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11. 갑신정변(甲申政變)과 갑오혁신(甲午革新)비고(備考)

메이지(明治) 27〜28년의 전쟁

메이지 17년의 사변 【갑신정변】 으로 청나라 군대는 사대당(事大黨)을 도와 왕궁에 난입하였으며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고 혹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 난폭함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웃 나라와의 우의를 중시하여 함부로 외국의 재난에 끌려들어가는 것을 피하여, 청나라와의 사이에 천진조약(天津條約)을 체결하고, 【메이지 18년 4월】 서로 함께 조선에서 철군하여 일을 매듭지었다. 그 후 청나라는 항상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였으며, 또한 조선의 정권을 장악한 사대당은 청나라의 후원을 믿고 일본에게는 달갑지 않은 행동을 많이 하였다. 그중에서도 메이지 22년은 보기 드문 풍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곡령(防穀令)을 발령하여 일본으로의 곡물 수출을 엄격히 금지한 것이라든지, 혹은 메이지 27년에 오랫동안 일본에 망명해 있던 독립당(獨立黨)의 우두머리 김옥균을 암살하게 하고 그 시신을 잔혹하게 처형한 것 같은 것은 우리의 국론(國論)을 크게 들끓게 한 행동이다. 청나라의 잔혹하고 비도(非道)한 태도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조선은 기강이 매우 무너져 국력이 쇠약해졌으며, 일반 인민들은 학정(虐政)과 무거운 세금으로 고통을 받았고 원망과 탄식의 소리가 이르는 곳마다 가득하였다. 때마침 메이지 27년 【이 태왕 31년】 에 동학당의 난이 일어나자 그 세력이 점차 창궐하여 극에 달하였다. 조선 정부는 도저히 자국의 병력으로 난민(亂民)들을 진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청나라는 그에 응하여 속국의 재난을 돕는다면서 많은 군대를 조선에 보냄과 동시에 6월 6일에 도쿄 주재 청나라 공사 왕봉조(汪鳳藻)로 하여금 천진조약에 따라 군대를 조선에 보낸다고 우리 정부에 통첩해왔다. 우리나라는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또한 거류하고 있는 관민(官民)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에 군대를 보낸다는 것을 청나라에 통지하였다. 이때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는 휴가를 받아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급히 군함 야에야마(八重山)에 탑승하여 요코스카(橫須賀)를 출발하여 해군(海軍) 육전대(陸戰隊) 4백 명의 호위를 받아 경성으로 귀임(歸任)하였다. 【6월 10일】 이어서 육군 소장(少將)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가 인솔하는 제5사단의 혼성(混成) 여단(旅團) 약 3천 명도 역시 인천에 상륙하였다. 【같은 달 12일】

이에 앞서, 총병(總兵) 섭사성(聶士成)이 이끄는 청나라 병력 약 천 명에 포(砲) 4문(門)과 직예제독 섭지초(葉志超)의 휘하에 속하는 병력 약 1500명에 포 4문은 이미 아산에 도착하여, 【6월 6일 이래】 이 부근에 함께 아영을 두고, 전주 방면으로 진격하여 동학당의 소탕에 착수하였다. 한편 동학당은 당초에 그 세력이 우세한 것 같지 않았으며 그 후 세력이 급격히 쇠약해졌으므로, 초토사(招討使) 홍계훈(洪啓薰), 순변사(巡邊使) 이원회(李元會) 등은 6월 7일에 전주를 회복하고, 도적 4백 명을 참획(斬獲)하였으며 수괴(首魁) 2명을 죽였다. 이리하여 도적 무리들은 그들의 통솔자를 잃었으므로 스스로 사방으로 흩어져 자취를 감추었으며, 조선 정부는 점차 찡그린 얼굴을 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적 무리들의 평정은 오직 표면적인 사실일 뿐이었다. 불만을 가진 무리들은 도처에 가득하여 봉기의 불씨는 언제라도 다시 타오를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의 정세를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6월 17일에 외무대신 무츠 무네미츠(陸奧宗光)로 하여금 청나라 공사 왕봉조(汪鳳藻)를 만나, 조선 사건에 대하여 일본과 청나라 양국이 협력하여 신속히 난민들을 진압하고 소란이 진정된 다음에는 양국이 위원(委員)을 파견하여 내정(內政)을 개혁하도록 할 것을 제안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1일이 되자 청나라 정부는 우리의 제안에 답하기를, "난민들은 이미 진정되었으므로 양국은 회동하여 토벌할 필요는 없어졌으니, 내정의 개혁은 조선 스스로 행하도록 해야 한다. 더구나 천진조약에 따라 귀국(貴國)이 군대를 철수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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