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08권 삼국의 문화
    • 09권 통일신라
    • 10권 발해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1) 조선 후기 성리학의 양상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1) 인물성론의 발단과 쟁점
            • (2) 인물성상이론(호론)의 전개
            • (3) 인물성구동론(낙론)의 전개
          • 3) 경학의 심화
            • (1) 영남학파의 경학
            • (2) 기호학파의 경학
            • (3) 탈주자학적 경학의 성장과 고증학의 정착
          • 4) 의리론의 전개
            • (1) 척화론의 저항의리
            • (2) 화이론의 의리론적 전개
            • (3) 의리론의 역사의식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1) 임성주의 유기론
            • (2) 화서학파의 심주리주기론의 대립
            • (3) 한주학파의 심즉리설과 노사학파의 유리론
            • (4) 간재학파의 심주기론과 한말 주리론의 논쟁
          • 6) 성리학의 사회적 기능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1) 중국양명학과 조선양명학
            • (2) 조선양명학의 성립
            • (3) 조선양명학의 전개
          • 2) 강화학파의 활동
          • 3) 양명학과 소론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1) 천주신앙의 동류
            • (2) 천주교서와 조선인의 만남
            • (3) 북경에 간 북학론자의「천주학」관
            • (4) 국내 실학지식인들의 천주학연구
            • (5)「보유론적 천주신앙」의 깨우침
            • (6) 이벽·정약용의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1)「신앙공동체」의 형성과 그 특성
            • (2) 초기교회의 발전과 시련
            • (3) 중인층의 천주신앙 수용과 활동
            • (4) 진산사건과 조상제사문제의 의의
            • (5) 서민·부녀자층의 천주신앙
            • (6) 성직자 영입과 교회활동의 조직화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1) 천주교박해의 역사적 배경
            • (2) 박해 받는 조선천주교회
            • (3) 박해정책과 교회의 성장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1) 천주신앙 수용의 사회성
            • (2) 조선교회의 역사적 기능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1) 삼학수행의 일반화
            • (2) 이력과정의 확립
          • 2) 강경의 성행
          • 3) 승려문집의 성행
          • 4) 삼종선 논쟁
          • 5) 국가적 활동
            • (1) 승정의 추이
            • (2) 승역의 추세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1) 국가도교의 쇠퇴
            • (2) 새로운 도교신앙의 형성
            • (3) 도교의 민간신앙화
            • (4) 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1) 군·현제의
            • (2) 마을신앙·개인신앙
            • (3) 무속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1) 고전의 정리
          • 2) 인쇄문화의 발달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가. 설치
              • 나. 조직
            • (2) 학술활동
              • 가. 교육활동
              • 나. 서적의 수집과 편찬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가. 실학사상의 존재
              • 나. 실학사상의 특성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가. 내재적 배경
              • 나. 외래적 요인
            • (3) 실학의 연구방법과 분야
          • 2) 실학사상의 전개
            • (1) 실학적 왕도정치론
            • (2) 정치개혁론
              • 가. 권력구조 개편론
              • 나. 관료제도 개혁론
              • 다. 과거제도 개혁론
              • 라. 군사제도 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가. 대외인식의 변화
              • 나. 역사관의 발전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가. 토지개혁론
              • 나. 상공업진흥론
              • 다. 사회개혁론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가. 실학연구의 전개
              • 나. 실학개념의 모색
            • (2) 학파의 유형화 작업에 대한 검토
            • (3) 역사적 의미와 연구의 전망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1) 학문적 배경과 정음연구
            • (2) 사역원의 외국어연구
            • (3) 실증적 학풍의 국어연구
          • 2) 언어학
            • (1) 조선 후기의 한글문헌
            • (2) 근대국어의 표기법
            • (3) 근대국어의 변화
              • 가. 자음체계
              • 나. 모음체계
              • 다. 성조체계
              • 라. 문법체계
              • 마. 어휘체계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가. 국토의 재발견
              • 나. 새로운 학풍의 성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가. 공간관의 변화
              • 나.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가. 지역연구
              • 나. 계통지리학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가. 자연지리학의 발달
              • 나. 환경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1) 정통론의 발달
            • (2) 중세적 화이관의 변화
