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08권 삼국의 문화
    • 09권 통일신라
    • 10권 발해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1) 조선 후기 성리학의 양상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1) 인물성론의 발단과 쟁점
            • (2) 인물성상이론(호론)의 전개
            • (3) 인물성구동론(낙론)의 전개
          • 3) 경학의 심화
            • (1) 영남학파의 경학
            • (2) 기호학파의 경학
            • (3) 탈주자학적 경학의 성장과 고증학의 정착
          • 4) 의리론의 전개
            • (1) 척화론의 저항의리
            • (2) 화이론의 의리론적 전개
            • (3) 의리론의 역사의식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1) 임성주의 유기론
            • (2) 화서학파의 심주리주기론의 대립
            • (3) 한주학파의 심즉리설과 노사학파의 유리론
            • (4) 간재학파의 심주기론과 한말 주리론의 논쟁
          • 6) 성리학의 사회적 기능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1) 중국양명학과 조선양명학
            • (2) 조선양명학의 성립
            • (3) 조선양명학의 전개
          • 2) 강화학파의 활동
          • 3) 양명학과 소론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1) 천주신앙의 동류
            • (2) 천주교서와 조선인의 만남
            • (3) 북경에 간 북학론자의「천주학」관
            • (4) 국내 실학지식인들의 천주학연구
            • (5)「보유론적 천주신앙」의 깨우침
            • (6) 이벽·정약용의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1)「신앙공동체」의 형성과 그 특성
            • (2) 초기교회의 발전과 시련
            • (3) 중인층의 천주신앙 수용과 활동
            • (4) 진산사건과 조상제사문제의 의의
            • (5) 서민·부녀자층의 천주신앙
            • (6) 성직자 영입과 교회활동의 조직화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1) 천주교박해의 역사적 배경
            • (2) 박해 받는 조선천주교회
            • (3) 박해정책과 교회의 성장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1) 천주신앙 수용의 사회성
            • (2) 조선교회의 역사적 기능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1) 삼학수행의 일반화
            • (2) 이력과정의 확립
          • 2) 강경의 성행
          • 3) 승려문집의 성행
          • 4) 삼종선 논쟁
          • 5) 국가적 활동
            • (1) 승정의 추이
            • (2) 승역의 추세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1) 국가도교의 쇠퇴
            • (2) 새로운 도교신앙의 형성
            • (3) 도교의 민간신앙화
            • (4) 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1) 군·현제의
            • (2) 마을신앙·개인신앙
            • (3) 무속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1) 고전의 정리
          • 2) 인쇄문화의 발달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가. 설치
              • 나. 조직
            • (2) 학술활동
              • 가. 교육활동
              • 나. 서적의 수집과 편찬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가. 실학사상의 존재
              • 나. 실학사상의 특성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가. 내재적 배경
              • 나. 외래적 요인
            • (3) 실학의 연구방법과 분야
          • 2) 실학사상의 전개
            • (1) 실학적 왕도정치론
            • (2) 정치개혁론
              • 가. 권력구조 개편론
              • 나. 관료제도 개혁론
              • 다. 과거제도 개혁론
              • 라. 군사제도 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가. 대외인식의 변화
              • 나. 역사관의 발전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가. 토지개혁론
              • 나. 상공업진흥론
              • 다. 사회개혁론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가. 실학연구의 전개
              • 나. 실학개념의 모색
            • (2) 학파의 유형화 작업에 대한 검토
            • (3) 역사적 의미와 연구의 전망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1) 학문적 배경과 정음연구
            • (2) 사역원의 외국어연구
            • (3) 실증적 학풍의 국어연구
          • 2) 언어학
            • (1) 조선 후기의 한글문헌
            • (2) 근대국어의 표기법
            • (3) 근대국어의 변화
              • 가. 자음체계
              • 나. 모음체계
              • 다. 성조체계
              • 라. 문법체계
              • 마. 어휘체계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가. 국토의 재발견
              • 나. 새로운 학풍의 성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가. 공간관의 변화
              • 나.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가. 지역연구
              • 나. 계통지리학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가. 자연지리학의 발달
              • 나. 환경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1) 정통론의 발달
            • (2) 중세적 화이관의 변화
