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6권 신문화운동 ⅡⅢ. 근대 과학기술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1. 근대 신문의 효시
          • 2)≪한성순보≫의 창간
          • 3)≪한성주보≫의 발간
          • 4) 박문국의 운영
        • 2. 근대 언론의 발달
          • 2) 최초의 민간지≪독립신문≫
          • 3) 외국인의 신문 발행과 잡지
          • 4) 일간지 ≪일신문≫
          • 5) 새로운 신문들
        • 3. 언론의 구국투쟁
          • 1) 한말 언론과 계몽운동
            • (1) 국내신문
            • (2) 국외신문
          • 2) 한말 언론의 국권회복운동
          • 3) 일제의 언론규제
      • Ⅱ. 근대 종교운동
        • 1. 유교
          • 2) 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유교개혁사상
            • (1) 도학파의 유교개혁사상
            • (2) 애국계몽사상가의 유교개혁사상
        • 2. 불교
        • 3. 천주교
          • 6) 근대 천주교회의 사회적 기여
        • 4. 기독교
          • 1) 기독교의 수용과 정착
          • 2) 교회의 발전
          • 3) 기독교와 민족의식
          • 4) 기독교와 한국의 근대화
        • 5. 천도교
          • 3) 천도교의 민족운동
        • 6. 대종교
          • 2) 대종교의 교단조직과 포교활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1. 서양과학에 대한 인식
        • 2. 근대 과학기술의 도입
          • 1) 교통·통신·전기
            • (2) 사회간접자본의 전개과정
          • 2) 근대 의료기술
          • 3) 근대건축
            • (1) 19세기 말 양식건축의 이입
            • (2) 20세기 건축
          • 4) 근대 산업기술
            • (2) 개항 이후 기계기술의 도입정책
            • (3) 대한제국시기 방직기술의 이식
            • (4) 1905년 이후 정미기술의 이식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Ⅲ. 근대 과학기술

1. 서양과학에 대한 인식

실학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의 일부 식자들 사이에는 서양 근대과학에 대한 동경심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동경이 널리 사회에 퍼져 큰 힘으로 작용하지는 못하는 가운데 조선왕조는 1876년의 개국과 그 후의 개화기를 맞았다. 실학자들에 의한 開眼과 그 후 기독교 때문에 비롯된 지배계층의 위기의식과 위축은 19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당연히 아직 서양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워들이겠다는 의식은 자라지 못한 채 나라의 문이 열린 것이다.

