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회경제사의 연구
우리 사회경제사 인식은 유형원의≪磻溪隨錄≫, 柳壽垣의≪迂書≫, 정약용의≪經世遺表≫ 등에서 그들의 개혁론과 관련하여 우리 역대제도의 연혁을 고찰하거나 19세기에 들어 중인층이 자기 정체성의 확립과 당시 신분제의 비판을 위해 자신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에서 비롯되었다.572)≪경세유표≫의<邦賦考>·<邦田考>와 같은 저술이 전자에 해당하며, 서얼의 역사인≪葵史≫, 향리의 역사인≪掾曹龜鑑≫및 중인의 전기인≪壺山外記≫와 같은 저서가 후자에 해당된다.
정약용은 우리 나라 토지제도에 관해 기자 이래 井田이 있었다는 종래 실학파의 주장을 부인하였고 조세제도와 관련해서는 단위 소출량을 토지의 계산 기준으로 하여 그에 따라 토지의 면적을 달리하는 토지 파악방식인 결부제는 고려 말에 생겨난 것으로 보았다. 조세제도를 이렇게 보는 것은 결부법을 면적 단위의 계산방식인 경무법으로 고치려는 그의 개혁사상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또 토지제도를 위와 같이 보는 것은 정약용의 정전제개혁론이 기자정전에 입각한 유형원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정약용에 선행하여 유형원도≪반계수록≫에서 우리 나라의 역대제도에 대하여 고찰하였다.573)
중인신분층의 역사서인≪규사≫·≪연조귀감≫·≪호산외기≫는 자신들을 속박하는 신분제의 비판 또는 개혁의지가 담겨 있는 외에 새로운 자료의 발견, 우리 나라 최초의 사회사적 저술, 인간 중심의 서술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양반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평민 중심의 역사학으로 전환하는 한 지표로 볼 수 있으며, 일제시기 李能和의 몇몇 사회사적 저술 및 張志淵의≪遺史逸史≫등에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