            • (3) 국사의 체계화와 개별 왕조에 대한 인식
            • (4) 역사지리학의 연구
            • (5) 사회경제사의 연구
            • (6) 역사학 방법과 역사이론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1) 유서편찬의 시작
            • (2) 개혁사상적 백과전서
            • (3) 관찬 백과전서
            • (4) 박물학적 백과전서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1) 과학기술의 제도와 기관
            • (2) 과거와 자격시험
            • (3) 중인의 과학과 천민의 기술
            • (4) 과학기술의 특징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1) 새로운 우주관과 서양식 천문도
            • (2) 천문·기상기구의 제작
            • (3) 역법과 시법-시헌력 도입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1) 연행사들의 서양과학 접촉
            • (2) 이익의 서양과학 이해
            • (3) 홍대용의 과학사상
            • (4) 박제가의 서양기술 도입론
            • (5) 정약용의 과학기술론
            • (6) 이규경의 과학기술론
            • (7) 최한기의 종합적 과학기술 수용
            • (8) 대원군의 군사기술 맛보기
            • (9) 실학의 서양과학 수용의 한계성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가. 평시조
              • 나. 사설시조
            • (2) 가사
              • 가. 유배·기행가사
              • 나. 규방가사
              • 다. 평민가사
              • 라. 잡가
            • (3) 한시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가. 전계 한문소설
              • 나. 야담계 한문소설
              • 다. 한문 장편소설
            • (2) 국문소설
              • 가. 영웅소설과 역사군담소설
              • 나. 환몽소설과 애정소설
              • 다. 장편 가문소설과 가정소설
              • 라.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
          • 3) 기록문학
          • 4) 문학사상과 비평
        • 2. 미술
          • 1) 회화
            • (1) 회화활동의 확대와 창작태도의 변모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가. 남종화법의 파급
              • 나. 서양화법의 도입
            • (3) 진경산수화의 확립과 발흥
            • (4) 풍속화의 확대와 발전
            • (5) 기복호사 풍조와 민화류의 범람
          • 2) 서예
            • (1) 고법의 다양한 전개
            • (2) 금석학과 전예의 진흥
            • (3) 추사체의 출현과 유행
            • (4) 개화기의 서예
            • (5) 한글서체의 극성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가. 효종∼숙종기(1636년경∼1725년경)
              • 나. 영조·정조기(1725년경∼1800년경)
            • (2) 말기의 조각(순조∼고종기=1800년경∼1910년경)
          • 4) 공예
            • (1) 도자공예
              • 가. 숙종·영조시기(18세기 전반)
              • 나. 영조·정조시기(18세기 후반)
              • 다. 순조·헌종시기(19세기 전반)
            • (2) 목칠공예
              • 가. 조선 후기의 목공예
              • 나. 칠기
          • 5) 건축
            • (1) 일반건축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건축
            • (7) 양식건축의 도입과 양식건물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1) 양란 이후의 장악원
            • (2) 아악의 명맥과 종묘제례악
            • (3) 향악·당악 및 궁중정재의 새 경향
            • (4) 고취악의 변천 및 세악·내취의 등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가. 가곡의 성장과정
              • 나. 가사와 시조의 등장
              • 다. 판소리의 역사적 발전
              • 라. 범패 및 기타 성악의 갈래
            • (2) 기악의 발전
              • 가. 합주곡의 등장
              • 나. 독주곡의 등장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1) 악조의 역사적 변천
            • (2) 음악양식의 새 경향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가. 악보의 편찬과 종류
              • 나. 기보법의 역사적 변천
              • 다. 생황자보와 연음표의 등장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가. 정재무
              • 나. 일무
            • (2) 산대잡희의 폐지
            • (3) 민속무
              • 가. 풍물굿
              • 나. 탈춤
              • 다. 강강술래
              • 라. 승무
              • 마. 작법·범패
          • 2) 체육
            • (1) 편사
              • 가. 사정의 유래
              • 나. 사정의 조직 및 규칙
            • (2) 각저
            • (3) 수박
            • (4) 장치기
            • (5) 유상·등고 기타
          • 3) 연극
            • (1) 산대나희
              • 가. 규식지희와 음악
              • 나. 소학지희
            • (2) 조선시대의 재인과 광대
            • (3) 판소리
            • (4) 민속극
              • 가. 서낭제 탈놀이
              • 나. 산대도감계통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42권 대한제국
    • 43권 국권회복운동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46권 신문화운동 Ⅱ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3) 박해정책과 교회의 성장

