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Ⅰ. 학문의 발전4. 지리지의 편찬과 지도의 제작3) 세계지도의 제작(1) 조선 전기의 세계지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1. 성리학의 보급
          • 1) 성리학의 역할
          • 2) 5례·4례의 정비
          • 3) 문묘제도의 정비
          • 4) 대표적인 성리학자들
        • 2. 훈민정음의 창제
          • 2) 훈민정음의 창제
          • 5)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 6) 훈민정음과 관련된 사업들
        • 3. 역사학
          • 1) 민족사의 체계화와 전대사의 정리
            • (1) 전대사의 체계화
            • (2) 고려시대사의 정리
            • (3) 전대사의 체계적 정리
          • 2) 춘추관과 당대사의 편찬
            • (2) 춘추관과 사관
            • (3) 실록의 편찬과 보관
        • 4. 지리지의 편찬과 지도의 제작
          • 1) 지리지의 편찬
          • 2) 국내지도의 제작
            • (3) 조선방역도
          • 3) 세계지도의 제작
            • (1) 조선 전기의 세계지도
            • (2)≪해동제국기≫의 일본 및 유구국지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1. 국가제사
          • 2) 자연신
        • 2. 불교
          • 1) 억불정책과 교단의 존폐
            • (1) 억불정책의 전개
            • (2) 양종과 승과의 폐지
          • 2) 도첩제와 부역승
            • (1) 도첩제의 강화와 폐지
          • 3) 왕실의 불교숭신과 불교행사
            • (1) 숭불의 왕과 그 불사
          • 4) 민간의 불교신앙
            • (3) 불탄일 연등과 수륙재
          • 5) 사찰재산과 승려의 경제활동
          • 6) 당시의 고승들
            • (1) 자초와 기화
            • (2) 세종대의 명승들
            • (3) 세조대의 고승들
        • 3. 도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

가) 지도의 개관

 이 지도는 그 제목으로 보아 전술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매우 유사한 명칭이다. 즉 ‘歷代國都’와 ‘疆理’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고 끝부분의 ‘之圖’를 ‘地圖’로 고쳤을 뿐이다. 따라서 역대국도지도와 강리지도를 합쳐서 하나로 만든 지도라는 뜻에서 용곡대 소장본과 매우 유사한 명칭이다. 용곡도에서와 같이 지도제작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으나, 중국에서 중국과 그 주변의 지도를 도입한 후 우리 나라와 일본을 추가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제작과정을 거친 지도이다. 용곡도를 대표로 하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전부 일본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지도도 거의 전부가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알려진 것으로 일본의 京都 妙心寺 麟祥院, 동경 宮內廳 彰考館 소장본이 있고, 우리 나라에는 1980년대에 일본에서 구입해온 仁村紀念館 소장본과 지도의 명칭과 楊子器의 서문이 결여된 같은 유형의 지도가 奎章閣에 海東古地圖의 이름으로 소장되어 있다. 여기서는 우리 나라에 소장되어 있는 인촌기념관 소장본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仁村圖(<지도 3>)는 세로 179㎝, 가로 198.5㎝의 대형지도이며 2폭의 가리개로 되어 있다. 지도의 상단에 ‘混一歷□□□疆理地圖’라고 예서로 지도의 명칭이 쓰여 있다. 그 중 ‘代國都’ 3자는 파손되어 있다. 고지도의 명칭에서 ‘之圖’ 또는 ‘地圖’의 2종류를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之圖’와 ‘地圖’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같은 지도에서도 필사자에 따라서 바꾸어 쓰는 일이 종종 있다. 인촌도의 전서로 된 ‘地’자는 墜理圖의 ‘墜’의 상부 우측의 ‘豕’의 전서체로 해석되고 있다.456) 지도의 명칭 밑에는 역대제왕국도를 명대의 지명 밑에 옛 명칭을 밝히고 黃帝·堯·舜 등 역대제왕이 도읍했던 곳을 열거하고 있다. 이 역대제왕국도이 기록은 용곡도와 그 형식·순서·내용에 이르기까지 전혀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지도부분은 중국을 중앙에 위치시키고 그 동쪽에 우리 나라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휠씬 크게 그린 것이 특징이다. 용곡도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으나, 인촌도에서는 원형의 섬에 일본이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지도 하단에는 명나라의 衛所名이 기록되어 있고 지도를 만들게 된 동기를 쓴 양자기의 발문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자세한 범례가 있으며, 끝부분은 파손되어 해독이 불가능하나 같은 유형의 지도에서 嘉靖 5년(1526)의 刊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촌도는 양자기가 만든 大明國地圖에 우리 나라와 일본의 지도를 추가하고 중국의 역대제왕국도의 이름을 지도의 상단에 열거하여 완성한 지도이며, 우리 나라의 서울을 ‘京都’라고 표시한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에서 만든 사실이 확실한 지도이다.

