의 도입
            • (2) 임제선풍의 전개
              • 가. 보우의 선풍과 현실참여
              • 나. 혜근의 임제선 선양
              • 다. 경한의 무심선풍
            • (3) 그 후의 불교계
          • 7) 대장도감과 고려대장경판
            • (1) 대장경이란 무엇인가
            • (2) 고려대장경의 구성
            • (3) 고려대장경의 판각
              • 가. 고려대장경의 조조동기와 판각시기
              • 나. 대장도감 설치와 판각장소
            • (4) 대장경판의 해인사 전래와 유통
              • 가. 해인사에의 전래
              • 나. 고려대장경 판본의 유통
            • (5) 고려대장경의 위치
        • 2. 성리학의 전래와 수용
          • 1) 신유학의 전래와 고려 사상계의 동향
            • (1) 송대 신유학의 성립과 고려 유학계의 대응
            • (2) 고려 불교계의 변화와 새로운 유학사상
            • (3) 신진관료의 대두와 새로운 사풍의 전개
          • 2) 주자성리학의 수용과 특징
            • (1) 주자성리학의 수용
            • (2) 성리학 수용과정에서의 특징
          • 3) 불교와의 관계
            • (1) 성리학 전래 이전의 불교와 유학
            • (2) 불교배척운동과 새로운 유불관계의 형성
        • 3. 풍수·도참사상 및 민속종교
          • 1) 풍수·도참사상
            • (1) 풍수·도참사상의 변모
            • (2) 풍수타락의 원인과 지기론
            • (3) 남경천도설
          • 2) 민속종교
            • (1) 무격의 성격과 역할
              • 가. 강신무와 세습무
              • 나. 무격의 종교적 역할
            • (2) 무고
            • (3) 무격에 대한 열광적 신앙
            • (4) 무격배척과 금압
      • Ⅱ. 문화의 발달
        • 1. 과학과 기술
          • 1) 천문학
            • (1) 천문관측기구와 제도
            • (2) 관측활동과 그 기록들
            • (3) 역법의 정비
          • 2) 지리학과 지도
            • (1) 지도의 제작
            • (2) 풍수지리학
          • 3) 인쇄술과 제지기술
            • (1) 고려의 목판인쇄
            • (2) 청동활자 인쇄술의 발명
            • (3) 제지기술
          • 4) 무기제조와 조선
            • (1) 화약과 화포의 전래
            • (2) 화통도감과 화기의 제조
            • (3) 고려의 배
          • 5) 그 밖의 산업기술
            • (1) 도량형
            • (2) 물레바퀴
            • (3) 금속공예기술
            • (4) 목면의 재배와 무명의 등장
            • (5) 새로운 청자기술의 개발
          • 6) 의약학과 생물학
            • (1) 고려의학의 자주적 발전
            • (2) 고려의약학의 체계적 전개
            • (3) 의약의 교류
            • (4) 의료제도의 변천
            • (5) 동물의 사육
        • 2. 문자와 언어
          • 1) 문자
          • 2) 언어
        • 3. 문학
          • 1) 설화와 민간전승
          • 2) 속악가사
          • 3) 경기체가·시조·어부가·가사
          • 4) 불교문학
        • 4. 역사학
          • 1) 각훈의≪해동고승전≫
            • (1)≪해동고승전≫의 편찬
            • (2) 각훈의 생애와 편찬배경
            • (3)≪해동고승전≫의 특징과 문제
            • (4) 각훈의 역사인식
          • 2)<동명왕편>의 역사인식
            • (1)<동명왕편> 저술의 배경
            • (2)<동명왕편>에 나타난 역사의식
              • 가. 전통적 신이사관의 추구
            • (3) 고구려 계승의식의 표방
          • 3) 일연과≪삼국유사≫
            • (1) 일연의 생애와 사상적 경향
            • (2)≪삼국유사≫의 찬술기반
          • 4)≪제왕운기≫의 편찬
            • (1)≪제왕운기≫편찬의 배경과 동기
            • (2)≪제왕운기≫에 반영된 역사관
          • 5) 민지의≪본조편년강목≫
            • (1)≪본조편년강목≫의 편찬과 그 성격
            • (2) 민지의 생애와 기타 저술
            • (3) 민지의 사학사적 위치
          • 6) 이제현의≪국사≫
            • (1)≪국사≫의 편찬과 그 성격
            • (2) 이제현의 생애와 기타 사서
            • (3) 이제현의 역사서술과 그 인식
          • 7) 기타 역사서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
            • (2) 기타의 역사서
          • 8) 고려 후기 역사서술의 특징
            • (1) 무신집권기 사학의 위축
            • (2) 역사서술에 대한 원의 간섭
            • (3) 고려 말 사관제도의 보강
            • (4) 고려 당대사의 정리
            • (5) 역사의 문학적 표현
        • 5. 미술
          • 1) 건축
            • (1) 건축활동
            • (2) 강화궁궐 및 성곽
            • (3) 목조건축
              • 가. 주심포양식
              • 나. 다포양식
              • 다. 건물유구
          • 2) 석조물과 조각
            • (1) 석조물
              • 가. 석탑
              • 나. 석조부도
              • 다. 석등
              • 라. 석비
              • 마. 당간과 지주
            • (2) 조각
              • 가. 석불상
              • 나. 금동불상
              • 다. 철불상
              • 라. 소조불상
              • 마. 협저칠불상
              • 바. 목조불상
              • 사. 능묘조각
          • 3) 서화