 초창기의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생겨난 곳은 서울에 뒤이어 내포와 전주였다. 이들 신앙공동체의 주도적 교인들은 양반과 중인 지식계급이었고, 그들의 천주신앙은 보유론적 천주신앙이라는 한계성을 지닌 것이었다. 이러한 보유론적 천주신앙은 정조 15년 辛亥珍山事件을 계기로 청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신문화운동적 차원에서 신앙을 지켜오던 지식인 교인들이「拜孔祭祖」의 유교제례문제로 말미암아 신앙생활에서 탈락한 결과였다. 이 때로부터 교회의 지도적 주도권은 중인층으로 바뀌게 되어 보다 비밀리에, 보다 적극적인 전교활동을 추진하는 가운데 차차 서민대중으로 천주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219)

 성직자 없이 출발한 조선천주교회는 그들이 이루었던「가성직조직」을 해산한 후 성직자영입운동을 일으켜 정조 19년에 한국교회 최초의 성직자 주문모신부를 맞아「성직자 있는 교회」로 새 출발을 다지게 되었다.

 주문모신부를 맞이한 후, 교회는 조직정비와 새로이 구성된 지도적 교인들(총회장 최창현, 명도회장 정약종, 여성회장 강완숙과 각 지역 소집단 공동체의 회장)의 활동으로 교세가 급속히 자라났다. 순조 원년 신유박해가 일어날 당시 교세가 1만명을 돌파하였었다.

 그러나 국가정책에 의한 최초의 전국적 박해인 신유박해로 주문모신부와 지도적 교인을 잃고 많은 교인들이 희생되자 조선교회는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살아남은 교인들도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빈사지경에 빠져든 조선교회의 재건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순조 10년(1810)대에 들어 새로운 지도적 교인들이 나타나면서부터였다. 권계인·丁夏祥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도자들은 흩어진 교회조직을 재편하면서 제2차적인 성직자영입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220) 새로운 교회 중심인물의 지도력과 더불어 전국 각지로 흩어져 심산유곡이나 야산지대에 교우촌을 형성하게 되었던 離散천주교인들의 영향으로 천주교세는 경기도·충청도 야산지대와 태백산맥 산협지방(강원·충북·경북지방), 노령·소백산맥 협곡지방 등 각 지역으로 조용하게 부식되고 있었다.221) 이처럼 정부의 박해정책에도 불구하고 교세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교인이 증가됨에는 지도자들의 헌신적 활동과 더불어 교우촌에서의 신앙과 삶, 사랑의 나눔의 영향도 컸다. 동시에 세도정치하의 사회경제적 모순이 심각해지면서 현실에서의 구원과 내세의 복락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농촌대중 서민층의 동향이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정하상은 9차나 비밀리에 북경을 왕래하면서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는 활동을 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자 劉進吉의 이름으로 성직자 파송과 조선교회에 대한 적극적 대책을 羅馬敎皇에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이 청원서가 순조 27년에 로마에 접수되었고, 그 청원이 계기가 되어 순조 31년(1831) 9월 9일에 조선을 북경주교 관할하에서 떼어 朝鮮敎區를 설정하였고, 巴里外邦傳敎會222)에 조선교회의 관리를 위임하는 조치가 취해졌고, 최초의 교구장으로 Bruguiére(蘇霖)주교를 임명하였다.223)

 정작 조선교구에 프랑스인 성직자가 입국하고 교구장 주교마저 입국하여 敎階敎會의 제모습을 갖춤으로써 한국천주교회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헌종 2년(1836)의 일이었다.224) 이후에도 박해정책하에서 전교성직자와 교인들의 희생자는 더 생겨나는 가운데, 조선교회를 이끌어 갈 책임주교와 전교에 헌신하여야 하는 조선교구 소속의 성직자가 계속 입국함으로써 조선천주교회는 성직자 중심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자율적으로 천주신앙을 깨우쳐 교회를 창설한 자생천주교회 당시와 성직자를 가지지 못한 무성직자교회로의 오랜 시기에 발휘되었던 조선교인들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자세225)와 사회적·공동적 구원을 추구하던 신앙생활은 성직자들의 敎導權 주도하에 들면서 점차 퇴영적이고 순종적인 신앙자세로, 또한 그들의 천주신앙이 개인구령의 신앙으로 바뀌게 되었다.

 박해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자신의 천주신앙이 곧 사생결단과 직결되는 절박한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천주신앙을 봉행하는 서민대중층은 늘어나기만 하였다. 관료의 토색과 가혹한 수탈 그리고 특권층의 행패가 기승하는 세도정치하에서 현실생활의 고난을 강요당하며 삶의 희망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서민대중은 인간적 존엄과 사랑의 평등과 내세의 영생을 약속하는 천주신앙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는 당시의 사회경제적 모순이 그들로 하여금 천주교로 모이게 한 것이다.226) 천주신앙의 이질성에 저항을 느끼는 농촌서민층이「廣濟蒼生」·「後天開闢」을 내거는 東學으로 급격하게 모여드는 것과 같은 사회추세였다.

