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Ⅳ. 중세 사회의 발전3. 중세의 사회와 경제

(4) 경제 활동의 진전

농업

고려는 농업을 국가 경제의 기반으로 하였던만큼 농민 경제의 안정이 국가 재정의 확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고려 전 시기를 통하여 농업 진흥과 농민 경제 안정을 위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농민의 유민화, 민전의 상실, 전호로의 몰락 등을 막기 위한 권농 정책이 실시되었다. 농업 기술도 점차 향상되어 우경에 의한 심경법이 널리 행해졌고, 2년 3작의 윤작법도 보급되어 갔다. 심경법은 지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었고, 제초 작업에 큰 성과를 보여 휴경 기간의 단축과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다. 한편, 비료로서 가축의 뒷거름이 널리 쓰여 토지의 비옥도를 높였으며, 재배 품종은 주로 5곡과 채소류였다.

고려 후기에는 이암이 원의 농상집요를 소개, 보급한 것으로 보아, 농업 기술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공민왕 때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 와 무명(면포)이 생산되게 됨으로써 종래의 베, 모시를 주로 사용하던 의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수공업

고려 시대의 수공업에는 관청 수공업과 민간 수공업이 있었다.

관청 수공업에서는 해당 관청에 공장(工匠)을 전속시켜 주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무기와, 왕실이나 귀족층의 생활 용품인 장식물, 도자기 등을 제조하였다. 특히, 고려에서는 공예를 중시하여 기술이 뛰어난 자들에게 녹봉은 물론 토지를 주고 관청 수공업에 종사하게 하였다.

한편, 민간 수공업의 경우 가내 수공업이 중심이 되었는데, 자급 자족을 위한 생활 필수품의 생산과, 관청에 납부하기 위한 포목류의 생산이 중심이 되었다. 또, 소에서는 전문적으로 수공업 제품을 생산하였다. 이 밖에, 사원 경제가 발달하여 제지, 직포 등의 사원 수공업도 성하였다.

상업과 금융

고려 사회는 농업 중심의 자급 자족 경제를 기본으로 하였으므로 상업은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다. 다만, 관청의 수요품과 왕실 및 귀족층의 생활 용품을 공급하기 위한 시전 상업이 비교적 활발했을 뿐이었다. 특히, 각종 생산물이 집중되는 개경에는 시장과 상점이 세워졌으며, 국가는 상행위를 감독하고 물가를 조절하기 위한 관청으로 경시서(京市署)를 두었다.

성종 때에는 철전인 건원중보를 주조하였으나, 상업이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널리 유통되지는 않았다. 그 뒤, 숙종 때에는 화폐 유통을 장려하여 해동통보, 해동중보, 삼한통보 등의 동전과 함께 활구(은병)1) 등을 주조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상거래에서는 여전히 곡식과 포가 주된 교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고려 시대의 화폐   

한편, 귀족들에게 부가 집중되면서 고리대업이 행해졌는데, 이는 귀족, 사원 등에 의해 성행하였다. 생활이 빈곤했던 농민들은 고리대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그들의 생활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고리대업의 성행과 더불어, 기금을 만들어 그 이자로 사업 경비를 충당하는 보(寶)가 발달하였다.

보에는 학교 재단인 학보, 불경 간행을 위한 경보, 팔관회 경비를 위한 팔관보, 빈민 구제를 위한 제위보 등이 있었다. 이들 보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이자 취득에만 급급하여 농민들의 생활에 막대한 폐해를 끼치기도 하였다.

대외 무역

국내의 상업이 어느 정도 발전함에 따라 외국과의 무역이 활발해졌다.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고려의 대외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송 무역이었다. 고려는 송으로부터 비단, 약재, 책, 악기 등을 수입하였으며, 금⋅은, 인삼 등의 원료품과 종이, 붓, 먹, 부채, 나전 칠기, 화문석 등의 수공업품을 수출하였다.

특히, 고려의 종이나 먹은 질이 뛰어나 송의 문인들이 귀하게 여겼으므로 비싼 값으로 수출되었다.

대송 무역의 통로로는 북송 때에는 벽란도-옹진-산둥 반도-덩저우의 통로가 이용되었고, 남송 때에는 벽란도-흑산도-밍저우의 통로가 이용되었다.

거란, 여진과도 무역이 이루어졌다. 거란은 은을 가지고 와서 식량, 문방구, 구리, 철 등을 수입해 갔고, 여진은 은, 모피, 말 등으로 식량, 철제 농기구 등을 바꾸어 갔다. 일본과도 무역을 하였으나, 송, 거란 등에 비해 그리 활발하지는 못하였다.

한편, 대식국인이라 불리던 아라비아 상인들도 수은, 향료, 산호 등을 가지고, 송을 거쳐 고려에 들어와서 무역을 하였다. 이들의 왕래로 고려(Corea)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지게 되었다.

고려의 대외 무역   
1) 은병은, 숙종 때 은 1근으로 우리 나라의 지형을 본떠서 병 모양으로 만든 고가의 화폐로, 한때 은병 하나의 값은 포 100여 필이나 되었다. 따라서, 일반 민중은 만져 보지도 못하였지만, 귀족들 사이에서는 대규모 거래에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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