            • (1) 회화
              • 가. 일반회화
              • 나. 불교회화
            • (2) 서예
          • 4) 공예
            • (1) 도자공예
              • 가.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전반-절정기
              • 나. 13세기 후반 이후-쇠퇴기
            • (2) 금속공예
            • (3) 목칠공예
        • 6.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제도와 활동범위
            • (1) 대악서·관현방·아악서의 유래와 체제
            • (2) 왕립음악기관의 음악인과 활동범위
          • 2) 향악
            • (1) 향악과 향악정재
              • 가. 신라향악의 전통과 그 방향
              • 나. 고려의 향악 및 향악정재의 등장
              • 다. 향악의 악조와 음악양식
            • (2) 향악기와 향악활동
              • 가. 향악기
              • 나. 향악활동
          • 3) 당악과 당악정재
            • (1) 송의 교방악사와 당악정재
              • 가. 송나라 교방악사의 등장
              • 나. 고려의 당악정재
            • (2) 고려의 당악과 당악기
              • 가.≪고려사≫ 악지의 당악곡
              • 나. 고려시대의 당악기
          • 4) 대성아악의 등장과 그 향방
            • (1) 대성아악의 아악기와 악현
              • 가. 아악기의 등장
              • 나. 아악의 악현과 연주절차
            • (2) 대성아악의 역사적 변천
          • 5) 고취악과 기악
            • (1) 고취악과 연주형태
            • (2) 기악과 잡기
              • 가. 기악과 잡기의 전통
              • 나. 잡기의 창우와 경시서의 여기
        • 7. 무용과 연극
          • 1) 산대잡극
            • (1) 연등회·팔관회와 백희
            • (2) 교방가무희
          • 2) 나희
          • 3) 조희
          • 4) 재인과 광대
        • 8. 체육
          • 1) 격구
          • 2) 궁사
          • 3) 투호
          • 4) 마상재(마술)
          • 5) 축국
          • 6) 수박
          • 7) 각저
        • 9. 민속
          • 1) 세시풍속
            • (1) 봄철의 세시풍속
              • 가. 원단
              • 나. 입춘
              • 다. 인일
              • 라. 자오일
              • 마. 상원
              • 바. 연등회
              • 사. 2월 초하루
              • 아. 석전
              • 자. 개빙
              • 차. 한식
              • 카. 상사
            • (2) 여름철의 세시풍속
              • 가. 불탄일
              • 나. 단오
              • 다. 유두
            • (3) 가을철의 세시풍속
              • 가. 칠석
              • 나. 백중
              • 다. 추석
              • 라. 중구
            • (4) 겨울철의 세시풍속
              • 가. 지신제
              • 나. 팔관회
              • 다. 동지
              • 라. 수세
          • 2) 민속놀이
            • (1) 예능적 내용
              • 가. 처용희
              • 나. 나희
              • 다. 산대잡희
              • 라. 수희
            • (2) 경기적 내용
              • 가. 격구
              • 나. 수박희
              • 다. 각저희
              • 라. 석전희
            • (3) 유희적 내용
              • 가. 추천희
              • 나. 지연희
              • 다. 호기희
              • 라. 척초희·초인희
              • 마. 농환희
              • 바. 장간희
              • 사. 죽마희
              • 사. 투란희
            • (4) 오락적 내용
              • 가. 위기
              • 나. 투호
              • 다. 저포희
              • 라. 쌍륙
        • 10. 의식주생활
          • 1) 의생활
            • (1) 개관
            • (2) 복제의 정비
            • (3) 몽고복식의 영향
            • (4) 고려 후기의 복식
          • 2) 식생활
            • (1) 곡물의 증산과 병과류의 기술증진
              • 가. 미곡의 증산
              • 나. 떡의 보급
              • 다. 유밀과의 성행과 다식
            • (2) 숭불환경과 차·채소음식·조면의 발달
              • 가. 차의 성행과 진다례·다정
              • 나. 청담한 채소요리의 발달
              • 다. 사원에서의 조면과 양주업
            • (3) 고기음식과 유즙, 기타 찬물류
              • 가. 고기음식과 우유
              • 나. 장류와 젓갈
              • 다. 기타 찬물류
            • (4) 고려의 대외교류와 식생활
              • 가. 원·객관·주식점의 개설과 접객양식
              • 나. 대외무역식품과 음식의 교류
              • 다. 연회와 제향음식
          • 3) 주생활
            • (1) 백성의 살림
            • (2) 제택의 규모와 생활
            • (3) 살림집의 성향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42권 대한제국
    • 43권 국권회복운동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46권 신문화운동 Ⅱ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3) 주생활

