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백과전서학의 발달
중국에서는 중세 이래로≪通典≫·≪文獻通考≫·≪太平御覽≫·≪太平廣記≫ 등 類書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이것은 그 당시의 수준에서 역대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체계적·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일종의 百科全書라고 할 수 있다. 그 목적은 유교의 민본정치와 왕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국왕 및 관료층이 정치를 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런 유서는 대체로 관찬이었다. 중국으로부터 유서의 유입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려 중엽 이후이다.574) 이것은 대체로 이 시기 이후 유학이 난숙하기 시작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 무렵 고려의 왕실에서는≪통전≫을 소장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575)
574) | 고려 선종 2년(1085)에 송나라 哲宗이 즉위하자 (고려는) 사신을 보내 치하하였다. 이들이 刑法之書와≪太平御覽≫·≪開寶通禮≫·≪文苑英華≫를 사겠다고 하였으나≪문원영화≫만을 주었다. 그리고 고려 숙종 6년(1101)에는 송나라에 간 고려사신에게 황제가≪태평어람≫1천권을 주었다고 한다(≪增補文獻備考≫권 242, 藝文考 1, 歷代書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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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는 延英殿에서 독서하기를 좋아한 고려 숙종의 장서 도장이 찍힌≪通典≫이 소장되어 있다(孫寶基,<韓國印刷技術史>,≪韓國文化史大系≫Ⅴ,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65, 988∼99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