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조선
앞 항(項)에서 서술하였듯이 러시아의 동방(東方) 통치 공략은 크게 그 발걸음을 내디뎌 조선과 경계를 접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후 점차 이 방면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도 어윤중(魚允中)을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로 삼아 국경의 관리를 맡게 하였으며, 조중협(趙重協) 【후에 중응(重應)이라고 개명하였다.】 을 변계시찰원(邊界視察員)으로 삼아 청나라 동부 및 시베리아 땅에 파견하여, 러시아의 행동을 주시하였다. 이러한 일은 메이지 16년 【이 태왕 20년】 부터 17년 【이 태왕 21년】 에 걸쳐 이루어진 일이다. 당시 조선의 정계(政界)에는 사대당(事大黨)이 세력을 얻고, 청나라의 위세가 반도를 압도하던 무렵이었는데 영국과 친하였다. 따라서 러시아의 남하(南下)를 가장 꺼려하던 이홍장(李鴻章)은 어떻게 해서든 러시아가 반도에 손을 뻗치는 것을 방지하려고 하였는데, 그 때문에 반도는 러시아와 청나라 두 세력이 경쟁하게 되어 정계에 수많은 파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메이지 17년 6월에 러시아는 오랫동안 북경 공사관에 있어 동양의 사정에 밝은 베베르를 한성(漢城)에 파견하여, 예전에 영국·미국의 여러 나라들이 체결한 것들과 거의 같은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하였다. 【메이지 17년 7월 7일, 러시아력 6월 25일】 메이지 18년 4월에 같은 조약의 비준과 교환을 마치고 베베르는 공사(公使) 겸 총영사(總領事)로서 경성(京城)에 주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