(1) 백성의 살림

 妙淸의 난, 무신집권과 권력을 둘러싼 무신들의 상쟁, 몽고침입, 홍건적의 습격 등 고려 후기에 발생한 안팎의 시련으로 인해 백성1209)들은 고달펐다. 그들은 궁실이나 관아, 군사시설 그리고 무수한 사원건축에 수시로 동원되고 부역하였으므로, 자기들 집은 급한 대로 꾸리고 사는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지만 고려 말기엔 잦은 왜구의 노략질까지 겹쳐 백성들은 쉴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따라서 전문 기술인력을 초빙하고 멋부려 짓는 일은 백성들로서는 엄두도 못낼 형편이었다. 그들은 주변에서 채집하거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재로 여럿의 힘을 합쳐 집을 짓고 거기에 살았다.

 그런 집들은 대부분 원초적이어서 옛적에 짓던 집이나 진배없었다. 굽은 나무 삭정이, 고샅의 나무등걸, 장대와 굵은 나무등치, 이엉, 억새, 지릅, 갈대와 싸리, 시누대, 수숫대와 나무껍질, 흙과 여물 그리고 알맞은 돌 등이 요긴하게 쓰이던 건축재료이다. 세우고 건너 지르고 묶고 꽂아 가며 집짓기는 완성된다. 이는 지금도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구조와 아주 흡사한데, 태고적부터 오늘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며 어느 시대에나 지어지던 집의 한 유형이다.

 선사시대의 집이 지표 아래에 기반을 마련하였던 것이라면 시대가 흐르면서 차츰 지표에 가깝게 기반이 상승하고, 마침내 지표 위에 나타났다가 지표로부터 점점 높아져 가는 경향에 따라 형상이 달라진다. 고려 후기의 건축도 그런 흐름 속에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北境개척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므로 통일신라기에 비하여 북방영토가 확장된다. 그 영향으로 인해 집의 형상은 유형으로 분류하여 볼 때 한층 다양하게 되고 이성계의 선대가 거처하였다고 하는 陶穴而居1210)의 종류까지 등장하였다. 이것은 다분히 대륙적이며 고구려의 옛 땅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부·남부지역의 경우, 지역적 특성에 따른 집의 구조가 전기와 유사하였고 그것은 후대에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 전기에도 그랬지만 후기에도 백성들이 집을 지을 때 국가보조 등의 혜택은 거의 없었다. 큰물이 져서 마을이 휩쓸려 갔다던가1211) 불이 나서 수많은 집이 연소되거나,1212) 권세 있는 宰臣이 자기 집을 확장하려 이웃 백성들의 집을 헐었다던가1213) 궁궐을 짓기 위하여 헐어 냈다던가1214) 등의 사례가 발생하였을 때 구휼의 차원에서 일부 보조가 있는 정도였다. 외국에서 투화하거나 내부한 자에게 집을 내리거나 공헌한 백성에게는 賜家제도도 있었다. 이는 이미 있던 집을 내주게 하는 소유권의 이동이었으므로 그들을 위하여 국가에서 따로 짓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백성의 집은 자연히 질박할 수밖에 없었다. 도성내도 마찬가지였다. 송나라의 사신으로 開京에 와서 머물며 견문한 徐兢의 눈에 비친 백성의 집도 소박한 것이었다.1215)

