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문묘제도의 정비
조선왕조가 개국된 지 얼마 후에 국왕 태조는 閔霽를 文廟에 파견하여 釋奠祭를 올리도록 하였다.016) 이 때의 문묘는 물론 개경의 국자감내의 문묘였다. 문제는 이것 말고는 문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고려말 문묘의 모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고려말 문묘의 모습을 이해하기도 용이하지 않다. 이 시기가 역사적인 격동기로서 역사기록 자체가 매우 소략하게 처리되고 있을뿐더러 元·明의 교체에 따른 역사기록의 누락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문묘에 대한 검토를 고려 후기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016) | ≪태종실록≫권 1, 태조 원년 8월 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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