 헌종 원년부터 프랑스 성직자들은 계속적으로 해로를 이용하여 국내의 숨어 들어와 사생을 걸고 전교활동에 종사하였다. 그들은 포교를 위하여 교리서를 펴내는데 힘쓰는 한편, 외방전교회의 방침에 따라 本邦人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신학생을 해외로 유학 보내기도 하면서 국내에도 신학교를 개설하였다.227) 그리고 서구식민주의 열강의 침략적 접근정책에 따라「이양선」이 조선해역에 자주 출몰하게 되고 조선정부에 대한 그들의 군사적 통교요구가 거듭되는 가운데, 국내 척사위정세력의 위기의식은 더욱 고조되어 천주교도를「通外」또는「招寇」의 위험세력으로 몰아 계속적으로 박해를 가하였으니 교회의 수난도 가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종 15년간은 비교적 박해가 잠잠한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거기다가 세도정치의 모순이 보다 격화하는 당시의 사회동향이 상승되어 천주교세는 전국 각지로 파급되고 여기저기에 교우촌이 속속 생겨났다. 종래 교세가 미치지 못한 평안도나 남부 해안지대와 제주도에까지 교인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수는 23,000여 명을 헤아리며, 국내에는 두 명의 주교와 10여 명의 신부가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고종 3년 최대의 박해인 병인박해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219)한국교회 초창에서 초기의 지도층에 관해서는 趙珖의 연구가 돋보인다(趙 珖,<信仰共同體 指導層의 特性>, 앞의 책, 1988, 53∼82쪽).
220)丁夏祥은 辛酉殉敎者 丁若鐘(최초의 明道會長이며≪主敎要旨≫의 저자)의 둘째아들이었다. 흩어진 교회조직을 재편하고, 성직자영입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하였고 天主敎朝鮮敎區가 설정되는 계기를 조성했으며 계속적으로 성직자를 영입하였다. 己亥迫害를 맞아 체포되었을 때 조선인 최초의 護敎論인<上宰相書>를 당국에 제출하였다. 1984년에 103위 성인의 한 분으로 諡聖되었다.
221)敎友村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하나 金玉姬,≪崔良業신부와 敎友村≫(學友社, 1983)이 있고, 근래 지방사연구가 점차 활발해짐에 따라 朱明俊·金眞召·車基眞·馬伯樂·金秀吉 등의 실지답사에 의한 연구보고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
222)巴里外邦傳敎會는 1658년 F. Dallu신부가 동양지방에 전교성직자를 파견할 목적으로 설립한 傳敎會. 이들은 기성의 在俗神父 가운데 동양전도를 자원하는 성직자를 받아 外邦傳敎會神學校서 소정의 훈련을 마치게 하고 동양 각지로 파견하여 포교활동에 종사케 했다. 포교지서 敎階制度 수립, 土着本邦人 성직자 양성 등에 큰 공헌을 했다. 外邦傳敎會史로는 A. Launay, Histoire Générale de la Société des Mission-Étrangères, Paris, 1894가 저명하다.
223)朝鮮敎區라 하나 교회법상으로는 정식교구가 아닌 代牧區였다. 그러나 代牧區의 장인 代牧은 주교가 代牧區長으로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다(名儀主敎). 정식 교구장과 같은 권한을 행사하는 존재이기에 관례상 朝鮮敎區로 통칭한다. 초대 敎區長 Bruguière주교는 임지인 朝鮮敎會로 착임치 못하고 滿洲땅에서 헌종 원년(1835) 10월에 급서하였다.
224)헌종 2년(1834)에 Maubant신부가 조선에 입국했고, 다음해에 Chastan신부 그리고 그 해 말에 제2대 교구장 Imbert주교가 입국하였다.
225)朝鮮天主敎會史上 박해기 100년간 성직자 없이 평신도만의 교회로 평신도지도자들이 교회를 영도한 기간이 매우 길다. 특히 그 시기가 교회 초창기와 큰 박해를 입은 후인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회창설(1784)∼周文謨신부 입국(1795)……11년간

辛酉박해(1801)∼劉方濟신부 입국(1834)……33년간

己亥박해(1839)∼金大建신부 입국(1845)……6년간

丙寅박해(1866)∼Blanc신부 입국(1876)……10년간
226)서민부녀층의 입교의 문제를 사회사·사회학적 관심에서 살펴본 연구로는 趙珖의≪朝鮮後期 天主敎史硏究≫와 盧吉明의≪가톨릭과 朝鮮後期社會變動≫이 참고가 된다.
227)박해시대의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활동

헌종 2년(1836) 金大建·崔良業·崔方濟의 마카오유학 파견.

헌종 3년(1837) 국내서의 速成神學敎育→丁夏祥·李文祐 등 수명의 신학생, 己亥迫害로 무위로 돌아감.

철종 6년(1855) 배론(舟論)神學校(忠北堤川郡鳳陽面九鶴里소재)의 설립운영, 고종 3년 丙寅迫害로 자연 폐교됨.

고종 22년(1885) 부흥골 예수성심神學校(京畿道驪州郡康川面釜平里소재)의 개교, 고종 24년에 서울 龍山으로 이동(현 가톨릭대학 신학부의 전신).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