 개경은 광활하고 평탄한 고장이 아니라 높고 낮은 산이 연이어 있는 지형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그런 지형에 도읍하여서 낮은 산의 중턱이나 기슭에 터 잡고 궁전을 비롯한 중요한 건축물들이 들어서야 했다. 도성의 북부는 산이 더 많고 동부와 남부가 비교적 평탄한데 편평한 자리는 市廛과 관아와 사원이 차지하였다. 따라서 백성의 집은 그들을 피해야 했으므로 주로 산기슭에 자리잡았다.

 산기슭의 집은 시골집과 유사하다. 숲이 우거진 시골에서는 지붕에 나무껍질을 벗겨다 잇기도 하는데, 최상의 것은 떡갈나무 껍질이었다. 충숙왕도 그런 시골집을 본떠 임시로 머무를 行在所의 집을 짓기도 하였다.1216) 우리에겐 그런 기법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에는 회나무 속껍질을 벗겨 지붕을 잇는 기술이 전승되고 있다. 아주 얇게 종이처럼 속껍질을 손질하여 수십 겹을 겹친다. 그것으로 지붕을 이어 두터운 지붕이 되면 수십년간 견딜 만하다. 궁궐이나 사원 또는 신사의 중심건물 지붕도 그렇게 만든다. 일본은 삼국시대 이래 선진문화를 흡수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 기법도 도입한 것이라면 고려시대 떡갈나무 껍질을 잇는 기술과 연계시켜 볼 수 있다. 서긍이 본 도성건물 중에 이런 떡갈나무 껍질을 이은 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조에 굴피집이라고 하여 나무껍질 표피까지 한꺼번에 덮던 방식과는 다른 유형이다. 아주 고급스럽다. 그래서 호사하는 충숙왕도 그것을 이은 행재소에서 만족스럽게 머물고 있었다.

 도성내에 집이 즐비하여 어디에서나 집을 볼 수 있었다. 공민왕 때 홍건적 침입이라는 지독한 전란으로 도성내 집이 반으로 줄어버리고 말았다. 집이 헐리거나 불타버린 빈터를 부자들이 재빨리 점유하는 바람에 가난한 백성들은 집을 짓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전쟁 이전과 같은 볼 만한 구경거리를 다시는 이룩하지 못하였다.1217)

 집이 열 채 있으면 그 중 두어 채는 기와집이라고 서긍은 말하였다. 고려 후기에 이르면 충선왕은 도성내 초가를 전부 기와로 이으라고 지시하였다. 五部의 민가 전부를 기와로 이으라는 분부이고 개인이 경영하는 기와굴을 금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1218)

 백성들은 구들을 놓은 온돌방에서 혹독한 겨울을 지냈다. 집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서긍은 보편적인 크기가 “不過兩椽”이라고≪高麗圖經≫에 쓰고 있다. 이 글은 신라시대나 마찬가지로 아직도 1室1棟制이어서 단위건물은 규모가 적었고 그런 건물 여러 채가 한 집의 경내에 벌여 놓여져 있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런 추세는 삼국시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은 고구려고분의 벽화에 묘사된 내용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조에도 계승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흐름에 속한다.

