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4. 불교계의 동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3) 경학의 심화
          • 4) 의리론의 전개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5) 국가적 활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2) 학술활동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2) 실학사상의 전개
            • (2) 정치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2) 언어학
            • (3) 근대국어의 변화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2) 가사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2) 국문소설
        • 2. 미술
          • 1) 회화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2) 서예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목칠공예
          • 5) 건축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2) 기악의 발전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3) 민속무
          • 2) 체육
            • (1) 편사
          • 3) 연극
            • (1) 산대나희
            • (4) 민속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강경의 성행

 영조대 이후의 조선 후기 불교계에 나타난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크게 두드러진 講經활동이다.≪화엄경≫강의를 수십 차례나 하고 화엄소초의 어려운 부분을 풀어낸≪華嚴隱科≫를 저술하여 후학의 길잡이가 된 부휴문파의 晦菴定慧(1685∼1741)와, 역시 25회의≪화엄경≫강의를 하고 澄觀의≪華嚴疏抄≫의 疏科를 일일이 찾아서 발현하고 순차를 그림으로 표시한≪은과≫를 저술한 서산문파의 雪坡尙彦(1707∼1791)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리고 雪巖秋鵬(1651∼1706)과 회암정혜는 각각≪都序≫와≪節要≫에≪私記≫를 남겼다.

 이러한 성과를 계승하여 蓮潭有一(1720∼1799)은 설파에게서 화엄경을 수학한 이후 30여 년 동안을 강경에 전념하였다. 연담은 양인의 은과에다 다른 講伯들의 강설을 채집하고 자신의 의사를 붙여 주석한≪사기≫를 저술하였는데,≪화엄소초≫에 담긴 뜻이 호한하고 이론전개가 장황한 것을 교의와 본분적인 면을 종합하여 명료하게 간추려서≪華嚴玄談私記≫를 지은 것이다. 연담은≪화엄사기≫이외에도 四集과 四敎 전과정의 교재에 대한 사기를 지었고, 이렇게 이루어진 사기는 이후의 강경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후학들에게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특히 연담의≪화엄사기≫는 교의를 명료하게 집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징관소초의 틀렸거나 잘못 들어간 것 그리고 빠진 글자를 정밀히 교정하였으며 識數行相에도 밝아 이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후학들의 큰 지침이 되었다.244)

 화엄강의의 성행은 일찍이 이루어졌으니 서산의 문손인 楓潭義諶(1592∼1665)이 화엄을 강의하였고 부휴의 문손인 暮雲震言(1622∼1703)은 숙종 12년(1686)에 雲浮精舍에서 화엄법회를 크게 열고<華嚴七處九會品目之圖>를 저술하여 화엄학의 기치를 드높였다. 부휴의 다음대 문손인 栢庵性聰(1631∼1700)은 선암사에서 화엄대법회를 열었고 풍담의 제자인 霜峰淨源(1627∼1709)과 月渚道安(1638∼1715)도 화엄강의를 하였다. 월저의 다음대인 喚惺志安(1664∼1729)은 금산사에서 화엄법회를 크게 열어 1,400명이나 되는 많은 대중이 모인 결과로 인해 무고를 당해 제주로 유배가서 목숨을 잃을 정도로 왕성한 형세를 보였으며, 부휴계에서는 無用秀演(1651∼1719)과 회암정혜가 화엄강맥의 대를 이었다. 다음대에서는 好隱有璣(1707∼1785)와 霜月璽篈(1687∼1767)이 맥을 이었고, 그 다음대에서는 설파와 연담 외에도 影波聖奎(1728∼1812)와 雪潭自優(1709∼1770)의 세 제자들인 雲潭·春潭·花潭 등으로 화엄강의는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대둔사에는 풍담에서 연담에 이르는 12大宗師와 영파·운담을 포함하는 12大講師의 전통을 가졌고, 인근 만덕사에도 소요에서 아암에 이르는 8대종사의 전통을 이어 왔었다. 이와 같은 화엄강의의 성행은 앞서 언급한 성리학계의 화엄인식과 연관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연담은 黙菴最訥(1722∼1795)과 심성론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묵암이 제불과 중생의 마음이 각각 원만하나 동일체는 아니다라고 한데 대해, 연담은 각기 원만하기는 하지만 그 근원자리는 동일체라고 다르게 보았다.245) 후기 교학의 중요한 쟁점이었을 이 심성론논쟁은 그러나 언설에 의한 논쟁이 후학들에 의해 지속되어 본의를 어지럽힐까 염려하여 관련자료를 전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연담은 유교사상과 비교하여 교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연담은 극락은 염불로써만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부모에 대한 효도와 같은 仁義慈善의 마음이 지극한 純善人이 왕생하는 것이며, 반대로 부처에 대한 비방만이 아니라 不忠·不孝·奸凶·悖逆이 모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어서, 만일 천당이 있다면 군자들이 올라가는 곳이요 지옥이 있다면 소인배들이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246)

 연담과 쌍벽을 이루었던 강백이 仁嶽義沾(1746∼1796)이다. 인악은 벽봉에게서 금강·능엄 등을 배우고 설파에게서는 화엄을 수학하였다. 인악도 사교와 화엄 등의≪私記≫를 지었는데 연담과 다소 다른 이해를 보이는 이들 사기는 강백을 따라 제각기 전승되면서 오랫동안 서로 독특한 학풍을 이루었다.