<지도 3>混一歷代國都疆理地圖(仁村圖)이 주요 부분 필사도

나) 양자기의 대명국지도

 인촌도의 중국부분은 楊子器의 대명국지도이다.457) 이 지도는 우리 나라 부분을 제외하면 지도의 윤곽, 명의 위소, 발문, 범례 등이 인촌도의 중국부분과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범례의 말미에 “嘉靖 五年 歲次丙戌春二月吉□”458)라고 쓰여 있는 것까지도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인촌도의 중국부분의 원도는 양자기의 대명국지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大連圖書館의 대명국지도에도 역대국도가 열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촌도는 우리 나라에서 역대제왕의 국도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인촌도와 같은 유형인 경도의 妙心寺圖와 동경에 있는 궁내청 지도에도 역대국도 부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고지도는 전사과정에서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수정·보충 또는 일부를 삭제하기도 한다.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라는 지도의 명칭으로 보아 위에서 언급한 묘심사와 궁내청 지도의 원도에는 역대국도가 열거되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면 인촌도가 유일하게 지도의 명칭에 부합되며 원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대명국지도의 범례 말미에「嘉靖 5년(1526)」이라고 적혀 있으나 원저자 양자기는459) 이미 1513년에 사망하였다. 따라서 인촌도의 중국부분 원도로 추정되는 대련도서관의 대명국지도는 양자기 사후에 전사한 지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명의 변천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양자기가 대명국지도를 작성한 시기는 늦어도 正德 7년(1512) 이전이라고 추정된다.460)

 양자지의 발문에 의하면 정치에 지도가 필요함을 인식하고≪太一統志≫즉≪大明一統志≫및 관계를 참고하여 이 지도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대명일통지≫에 삽입된 지도는 매우 간략하므로 당시의 여러 지도를 참고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양자기의 대명국지도의 원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지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명대의 대표적인 중국지도인 廣輿圖는 가정 20년경에 작성되었으므로 양자기의 중국지도가 광여도를 바탕으로 했을 리는 없다. 따라서 양자기의 중국지도는 원대의 어떤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수정 보충한 것으로 사료된다. 원대의 지도로 잘 알려진 一統圖는 明一統圖와 같이 간략하여 양자기의 중국지도의 원도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양자기의 중국지도의 바탕이 된 지도는 광여도의 원본이 된 朱思本의 輿地圖 또는 같은 계통의 지도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양자기의 중국지도의 내용은 대명일통지도보다 광여도에 더 가깝다.