 ≪高麗史≫의 여러 군데서 凉樓의 명칭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조선의 태조 李成桂가 壽昌宮에 지은 凉廳1219)을 닮은 마루깐 다락집이라 보이는데, 이 양루가 살림집에도 채택되었다고 생각된다. 고려시대 살림집터 발굴성과가 아직 축적되어 있지 않아 당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는 아주 미약하다.1220)

 문경의 새재 길가에 원터라 전하는 곳이 있어 발굴하였더니 고려시대 건물터가 나타났다. 고래 켜서 구들을 들였던 흔적과 함께 당시 사용하였던 은제 방울·동제 가위·숟가락과 머리빗 등이 나왔다. 한쪽에 디딜방아를 설치하였던 자리가 있고 다른 건물자리에서는 말굽쇠와 말굽에 박았던 징도 출토되었다.1221)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방물들이 나와서 당시 생활의 일면이 밝혀졌는데 조선조의 살림살이와 유사하다.

 질그릇 깨진 조각이 무수히 수습되었다. 다른 곳을 발굴할 때에도 질그릇 조각은 많이 모아진다. 궁궐·사찰·성곽의 터에서도 자기편보다 도기편이 더 많이 수집된다. 이는 질그릇이 생활용구의 기본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하여도 좋을 것이다. 백성들의 살림살이도 그와 같았다고 하겠다.

 목기의 사용도 보편적 경향이었다. 칠을 입힌 것은 역시 고급스러운 것에 속하였다. 식기류는 더구나 그랬다. 철기·동기는 때로 금·은제와 더불어 사용을 못하게 하기도 하였다. 버들로 엮은 것을 공급하는 천민들이 있었다. 鄕이나 部曲에서 공급하였는데 쇠를 다루어 솥을 주물하고 갖바치가 신발을 만드는 등 생활용구의 제조와 공급이 다양하였으므로 유물을 남긴 유형들과 함께 적지 않은 용품들이 사용되었다고 보여진다.

 光明頭(등잔걸이) 등의 유품에서 조명용으로 관솔이나 기름이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밀납의 초도 있었다. 이런 것은 통일신라나 조선조와 유사하므로 당시 살림살이나 생활하는 터수는 그전이나 뒷시대에 살던 백성들과 거의 같았으리라고 믿어진다.

 고분과 도요지에서 출토되는 각종 陶製와 자기의 유형은 참으로 다양하다. 문화생활에 요긴하게 쓰였을 것으로 멋부린 것도 적지 않다.≪고려도경≫에 개경에서 직접 체험한 일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서긍이 경험한 내용을 보면 기물의 종류가 대단히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문화생활 수준이 신라통일기 보다 저하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1209)≪高麗史≫ 권 93, 列傳 6, 崔承老. “최승로가 아뢰기를 … 사람마다 절 짓기 좋아하니 그 수가 심히 많다. 또 중외의 승도들이 사사로이 살 집을 다투어 지으면서 州郡의 長吏들에게 부탁하여 인부를 징발하여 부리는데 급하기가 公役보다도 더하니 사람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컨대 엄히 다스려 금단하여 백성들이 노역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에서 최승로의 백성이란 개념을 받아들였다.
1210)≪太祖實錄≫ 권 1, 總書.
1211)≪高麗史≫ 권 53, 志 7, 五行 1, 의종 19년 6월 병신.
1212)≪高麗史≫ 권 28, 世家 28, 충렬왕 2년 윤3월 경자.
1213)≪高麗史≫ 권 129, 列傳 42, 崔忠獻 附 怡.
1214)≪高麗史≫ 권 18, 世家 18, 의종 20년 4월 갑오.
1215) 徐 兢,≪高麗圖經≫ 권 3, 城邑 民居.
1216)≪高麗史≫ 권 35, 世家 35 충숙왕 16년 정월.
1217)≪高麗史≫ 권 85, 志 39, 刑法 2, 공민왕 4년 3월.
1218)≪高麗史≫ 권 33, 世家 33, 충선왕 원년 8월 신해.
1219) 申榮勳,<朝鮮初 凉廳考>(≪건축역사연구≫ 1, 1992).
1220) 평안북도 신의주시 위화도에서 1959년에 고려시대 집터가 발굴되었는데, 구들을 놓은 방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또 그릇으로 사용하였다고 보이는 질그릇과 연장들이 같이 나왔다. 화려하거나 웅장한 규모는 아니다(서국태,<신의주시 상단리의 고려 집자리>,≪고고민속≫1, 1966).
1221) 洪思俊·申榮勳·李東寧,≪傳鳥嶺院址發掘調査報告書≫(聞慶郡, 1985).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