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Ⅴ. 의열투쟁의 전개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1)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08권 삼국의 문화
    • 09권 통일신라
    • 10권 발해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42권 대한제국
    • 43권 국권회복운동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46권 신문화운동 Ⅱ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1. 문화정치의 실상
          • 1) 경찰기구의 강화
            • (1) 보통경찰제의 확립
            • (2) 신간부의 선정과 보통경찰의 기능
          • 2) 지방제도의 개편
            • (1) 동화정책하의 참정권 문제
            • (2) 지방제도의 개편과 자문기구의 설치
            • (3) 면제의 운영과 촌락정책의 실상
          • 3) 친일세력의 양성
            •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 (2) 친일파의 육성과 이용책
            • (3) 친일단체의 조직
        • 2. 수탈체제의 강화
          • 1) 총독부 산업정책의 전환
          • 2) 농업―산미증식계획
          • 3) 공업
            • (1) 식민지 공업구조의 형성
            • (2) ‘민족자본’과 조선인 자본
          • 4) 재정·금융
            • (1) 재정
              • 가. 세출
              • 나. 세입
            • (2) 금융
              • 가. 식산은행
              • 나. 일반은행
              • 다. 금융조합
              • 라. 전근대적 금융기관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1. 임시정부의 수립과 초기 활동
          • 1)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
            • (1) 세계대전의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 (2) 정부수립운동과<대동단결선언>
          • 2)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
            • (1) ‘국민대회’와 국내 정부수립운동
              • 가. ‘국민대회’와 한성정부의 선포
              • 나. ‘경성독립단본부’와 신한민국정부
            •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 (3)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
          • 3) 임시정부의 초기활동
            • (1) 외교·선전활동
            • (2) 국내조직과 활동
              • 가. 연통제의 시행과 운영
              • 나. 임시교통국의 설치와 운영
            • (3) 군사외교와 독립전쟁 준비
              • 가. 군사외교의 강화
              • 나. 독립전쟁 방침과 군사제도의 정비
              • 다. 재만독립군과의 관계
        • 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배경과 참가세력
            • (2) 정부옹호파의 국민대표회 반대운동
            • (3) 제10회 임시의정원
          • 2) 국민대표회의의 전개 과정
            • (1) ‘비공식회의’와 제11회 임시의정원
            • (2) ‘삼방회의’와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 3) 국민대표회의에서의 쟁점
            • (1) 국민대표회의의 적법·부적법 문제
            • (2) ‘임정존폐’ 문제와 ‘임정법통론’
        • 3. 임시정부와 유일당운동
          • 1) 유일당운동의 배경과 계기
          • 2) 유일당운동의 추진과 임시정부의 개헌
            • (1) 임시정부 중심의 대당결성 주장
            • (2)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
            • (3) 임시정부 개헌과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 결성
            • (4) 의열단의 선언과 광동·무한·남경촉성회 결성
          • 3) 유일당운동의 발전과 임시정부 참여
            • (1)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의 결성
            • (2) 전위조직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성립
          • 4) 유일당운동의 중단과 임시정부의 여당 결성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1. 독립군의 편성과 국내진입작전
          • 1) 시대적 배경
          • 2) 독립군의 편성
            • (1) 북간도지역
              • 가. 대한군정서
              • 나. 대한국민군
              • 다. 대한군무도독부
              • 라. 대한북로독군부
              • 마. 대한의군부
              • 바. 훈춘한민회
              • 사. 대한광복단
              • 아. 대한신민단
              • 자. 대한의민단
            • (2) 서간도지역
              • 가. 서로군정서
              • 나. 대한독립단
              • 다. 대한독립군비단
              • 라. 광복군총영
          • 3) 국내진입작전의 전개
            • (1) 독립군의 전력강화
            • (2) 국내진입작전
        • 2. 봉오동승첩과 청산리대첩
          • 1) 봉오동승첩
            • (1) 삼둔자전투
            • (2) 봉오동승첩
          • 2) 청산리대첩
            • (1) 일본군의 간도 침공
            • (2)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 (3) 독립군의 전투준비
            • (4) 청산리대첩
              • 가. 백운평전투
              • 나. 완루구전투
              • 다. 천수평전투
              • 라. 어랑촌전투
              • 마. 천보산전투
              • 바. 고동하곡 전투
            • (5) 청산리대첩의 전과와 의의
        • 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 1) 독립군의 북정
          • 2) 경신참변
          • 3) 자유시사변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1) 통군부의 성립과 남만한족통일회의
          • 2)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2. 3부의 성립과 활동
          • 1) 참의부의 성립과 활동
          • 2) 정의부의 성립과 활동
          • 3) 신민부의 성립과 활동
        • 3.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민족유일당운동
          • 1) 민족통일전선운동의 대두
          • 2) 3부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 2. 의열투쟁 본격화의 배경과 계기
        • 3. 3·1운동 직후와 1920년대의 의열투쟁
          • 1) 3·1운동 직후와 1920년의 의열투쟁
          • 2) 1921년 이후의 의열투쟁 양상과 추이
            • (1) 의열단의 국내외 투쟁
            • (2) 재만 독립군의 국내외 의열투쟁
            • (3) 병인의용대의 의열투쟁
            • (4) 개인 단독의거의 흐름과 사례들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1)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
            • (1) 이봉창의 동경의거
            • (2) 상해거사의 추진과 윤봉길 의거
            • (3) 국내·만주거사 계획의 추진
          • 2) 재중국 아나키스트들의 의열투쟁
          •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 5)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의 의열투쟁
          • 6) 국내 의열투쟁의 불연속성과 지구성
        • 5. 일제 강점기 의열투쟁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2) 상해거사의 추진과 윤봉길 의거