<표 1>조선후기 승려 계보

 인악은 정조 14년(1790) 思悼世子의 현륭원 원찰로 龍珠寺가 창건되자 여기에 證師로 참여하여 佛腹藏文과 龍珠寺祭神將文 등을 저술하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인악은 또 유교와 도교를 포용하여 불교와 융화를 시도하기도 하였으며 심성합리를 일물로 보는 특이한 심성론도 보였다.247)

 이들보다 반세기 뒤에 활동한 草衣意恂(1786∼1866)은 또 다른 경향을 보였다. 초의는 불교학에 정통한 것은 물론, 丁若鏞을 통해 유학에도 깊은 이해를 가졌고 당대의 대표적 문사인 洪奭周라든가 申緯·金正喜 등과 詩文으로 교유하며 새로운 학문에 대한 소양도 넓혔다. 초의는 승려로서는 드물게 차와 원예와 梵字·梵唄·서화 등의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소양을 보였는데 이는 당시의 새로운 학문경향과 길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활발한 교학 분위기를 통해 승가의 내적 역량이 축적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당대를 주도하는 학문경향에 부응하던 진전된 의식을 초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승려들이 새로운 경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데는 다산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蔡濟恭이 雪坡의 도성출입을 돕고 그의 비문을 찬술하기도 하였는데, 다산은 연담과 교분을 갖고 그를 출가승려의 대표적 인물로 높이 평가하였다. 다산은 순조 원년(1801)에 서학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되는데, 5년 뒤에 兒庵慧藏(1772∼1811)이 인근의 만덕사 주지로 오게 되자 불경은 물론≪주역≫·≪논어≫에 통달하였던 아암과 주역에 대한 토론 끝에 각별한 교분을 갖게 되어 순조 18년에 유배에서 풀려나 환향할 때까지 많은 승려들과 교유하며 새로운 분위기를 이루어 놓는다. 순조 13년에는 그 자신이≪挽日庵志≫를 편찬하고, 이어서 그의 지도하에 아암혜장과 袖龍賾性·騎魚慈弘 사제로 이어지는 만덕사계 승려들과 玩虎倫佑와 草衣意恂·縞衣始悟 사제로 이어지는 대둔사계의 연담문손들이 함께≪大芚寺志≫를 편찬하도록 하며, 다시 鶴林 李田靑과 慈弘應彦 白下謹學 鼇岳勝粲 등 승속이 힘을 모아≪萬德寺志≫를 편찬하도록 지도하였다.248)

 다산은 특히 삼국시대 불교전래로부터 신라 말까지의 불교사자료를 정리한≪大東禪敎考≫를 지었는데, 전반부는 편년체 형식에 따라≪三國史記≫의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까지 붙여 禪敎始末편을 이루었고 후반부는≪傳燈錄≫과≪四山碑銘≫·≪海東佛祖源流≫등에서 가려낸 승려 141인의 인명을 자료에 따라 열거하였다. 다산은 여기에서 나말 선종사자료로서<사산비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해동불조원류≫보다 정확한 고증과 합리적인 해석을 보였으며 고려 초의 법안종을 높이 평가하는 등 우리 나라의 고대불교사자료에 대해 최초로 본격적인 검토를 함으로써 큰 의미를 남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다 생생한 자료를 전해주는≪삼국유사≫를 배제하고≪삼국사기≫와 같은 자료에만 의지하여 고대불교사를 정리하려 한 인식의 한계와≪해동불조원류≫의 고증의 부실을 신랄히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에 크게 의지한 결과 수많은 오류를 보인 문제점들이 지적된다.249)

244)李英茂,<蓮潭私記를 통해 본 朝鮮時代의 華嚴學>(≪韓國華嚴思想硏究≫,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 1982).
245)有一,≪林下錄≫권 3, 心性論序(≪韓國佛敎全書≫10, 262∼263쪽).
246)有一,≪林下錄≫권 4, 上韓綾州必壽長書(≪韓國佛敎全書≫10, 283쪽).
247)智冠,<蓮潭 및 仁嶽의 私記와 그의 敎學觀>(≪崇山朴吉眞博士華甲紀念 韓國佛敎思想史≫, 1975).
248)崔柄憲,<茶山 丁若鏞의 韓國佛敎史 硏究>(≪丁茶山硏究의 現況≫, 1985).

다산은<智異山僧歌示有一>에서 출가생활하는 연담의 고승다운 인품을 묘사하고,<題蓮潭詩>에서는 ‘蓮潭大師有一者 我東緇林之華也’라고까지 칭송한다. 다산은 또한<東林寺讀書記>에서 스님의 스님 노릇하는 까닭을 이제야 알겠노라고 승가를 이해하는 면모도 드러낸다.

그리고 다산은 아암혜장은 물론 아암의 제자들과도 교유를 가졌으니 그 중의 하나인 기어자홍에게 “불법이 비록 誑誕하나 그 말하는 바가 眞妄有無之相이 있는 것은 우리 儒家의 本然과 氣質을 분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贈騎魚慈弘言>)라고 할 만큼 유불을 포용하는 견해로 승려들을 이끌었다.
249)崔柄憲, 위의 글, 333∼34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