            • (3) 국사의 체계화와 개별 왕조에 대한 인식
            • (4) 역사지리학의 연구
            • (5) 사회경제사의 연구
            • (6) 역사학 방법과 역사이론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1) 유서편찬의 시작
            • (2) 개혁사상적 백과전서
            • (3) 관찬 백과전서
            • (4) 박물학적 백과전서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1) 과학기술의 제도와 기관
            • (2) 과거와 자격시험
            • (3) 중인의 과학과 천민의 기술
            • (4) 과학기술의 특징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1) 새로운 우주관과 서양식 천문도
            • (2) 천문·기상기구의 제작
            • (3) 역법과 시법-시헌력 도입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1) 연행사들의 서양과학 접촉
            • (2) 이익의 서양과학 이해
            • (3) 홍대용의 과학사상
            • (4) 박제가의 서양기술 도입론
            • (5) 정약용의 과학기술론
            • (6) 이규경의 과학기술론
            • (7) 최한기의 종합적 과학기술 수용
            • (8) 대원군의 군사기술 맛보기
            • (9) 실학의 서양과학 수용의 한계성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가. 평시조
              • 나. 사설시조
            • (2) 가사
              • 가. 유배·기행가사
              • 나. 규방가사
              • 다. 평민가사
              • 라. 잡가
            • (3) 한시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가. 전계 한문소설
              • 나. 야담계 한문소설
              • 다. 한문 장편소설
            • (2) 국문소설
              • 가. 영웅소설과 역사군담소설
              • 나. 환몽소설과 애정소설
              • 다. 장편 가문소설과 가정소설
              • 라.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
          • 3) 기록문학
          • 4) 문학사상과 비평
        • 2. 미술
          • 1) 회화
            • (1) 회화활동의 확대와 창작태도의 변모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가. 남종화법의 파급
              • 나. 서양화법의 도입
            • (3) 진경산수화의 확립과 발흥
            • (4) 풍속화의 확대와 발전
            • (5) 기복호사 풍조와 민화류의 범람
          • 2) 서예
            • (1) 고법의 다양한 전개
            • (2) 금석학과 전예의 진흥
            • (3) 추사체의 출현과 유행
            • (4) 개화기의 서예
            • (5) 한글서체의 극성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가. 효종∼숙종기(1636년경∼1725년경)
              • 나. 영조·정조기(1725년경∼1800년경)
            • (2) 말기의 조각(순조∼고종기=1800년경∼1910년경)
          • 4) 공예
            • (1) 도자공예
              • 가. 숙종·영조시기(18세기 전반)
              • 나. 영조·정조시기(18세기 후반)
              • 다. 순조·헌종시기(19세기 전반)
            • (2) 목칠공예
              • 가. 조선 후기의 목공예
              • 나. 칠기
          • 5) 건축
            • (1) 일반건축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건축
            • (7) 양식건축의 도입과 양식건물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1) 양란 이후의 장악원
            • (2) 아악의 명맥과 종묘제례악
            • (3) 향악·당악 및 궁중정재의 새 경향
            • (4) 고취악의 변천 및 세악·내취의 등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가. 가곡의 성장과정
              • 나. 가사와 시조의 등장
              • 다. 판소리의 역사적 발전
              • 라. 범패 및 기타 성악의 갈래
            • (2) 기악의 발전
              • 가. 합주곡의 등장
              • 나. 독주곡의 등장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1) 악조의 역사적 변천
            • (2) 음악양식의 새 경향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가. 악보의 편찬과 종류
              • 나. 기보법의 역사적 변천
              • 다. 생황자보와 연음표의 등장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가. 정재무
              • 나. 일무
            • (2) 산대잡희의 폐지
            • (3) 민속무
              • 가. 풍물굿
              • 나. 탈춤
              • 다. 강강술래
              • 라. 승무
              • 마. 작법·범패
          • 2) 체육
            • (1) 편사
              • 가. 사정의 유래
              • 나. 사정의 조직 및 규칙
            • (2) 각저
            • (3) 수박
            • (4) 장치기
            • (5) 유상·등고 기타
          • 3) 연극
            • (1) 산대나희
              • 가. 규식지희와 음악
              • 나. 소학지희
            • (2) 조선시대의 재인과 광대
            • (3) 판소리
            • (4) 민속극
              • 가. 서낭제 탈놀이
              • 나. 산대도감계통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42권 대한제국
    • 43권 국권회복운동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46권 신문화운동 Ⅱ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2) 박해 받는 조선천주교회