 일본 해군의 도발로 ‘1·28사변’(상해사변)이 발발한 직후, 김구는 홍구부두에 정박중인 군함 出雲號에 일본군사령부가 설치되었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그것의 폭파를 추진했다. 배 밑창에 시한폭탄을 부착시켜 폭파시키기로 하고, 중국인 잠수부 2명을 고용해서 폭발시간을 약정하고 2월 12일 낮에 잠수시켰다. 그러나 잠수부들이 겁을 먹어 지체한 탓에 폭탄은 부착되기 전의 상태로 수중 폭발해버렸고, 결국 일본군사령부 폭파 기도는 실패하였다.735) 이에 김구는 일본군의 黃埔江灣 비행기 격납고와 탄약고를 폭파해버릴 요량으로 상해 병공창 주임인 金弘壹에게 시한폭탄 제조를 부탁해 두고 단원 6명을 군수노동자로 침투시켜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3월 3일에 일본군이 임시휴전 성명을 내고 휴전협정 교섭이 시작되면서 기회가 사라져, 이 거사계획도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736)

 중국 육군 제19로군을 격퇴시키고 상해를 점령한 일본군은 기고만장하여 天長節(일왕 생일) 행사를 겸한 승전경축식을 4월 29일에 홍구공원에서 거행한다고 발표했다. 김구는 이 행사를 폭탄거사의 좋은 기회로 삼고, 김홍일로부터 건네받은 고성능 폭탄 두 개를 청년지사 尹奉吉에게 주어 거사에 나서도록 했다. 기지를 발휘하여 엄중한 경비망을 뚫고 식장에 입장한 윤봉길은 행사 끝 무렵에 중앙 연단을 향해 수통형 폭탄을 힘껏 던졌다. 큰 폭발음과 함께 폭탄은 단상의 일본 군·관·민 요인 7명을 일거에 쓰러뜨렸다. 상해거류민단장 카와바타(河端貞次)는 즉사했고, 상해주둔군 총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은 중상을 입어 입원했지만 사망했으며,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츠(重光葵), 상해총영사 무라이(村井), 거류민단 서기장 토모노(友野) 등 5명이 실명하거나 수족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상해의 일본 군·정 수뇌부에 섬멸에 가까운 대타격을 입힌 것인데, 이것이 한 요인이 되어 일제는 내륙으로의 확전을 단념하고 5월 5일에 중국과 긴급 정전협정을 맺었다.737)

 윤봉길 의거의 상황과 결과는 서방 각국으로도 즉시 타전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켰다. 중국인들도 모두가 찬탄하는 가운데 蔣介石 총통은 “백만 중국군대가 못한 일을 고려청년 한 사람이 해냈으니 장하다”며 거듭 찬사를 보냈다. 또한 이봉창의 의거와 함께 그의 의거로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일제의 교묘한 여론조작과 유도 때문에 발생한 萬寶山事件으로 인해 조성되었던-은 깨끗이 불식되고, 오히려 중국측이 한국독립운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국면 대반전이 이루어졌다.

735)愼鏞廈, 앞의 글, 782∼783쪽.
736)김구, 앞의 책, 300쪽.

金昌洙, 앞의 글, 453쪽.

愼鏞廈, 위의 글, 783쪽.
737)愼鏞廈,<윤봉길의 상해홍구공원 의거>(한국근현대사학회 편,≪대한민국임시정부정부수립80주년기념논문집≫하, 국가보훈처, 1999), 180∼19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