 인촌도와 용곡대 소장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비교하면 용곡도의 중앙아시아·인도·아프리카·유럽 등을 제외한 중국지도는 그 윤곽이 매우 비슷하다. 인촌도의 山東半島와 遼東半島는 용곡도의 그것보다 윤곽이 불확실하다. 그러나 黃河와 揚子江의 유로는 인촌도가 보다 정확하다. 용곡도와 인촌도의 비교에서 가장 뚜렷한 차이는 만리장성이다. 전자에서는 秦代의 장성에 속하며 宋代에 만든 墜(地)理圖461)에 나타나는 장성과 매우 비슷하다. 淳祐 7년(1247)에 석각한 이 지도의 장성과 용곡도의 원도가 되는 李澤民의 聲敎廣被圖의 장성이 같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인촌도의 장성은 용곡도와 비슷하기는 하나 명대의 蘭州에서 북쪽으로 嘉峪關까지 연장시킨 부분이 나타나고 있어서 명대의 장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인촌도와 용곡도의 또 다른 점은 전자는 모두 명대의 지명이고 후자는 상당한 수의 원대 지명을 그대로 남겨 놓고 있다. 인촌도에서는 지명의 표기와 범례에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즉 범례에서 행정구역 단위의 고하에 따라 표시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예를 들면 “京師八其角以控八方也”라고 범례에 적혀 있고, 이 범례에 따라 北京과 南京을 2중의 8각형 테두리로 만들고 그 외부에 성벽표시를 하여 성곽으로 둘러싸였음을 알게 하고 그 내부에 北京順天府와 南京 應天府라고 쓰고 있다. 省都·府·州·縣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부호를 쓰고 있다. 그리고 행정수도의 구별을 부호로 표시하는 대신에 ○○府 ○○州의 부와 주를 지명표기에서 생략하였다. 이러한 범례의 방법은 좁은 지면에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후대의 지도표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다) 조선지도

 인촌도에 나타난 우리 나라 부분은 세조 9년(1463)에 정척과 양성지가 작성한 東國地圖型보다 이회의 八道地圖型에 더 가깝다. 인촌도는 제작년대를 보면 정척과 양성지의 동국지도보다 약 80년 후에 만들어졌으나, 태종 2년(1402) 이회의 8도지도형을 따르고 있다. 특히 두만강의 유로와 함경도의 윤곽은 인촌도의 우리 나라 부분과 이회의 8도지도가 동일계통임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지명에 있어서는 인촌도의 우리 나라 지명이 용곡도의 우리 나라 부분보다 상세하다. 그뿐 아니라 인촌도에서도 각 군현의 표시를 도별로 일정한 색으로 통일하고 있다. 즉 전라도는 紅, 경상도는 白, 강원도는 綠, 함경도는 靑, 경기도와 충청도는 黃, 황해도는 白, 평안도는 灰白色으로 구분하였다. 따라서 도계의 표시를 따로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계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인촌도의 이러한 방법은 이회의 8도지도에는 없었던 것으로, 양자기의 중국지도 범례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표기법으로 추정된다. 군현명의 바탕색으로 도별을 표시하는 방법은 후대 8도지도의 군현표시 방법에 널리 이용되었다. 지형표시에서는 개개의 산이 아니고 산맥을 주로 표시하였다. 산맥의 모양과 내용은 용곡도에 나타난 이회의 8도지도의 내용과 유사하다.

 우리 나라의 지명 변천을 통해서 본 인촌도의 제작 연대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지도의 원도가 제작된 嘉靖 5년(1526)에서 충주목이 유신현으로 강등된 명종 4년(1549) 사이로 추정된다.

456) 같은 전서체의 ‘地’자는 일본 九州 本光寺소장의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와 高麗大學校 소장 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에서 찾아볼 수 있다.
457) 靑山定雄,<古地誌地圖の調査>(東京;≪東方學報≫第五冊 續篇, 1935), 147∼152쪽에서 楊子器의 중국 지도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고 있다.
458) 靑山定雄, 위의 글에는 “歲次丙戌春二月吉”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 宮內廳本에는 “二月吉州”로 되어 있어서 이 서문을 쓴 장소가 밝혀진 셈이다.
459) 楊子器의 諱는 子器이며 字는 名文, 浙江省 慈谿 사람이다. 成火 23년(1487)에 進士가 되고 崑山·高平의 知縣을 거쳐 1495년에 常熟知縣이 되어 水利를 講했으며 常熟縣志 4권을 편찬하였다. 河南左布政司로 正德 8年(1513)에 타계하였다. 양자기는 지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水利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宮崎市定,<妙心寺麟祥院混一歷代國都疆理地圖について>,≪神田博士還曆記念論集≫, 1957, 577∼582쪽).
460) 靑山定雄, 앞의 글, 147∼152쪽.
461) 曹婉如 外編,≪中國古代地圖集 戰國∼元≫(北京;文物出版社, 1990), 圖版 72, 墜理圖墨線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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