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一編 上古(太古-三國時代)上古의 後期(三國時代)第二章 新羅의 隆盛과 高句麗의 武威

一. 新羅의 强盛

新羅 智證王(第二十二代) 때에 이르러 (國紀 2833-2847 西紀 500-514) 文物制度와 産業이 발달되었으며 세력도 매우 떨치기 시작하였나니 州, 郡, 縣의 地方制度가 갖추게 되었고 農業과 (牛耕이 시작되었음) 商業(서울의 東市가 열렸음)이 盛하였으며 于山國(鬱陵島)을 평정하여 海上에까지 세력을 펴게 되었다. 그 다음 法興王 때에 官制와 律令과 百官의 公服 等 여려 制度가 다시금 갖추게 되고 佛敎가 자못 行하였으며 駕洛國을 倂合하여 南海의 門戶를 손아귀에 넣었다.

【眞興王의 巡境碑】 다시 眞興王 時代에 이르러(國紀 2873-2999 西紀 540-576) 新羅의 세력이 飛躍的으로 發展되어 三國統一의 基礎가 잡혔나니 西北으로 漢江流域을 차지하여 麗·濟兩國을 南北으로 牽制하는 한편에 唐나라와의 通路를 열었으며, 西南으로는 六伽耶 가운데에 最後까지 남아 있던 大伽耶를 평정하고 北으로는 東海岸으로 뻗어나가 咸興 地方에까지 세력을 폈으며, 한편으로는 百濟의 聖王(第二十六代)을 邀擊하여 그를 주인 結果 오랫동안 계속되던 羅 濟同盟도 깨여지고 말았다.

【花郞】그 때에 國內에는 花郞의 活動이 자못 盛하여 國民의 推進力이 되었으며, 國史의 撰修와 (居柒夫 等) 巨刹(皇龍寺 興輪寺 等)의 創建 等 新羅의 國力과 文化가 크게 떨쳐 三國의 國際的 형세가 一變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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