 이미 한역천주교서를 연구 검토하는 단계에서도 척사론적 의식을 가지고 천주학을 배격하는 衛正論者들이 있었다. 그들은 천주학이 장차 끼칠 해악들에 대하여 공격 배척하는 글을 남겼다.206)

 정조 8년(1784)에 시작된 천주교회에 대한 배척이 구체화된 것은 다음해 乙巳秋曹摘發事件 때부터의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일부 양반교인 가족들의 배교강요가 있었으나 정부대책은 집회장소의 제공자 김범우를 유배하는데 그쳤다.207) 다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左道不經’한 ‘異端妖誕說’과 ‘雜術方書’의 貿書를 적극 금압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 마침내 비변사가 금서조치를 취했다.208)

 정조 15년의 신해진산사건 때에는「廢祭焚主」소동의 주인공인 윤지충·권상연을 사형에 처하는 한편 홍문관 소장의 서학서를 소각하고209) 천주교서적 소지자를「臧匿邪書罪」로 유배시켰다. 정조는 빗발치는 유가들의 강경한 상소에 대하여 “正學(성리학)이 크게 밝혀지면 邪說은 스스로 꺾이고 말 것이라” 하고 그 이상의 대책이나 사상통제의 방법을 취하지는 않았다.210)

 이렇게 온건하고 조건반사적인 대천주교정책은 정조의 승하와 僻派정권의 등장으로 사태는 급전되었다. 신해진산사건으로 조선정부는「廢祭滅倫之敎」로 몰리게 된 천주교에 대하여 박해의 구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순조 원년(1801) 벽파와 대왕대비 김씨의 정치적 보복의 복선이 깔려 발생한 신유박해는 대왕대비 김씨의 척사윤음에 의해 정략적으로 추진되어 경향 각지에서 많은 교도들이 희생되었다. 이런 와중에 생겨난 黃嗣永帛書사건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211) 천주교도는 모역의 무리로,「통외」의 무리로 단죄되는 등, 박해가 五家作統法을 동원하여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어 주문모와 그 밖의 지도적 교인들이 모두 희생됨으로써 조선교회는 빈사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정부의 강력한 탄압정책에도 불구하고 세도정치 아래 확대 증폭되고 있던 조선왕조의 사회·경제적 모순에서 현세적 위열과 내세의 영생의 가르침에 이끌리게 되는 서민대중은 다시금 교회에 몰려들게 되어 교세는 점차 늘어났다. 또한 각지에「敎友村」이 총생하였다. 순조 15년에 경상도지방에서 乙亥敎難, 순조 27년에 전라도지방에서 丁亥敎難의 박해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런 지방박해로는 거센 천주교세의 불길을 잡을 수는 없었다. 순조 31년에「朝鮮敎區」가 설정된 후 서양성직자들의 계속적 잠입과 비밀스런 전교활동으로 조직적인 교회활동이 다시금 활발해졌다.212) 이에 대한 박해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권 쟁탈의 정권다툼을 배경으로 헌종 5년(1839)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때 대대적으로 자행된 기해박해로 말미암아 교회는 주교 및 신부 등 3인(Imbert주교, Maubant·Chastan신부)이 순교하는 대타격을 받게 되었는데,213) 3월부터 시작된 박해는 10월 척사윤음의 반포로 더욱 거세졌고 많은 희생자를 낳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헌종 2년 조선교회가 멀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던 김대건이 헌종 11년에 귀국하게 되었다. 그는 교회재건에 헌신하다가 다음해 성직자 영입을 위한 해상루트 개척차 서해에 나갔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때마침 내항한 프랑스 동양함대의 무력시위에 의한 통교교섭으로 위기의식을 크게 느끼게 된 집권당국자들은 김대건신부와 그 연루자들을 처형하는 병오박해를 일으켰다.214) 병오박해가 벌어진 헌종대 뒤를 이은 철종대 15년간은 소규모의 박해가 여러 곳에서 간헐적으로 벌어졌으나 김대건과 같이 마카오에 유학했던 崔良業신부215)와 조선교회의 전도를 책임졌던 巴里外邦傳敎會(La Sociétédes Mission-Étrangères de Paris) 소속의 프랑스 전교성직자들의 계속적인 잠입활동과 세도정권 밑에 학정과 착취와 관료의 수탈 그리고 계속적으로 엄습하는 자연재해(홍수·한발·충해·질병 등)에 지치고 피폐한 농촌사회의 현실에서의 정신적 이탈을 꾀하는 사회추세에 힘입어 거의 전국적으로 교세가 뻗어 나갔다.