집권 초기에 얼마 동안 대원군 李昰應은 서양기술에 관심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는 서양 배를 건조하고 서양식 무기를 만들거나 또는 서양무기를 이겨 보려는 신무기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388) 마치 대원군시대 집권자의 의지가 아직 뚜렷하게 근대과학에 대하여 손들어 환영하지 못한 것처럼, 당시 지식층은 아직 일부 실학자들의 저서 속에 흐르는 서양과학의 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면 1860년대 중반까지도 책을 쓰고 있었던 崔漢綺(1803∼1877)의 여러 글 가운데에는 이미 서양과학의 많은 정보가 담겨져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널리 당시 사회에 퍼졌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개국 이후 서양과학의 내용은 다시 1880년대에 들어가서야 제대로 사회지도층 사이에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1881년 중국 天津에 파견된 조선 역사상 최초의 기술유학생 38명은 領選使行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록 짧은 반 년 정도밖에 유학하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가장 초기에 근대 과학교육을 받은 조선인들이었다. 같은 해에 일본에 파견된 紳士遊覽團은 62명의 고급관리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체계적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급속히 발전해 가는 일본의 근대문명을 구경하면서 근대과학과 기술의 힘을 주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지속된 일이 아니었고, 이 두 번만으로 조선에 근대과학의 싹이 트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보다 대중적인 근대과학의 수용은 다른 방법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담당한 대표적인 경우로는 새로 시작된 대중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漢城旬報≫와≪漢城周報≫의 발행을 들 수 있다. 물론 1880년대를 특징지어 주는 이 신문들은 당시 중국에 나오고 있던 신문·잡지를 대체로 그대로 옮겨 싣고 있었다. 뒤에는 일본의 신문·잡지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지만, 아직 중국어를 읽기는 쉬워도 일본어를 읽는 조선 지식인은 적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근대식 초등 내지 중등 정도의 근대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교육의 확대가 과학을 알리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1883년 최초의 근대식 학교라는 元山學舍, 그리고 同文學이 시작되었고, 배재학당(85), 이화학당(86)이 등장했다. 1910년까지 문을 연 사립학교 숫자는 약 3,000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서 정말로 내실 있는 근대과학 교육이 시행되었다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또 학교의 규모와 짜임새로 보아 아직 근대과학을 충실하게 교육할 수 있는 준비는 절대 부족이었다. 우선 근대과학을 교육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절대 부족했다. 育英公院에는 미국의 대학을 갖 졸업한 선교사겸 교사 3명이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그들이 영어로 가르치는 내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었던지도 의문이고, 또 그 교육과정 가운데 들어 있는 과학분야가 실제로 많이 가르쳐지기는 어려웠을 것도 확실하다. 1880년대의 여러 학교에서≪한성순보≫에 많이 실린 과학기사를 읽는 정도로 과학학습을 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런 학습으로는 과학의 초등교육조차 제대로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근대과학의 수용은 1890년대로 들어가서야 상당히 체계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판단하게 된다. 특히 1894년의 갑오개혁을 전후해서는 학교교육도 더 충실해질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 동안에 일본에서 교육받은 지식인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교사로서 또는 글의 집필을 통하여 근대과학과 근대문명을 계몽하기 시작했던 때문이다. 일본에 유학하는 조선 청년은 1870년대에 이미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880년대까지도 그런 유학은 아주 적은 숫자가 개인적으로 거의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1884년의 갑신정변에 여러 명의 재일유학생이 귀국해 참가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894년 이전에 이미 적지 않은 유학생이 일본을 다녀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인력 때문에 갑오개혁 때에는 사범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초·중등 학교가 문을 열 수 있었고, 특히 기술관련의 학교들이 생겨날 수도 있었다. 기예학교(1895)·경성의학교(1899)·상공학교(1899)·광무학교(1900) 등이 그것이며 같은 시기에 위생국·전신국·철도국·광산국·기기국 그리고 공업전습소(1902) 같은 정부기관도 등장하여 이들의 활동 영역이 넓혀지기 시작했던 셈이다. 1894년의 갑오개혁이 내세운<洪範 14條>가 젊은이들의 외국유학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런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그 이듬해 1895년에 당장 182명의 유학생이 일본 慶應義塾에 파견되었는데, 개화기의 최대 규모의 유학이다. 이 교섭은 당시 학부대신 李完用과 경응의숙 社頭 후쿠자와(福澤諭吉) 사이에 맺은 계약에 따른 것인데, 그 후에도 해마다 300명 정도의 유학생을 파견할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그 후 이 계약대로 유학생이 파견되지 못하고 말았지만, 당시의 인력 수요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유학생은 일본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과학을 배워오기 마련이었다. 일본에 간 청소년들은 대체로 초등교육 정도에 머물렀거나, 또는 기술교육을 받고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나마 이들이 주역이 되어 대한제국시기의 학교교육에서 근대 과학교육이 초보적이나마 실시될 수 있었고, 이들이 또한 근대과학의 교재와 신문·잡지의 글을 통해 근대과학 수용에 중요한 몫을 담당할 수 있었다.389)

388)朴星來,<大院君 時代의 科學技術>(≪한국과학사학회지≫2-1, 1980), 3∼15쪽.
389)朴星來,<開化期의 科學 受容>(≪韓國史學≫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251∼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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