 이렇게 커진 교회에 최대의 박해가 가해졌는데 곧 고종 3년부터 6년간에 걸쳐 전개된 병인박해였다. ‘縲洩望道’하고 ‘捕廳獄滿’하였으며 ‘棄屍如山積’했다는 대규모 박해216)는 서구식민세력의 침략적 접근에 자극받아 강경한 위정척사의 쇄국정책과「以夷制夷」의 防俄策으로 천주교회와 접근을 꾀하던 흥선대원군이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표변에서 벌어지게 된 박해였다. 장기간에 걸쳐 전국으로 확대된 박해로 이어지게 되는 데에는 프랑스의 강화도침공(병인양요), 서구식민세력의 야합으로 자행된 흥선대원군 부친 묘의 파묘사건(고종 5년의 德山堀塚事件)과 미국함대의 강화공격(고종 8년의 辛未洋擾) 등이었다. 이런 사건들로 천주교도는「통외」의 ‘외적을 불러들이는 무리’로 단정되어 철저하게 박해를 받았다. 이리하여 당시 전체 교인의 3분의 1인 약 8천여 명이 희생되었다.217)

 거의 100년 가까이 계속되어 온 천주교의 금압과 박해는 고종 13년(1876)의 개항과 더불어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고종 19년에 韓美조약 체결로「洋夷」라 불리던 서양인의 입국이 조약으로 보장되었고, 이어 고종 23년에는 韓佛조약 체결로 서양인의 내지여행과 교회활동이 조약상으로 약정됨으로써 국가권력을 동원한 대대적인 박해는 종식되고 점차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현대를 맞게 된다.218)

206)愼後聃의<西學辨>, 安鼎福의<天學考>·<天學問答>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207)李晩采,≪闢衛編≫권 2, 乙巳秋曹摘發. 金範禹가 단양으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사망하였음은≪邪學懲義≫권 1, 正法罪人秩 金顯禹供草로 입증된다.
208)≪正祖實錄≫권 33, 정조 15년 11월 기묘.
209)≪正祖實錄≫권 33, 정조 15년 11월 기묘·계미.
210)≪正祖實錄≫권 26, 정조 12년 8월 임진.
211)黃嗣永帛書는 辛酉迫害의 禍亂 중에 조선교회의 고난을 알리는 한편 구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黃嗣永이 피신처인 忠北堤川郡鳳陽面九鶴里 舟論마을 토굴에서 작성한 北京主敎에게 보내는 비밀통신문이었다. 명주에 쓰여진 133행 13,311자의 편지이기에 帛書로 불리고 있다. 이 일을 같이 도모하던 黃沁이 체포되었고 결국 黃嗣永 자신도 화를 입게 되었으며 辛酉迫害가 더욱 격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212)≪敎會史硏究≫4 (한국교회사연구소, 1983)에 朝鮮敎區 설정과 관계되는 논문 4편이 수록되어 있다(李元淳,<朝鮮敎區 設定의 歷史的 契機>;金玉姬,<朝鮮敎區의 活動>;崔奭祐,<朝鮮敎區 設定의 敎會史的 意味>;趙 珖,<朝鮮敎區 設定의 民族史的 意味>).
213)이 때 살해된 巴里外邦傳敎會 소속 프랑스 성직자는 Imbert(한국이름 范世亨)주교, Maubant(羅伯多祿)과 Chastan(鄭牙各伯)신부였다.
214)金大建의 일대기와 그의 생애를 추적할 그의 서한에 관한 연구로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金九鼎,≪聖雄金大建傳≫(가톨릭出版社, 1970).

≪성 김대건 안드레아신부의 서한≫,≪성 김안드레아신부의 활동과 업적≫,≪성 김대건 신부의 체포와 순교≫,≪敎會史硏究≫ 12:성 김대건 안드레아신부의 생애와 영성 등 4편은 1997년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간행된 것이다.
215)崔良業신부는 金大建·崔方濟와 같이 헌종 원년(1835) Macao(澳門)에 유학했으나 金大建신부보다 4년 후인 헌종 15년에 上海에서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신부로 서품되고 그 해 연말에 해도를 이용하여 귀국했다.
216)朴齊炯 述·裵琠 評,≪近世朝鮮政鑑≫상(韓國敎會史硏究所, 1968).
217)丙寅迫害에 관한 연구는 柳洪烈,≪高宗治下 西學受難의 硏究≫(乙酉文化社, 1963)가 있다.
218)崔奭祐,<韓佛條約과 信仰自由>(≪史學硏究≫21, 1969).

李元淳,<韓佛條約과 宗敎自由의 問題>(앞의 책, 1993, 189∼216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